[NGO매거진]장애우권익연구소 '세계의 장애우'

  • 입력 2001년 1월 11일 16시 12분


최근 개그맨 이창명씨의 장애우 관련 실언을 둘러싸고 방송의 장애우 비하, 인권 침해에 대한 대책마련이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장애우에 대한 방송에서의 인권 침해는 다른 나라에서도 주요한 과제로 다뤄지고 있다. 특히 주요 국가들은 방송이 장애우의 인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보호하고 있다.

▼장애우 비하하지 않도록 방송법에 규정, 인터뷰시 장애를 부각시키지 말아야▼

캐나다의 경우 방송법에서 '상황에 따라 개인이나 집단을 인종, 국적, 민족, 피부색, 종교, 성(性), 섹스 성향, 연령, 정신적·육체적 장애 등에 기반한 증오나 경멸에 노출시킬 수 있는 욕설 또는 화면'을 방송면허 소지자가 방영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다.

호주 방송법에서는 방송되는 모든 프로그램, 광고, 또는 그밖의 내용에서 민족, 국가, 인종, 성, 성적 선호도, 종교, 또는 정신적·육체적 장애를 근거로 개인이나 집단의 품위를 실추시키거나 반감을 자극, 영속화할 수 있거나 지나치게 비방하는 프로그램을 방송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들 편견을 지니는 태도에 방송이 대항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호주의 이러한 규정들은 사실에 바탕을 둔 내용을 방송하거나 뉴스나 시사프로그램 또는 유머, 풍자, 극적인 작품의 정식 맥락에서 진지하게 의견을 표명하는 내용의 방송을 금지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어 창작이나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독일 방송법은 사망하거나 육체적 정신적으로 심하게 고통을 당하거나 받았던 사람들을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묘사하고, 이와 같은 보도형태에 대해서 무엇보다도 정당한 이유 없이 특별한 실제 사건을 재연할 경우 동의 없이도 제재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ESCAP)의 아·태 장애인 10년 홈페이지에는 장애우에 대한 정확한 용어 사용과 장애우와 인터뷰 시 도움이 될 만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용어는 생각, 인식, 태도를 형성하는 데 사용할 수 있으며 대중의 언어 사용은 사회의 보편적인 태도를 반영한다고 전제하고 그러한 태도들은 흔히 장애우들이 직면하는 가장 어려운 장애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부정적이고 은혜를 베푸는 식의 언어는 부정적이고 선심을 쓰는 듯한 이미지를 낳으므로 언어 선택은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거나 부정적 선입관을 강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장애우를 묘사함에 있어서 몇 가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는데 '장애가 아니라 사람을 묘사하라', '개인의 장애는 단지 관계 있을 때만 참조하라', '동정 또는 죄의식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피하라'는 내용 등이다. 이에 덧붙여 더욱 구체적으로 장애우를 다룸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점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1) 이야기하는데 중요하지 않다면 장애에 초점을 맞추지 마라.

2)불치병, 선천적 장애 혹은 중증장애를 가진 사람을 다룰 때 눈물을 짜게 하는 것을 피하라.

3) 성공한 장애인을 초인처럼 그리지 마라.

4)장애를 선정적으로 다루지 마라

5)신체적 한계가 아닌 능력을 강조하라.

6)'비참하지만 의연하다'는 식의 상투적인 문구를 피하라. 선입견을 전적으로 버려라.

7)사회의 활동적인 참여자로서 장애우를 나타내라.

8)장벽을 깨뜨리고 의사소통의 통로를 여는데 도움을 주는 사회환경과 업무환경에서 장애우들이 비장애우들과 상호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묘사하라.

장애우와 대화할 경우 주의사항도 눈여겨 볼 만한 내용인데 이는 방송인들이 장애우를 인터뷰하거나 취재할 경우 적용함직하다.

이에 따르면 지체장애우와 인터뷰할 경우에는 현장에 있는 다른 어떤 사람들을 통하지 말고 장애우들과 직접 대화할 것을 지적하고 있다.

청각장애우의 경우는 장애우가 대담자를 인지하고 대화 준비가 될 때까지 대화를 시작해서는 안되며 수화 또는 언어 통역자에게 말하기보다는 만나고 있는 그 장애우 당사자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또한 말할 때 소리지르거나 입술의 움직임을 과장되게 하지 말고 천천히 분명하게 말하고 입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언어 손상을 가진 사람에게는 주의를 집중해야 하고 그 장애우를 교정하려 하거나 해서는 안되고 될 수 있으면 짧은 대답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말하는 동안 조용히 기다리고 문장을 중지시키려는 유혹을 자제해야 하며 이해하지 못했다면 이해한 척 하지 말고 이해한 것을 되풀이해 말하고 다시 물어야 한다.

이러한 주의사항은 장애우와 대화하거나 취재함에 있어서 장애우 당사자가 의도하는 바를 왜곡하지 않고 더나아가 장애우를 대중에게 정확하게 알리는데 필수적이다.

적어도 이 정도의 상식만이라도 방송관계자들이 숙지하고 있다면 이창명씨 같은 실수는 절대 없을 것이다.

