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현장]박정희 기념관 반대 1인시위에 의문사 유가족 나섰다

  • 입력 2001년 3월 13일 17시 25분


고 장준하 선생 차남 장호성씨
고 장준하 선생 차남 장호성씨
유신 치하에서 억울하게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반대하는 1인 시위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이번 시위는 '박정희 기념관 반대 국민연대'가 지난달 13일부터 매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념관 건립부지 제공을 위한 서울시의회의 시유지 용도변경 동의안 심의에 항의하며 벌여온 것이다.

국민연대가 시위를 벌인지 꼭 한달 째인 13일 항일독립운동가 출신으로 월간 '사상계' 발행인이었던 고 장준하 선생의 차남 호성씨가 1인 시위에 참가했다.

박정권하에서 유신철폐운동을 주도한 장선생은 지난 75년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약사봉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돼 유신 치하 대표적인 의문사로 꼽히고 있다.

장씨는 "박정권의 피해 당사자로서 기념관 건립반대 운동에 힘을 보태고 싶어 시위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꽃샘추위는 풀렸지만 1시간 동안 맨손으로 피켓을 들고 서있기에는 아직 날씨가 쌀쌀한 탓에 장씨는 흰 목장갑을 끼고 시위를 벌였다.

유인물을 자세히 읽으며 한참동안 장씨를 지켜본 시민들도 있는 반면 나이가 지긋한 몇몇 시민들은 혀를 '쯧쯧'차고 못마땅한 듯 쳐다보며 지나가기도 했다.

기념관 건립에 찬성한다며 욕을 하는 사람, 유인물을 받자마자 버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고생한다며 격려해 주는 시민도 많다는 것이 한달동안 시위를 벌여온 국민연대 측의 설명.

최종선
12일 1인 시위에 나선 최종선씨

하루 전날인 12일에는 지난 70년대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에서 의문사한 서울대 법대 최종길교수의 동생인 종선씨가 시위에 나섰다.

최 교수는 지난 73년 당시 중앙정보부에 자진출두해 간첩혐의로 조사받던 중 투신자살한 것으로 발표됐으나 '고문치사'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종선씨는 1인 시위에 참가하기 전 기자회견을 통해 "형이 당시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의 고문으로 숨졌고 이를 입증할 수 있는 당시 증거들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5·16군사쿠데타 세력에 의해 사형당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의 동생인 용준씨도 지난 8일 유가족으로서는 처음으로 1인 시위에 참가했다.

민족일보는 조용수씨가 지난 61년 진보언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창간한 신문으로 당시 새로운 논조를 갈망하던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5·16쿠데타 세력은 "일본에 있는 간첩으로부터 자금과 지령을 받고 신문을 만들었다"는 혐의를 민족일보에 씌워 신문을 폐간했고 그해 12월 조씨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인시위
13일 '나홀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장호성씨

이번 시위에 참가한 이들 유가족들은 모두 국민연대 측의 1인시위 참여제의에 흔쾌히 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15일에는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의 저자이자 재미 원로언론인인 문명자씨가 귀국해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국내 여러 언론사의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문씨는 73년 11월 당시 보도 금지사항인 '김대중 납치사건'을 보도한 직후 미국에 망명했다.

국민연대 우수미 간사는 "문씨는 박정희 기념관건립에 대해 반대의사를 밝힐 예정"이라며 "그러나 건강상의 이유로 1인시위에는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희정/동아닷컴 기자 huib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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