▼미국의 주요 영화관, 콘서트장 잇달아 고발 당해▼

요즘 미국에서는 극장과 콘서트장의 장애우 편의시설과 관련한 흥미로운 소송들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한 변호사는 지난해(2000년) 12월 미국의 상위 10대 영화관 체인 10개사 중 보스톤에 근거를 둔 내셔널 어뮤즈먼트와 호이츠 시네마스 두 체인을 미국장애인법(ADA) 위반과 주립 시민권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최근 미국 극장체인들은 상업적인 타개책으로 스타디움 형태의 영화관을 짓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형태의 영화관들이 장애우들의 접근권을 막고 있는 것이다.

내셔널 어뮤즈먼츠와 호이츠 시네마스 체인도 1997년부터 스타디움 좌석을 채택한 극장을 각각 25개와 15개를 보유하고 있다.

스타디움 형태의 영화관은 앞부분에는 전통적인 보통 좌석을 설치하고 그 뒤에 마치 스타디움처럼 가파르고 높은 계단들을 따라 좌석을 배치하는 형태이다. 이런 형태의 좌석은 관객들이 점점 더 완벽한 영화 관람을 요구함에 따른 고육지책으로 관객들에게 더욱 넓은 시야를 제공한다.

그런데 휠체어를 사용하거나 다른 형태의 장애를 갖고 있는 장애우들은 가파른 계단을 거의 등산하듯 올라야 하는 이런 좌석들에 접근할 수 없어 아예 극장의 맨 앞쪽이나 뒤쪽의 하급 좌석을 강요받고 있다.

그런 좌석들은 관객들이 자리가 없을 때 하는 수 없이 찾는 좌석들이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여성장애우인 베시 필스버리는 영화관에 가는 회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언제나 극장의 앞부분에 앉아야 하기 때문에 친구들과 앉을 수 없다. 그래서 늘 혼자 앉아야 한다. 게다가 앞좌석에 앉게 되면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초점을 맞추려고 목을 잡아 빼야한다. 이는 몹시 비참한 일이다. 한번은 스타디움 형태 좌석에 앉히려고 친구가 의자 채로 들어올리려 하다가 떨어져서 고통을 당해야 했다."

이 사건을 맡고 있는 도널드 스턴 변호사는 일반 관객들에게 좀더 좋은 관람 환경을 제공하려는 조치이지만 휠체어 사용자나 이동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체험을 방해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으며 장애우들도 좌석에 앉아 똑같은 상태로 영화 감상을 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스타디움 극장을 상대로 한 소송은 미 연방 지검의 수사를 거쳐 2년만에 제기되었고 합의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려 하고 있다. 현재 이와 유사한 소송들이 여러 주에서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미국의 컨트리가수 가스 브룩스는 자신의 콘서트에서 휠체어용 좌석을 마련하지 않아 장애우들을 차별했다는 혐의로 소송에 휘말리고 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미국장애우 인권쟁취'라는 장애우 단체의 회장인 조안 로렌스(54)는 1998년 시애틀 시에서 열린 브룩스의 투어를 관람하러 갔다가 무대와 멀리 떨어진 뒤쪽에 앉을 것을 강요당했다.

브룩스는 자신의 공연에 매혹적인 여성 팬들을 앞쪽 좌석에 배치하는 것을 즐겨하는데 그날 공연에서는 무대 앞 두 개 열의 좌석에 미모의 여성들만 골라 앉혔다.

로렌스는 무대 가까운 곳의 티켓을 구입하려 했지만 입장권 판매인은 두 개 열의 좌석은 팬들로 이미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그 대신 그는 버스 뒤편의 콘서트장과 유사한 장소로 안내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무대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기분을 망쳐 버렸다.

로렌스는 브룩스와 그의 프로모터가 1998년 몇 개의 콘서트에서 미국장애인법과 주립 시민권법을 위반했으며 특히 브룩스의 프로모터는 운동장에 휠체어 좌석을 설치하지 않도록 지시하고 장애우를 희생시키고 매혹적인 여성 팬들을 앉혔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나는 브룩스를 궁지에 빠트리려는 미치광이가 아니며 우리는 단지 그가 한 일을 바꾸기를 바란다. 브룩스를 공판에서 대면하지 못할 것이란 사실에 실망하고 돈과 명예를 충분히 갖고 있다 해도 장애우를 냉대한다면 헛된 것이다"라고 질타했다.

로렌스는 1993년 타코마 돔과 입장권 담당자에 대해 유사한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었고 합의를 통해 장애우를 위한 좌석을 개선할 수 있었다.

브룩스에 대한 공판은 올 5월에 진행될 예정이나 그가 시애틀의 주요한 경기장에서의 음악콘서트 진행에 대한 어떤 영향력도 지니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의 책임은 축소될 예정이다.

그러나 로렌스의 변호사는 브룩스가 이제 다시 투어를 할 수 없을 것이고 중요 공연장에서 공연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현준 기자

(이 글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월간 '함께걸음' 107호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함께걸음'은 장애우 차별 사례와 장애우를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인물 및 현장을 고발함으로써 장애우 인권을 증진하는데 힘써왔으며, 국내외 장애우와 관련한 정책을 소개하고 정보를 제공하여 장애우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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