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 21]실업자 구제 훈련프로그램 크게 변질

  • 입력 1999년 2월 3일 19시 38분


《정부가 실업자 구제를 위해 실시하고 있는 고용촉진훈련 프로그램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 실태를 현장에서 살펴보았다.》

■궤도 이탈한 고용촉진훈련

지난달 27일. 울산시의 한 컴퓨터학원. 정부가 선정한 고용촉진훈련 대상자 50명이 정보처리과정 교육을 받고 있었다. 교육기간은 6개월. 물론 무료다.

그러나 분위기가 왠지 달랐다. 극빈자나 실업자들 특유의 절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훈련생 대부분이 30,40대 주부여서 그런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얼굴이나 옷차림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주부 박모씨(38)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이 이랬다.

“웬걸요. 아파트 입구에 ‘공짜로 컴퓨터를 가르쳐 줍니다’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어 왔을 뿐이에요. 고용촉진훈련 프로그램인 줄은 조금 지나서 알았어요. 재취업이요? 언제 취업을 해봤어야지요. 다른 주부들도 마찬가지일걸요. 무료라니까 왔지 우리들이 고용촉진이 뭔지 아나요.”

김모씨(33·주부)는 한술 더 떴다.

“기본이라도 배워 컴맹을 면해보려는 주부들이 대부분이에요. 어쩌다 구청에서 감사를 나와 ‘취업의사가 있습니까’하고 물으면 모두 ‘예’라고 대답만 하면 되지요.”

학원의 책임은 물론 아니었다. 한 원장은 “학원으로서야 구청에서 위탁한 훈련생을 받아 교육시킬 뿐 누가 교육을 받든 우리가 알 바는 아니지요. 책임도 물론 없구요”라고 말했다.

인천시의 한 요리학원에 들렀다. 훈련생 50명 중 주부가 43명(전체의 86%)에 달했다. 적법한 훈련생 즉 실업자는 4명, 모자보호대상자는 2명, 생활보호대상자는 1명이었다.

고용촉진훈련은 산업현장에서 정작 필요로 하는 제조업 건설업보다는 요리 이미용 피부관리 양재 제빵 컴퓨터 공인중개사 등에 집중되고 있는데 이같은 현상은 훈련대상자 중 주부 비율이 높은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울산시의 경우 지난해 고용촉진훈련 대상자 3천3백89명 중에서 △1천1백명이 한식요리 △6백47명이 정보처리(컴퓨터교육) △6백명이 미용 및 양재 △1백50명이 자동차정비 △62명이 용접 △40명이 중장비 관련 과목을 각각 수강했다.

전북 군산시도 6백7명중 미용이 1백75명(29%), 요리가 1백14명(19%)이었다. 충남 보령시는 5백28명중 한식이 1백89명(36%), 미용이 1백46명(28%)이었다.

이로 인해 일반 학원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 고용촉진훈련이 시작되기전만 해도 IMF바람을 타고 수강생들이 몰렸던 취업준비 학원들이 된서리를 맞고 있는 것.

인천의 한 제과제빵학원의 경우 월 90∼1백명가량의 신규등록자가 있었으나 고용촉진훈련이 확대 시행된 지난해 4월 이후 일반 수강생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누구나 쉽게 무료 고용촉진훈련 대상자가 될 수 있는데 굳이 한달에 20여만원을 내는 일반 수강자가 되려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이 왜 외면하나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저소득층에게 고용촉진프로그램은 그림의 떡이다. 학원에 다닐 시간이 없기 때문에 중도탈락하는 경우가 많다.

인천의 경인중장비학원은 지난해 41명의 고용촉진훈련생을 배당받았으나 이중 11명이 첫날부터 나오지 않았고 나머지 30명 중 절반은 중도포기했다.

이 학원의 강사 윤경상씨는 “탈락자 대부분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30∼50대 가장(家長)이어서 마냥 한가롭게 강의듣고 앉아있을 형편이 못되기 때문인 것 같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중도에 포기한 이모씨(45)는 “낮에는 몇푼이라도 벌어야지 학원은 무슨 놈의 학원…, 학원 다닐 동안 생계비를 대주든지 아니면 야간 학원을 개설하든지 해야 할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그러나 정부는 위장(僞裝)훈련생을 차단하기 위해 교육시간을 주간으로 한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보는 개선책

이런 문제점들은 지난해부터 철저한 준비도 없이 예산만 크게 늘어났기 때문에 비롯됐다. 저소득층을 위해 마련됐던 고용촉진훈련 예산이 지방자치단체별로 7배이상 늘어나면서 훈련인원이 일률적으로 할당되다 보니 일단 숫자부터 채우고 보자는 관리들의 특유의 심리가 발동했던 것.

노동부는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3월1일부터는 주부의 경우 구직신청을 한 취업희망자에 한한다고 방침을 밝혔으나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시되고 있다. 누가 진실한 취업희망자인지 구청 차원에서는 분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벌써 일부 학원에서는 주부들을 상대로 “2개월전에 구직신청을 하기만 하면 훈련생으로 등록할 수 있고 올해부터 교통비도 월 6만원으로 두배나 인상됐다”며 훈련생 유치작전을 펴고 있는 실정이다.

인천 예술공원 디자인학원의 신인섭(申仁燮)대리를 비롯한 현장의 관계자들은 ‘위장 훈련생’에 대한 제재조치를 강화하는 한편 자치단체에 훈련생 숫자를 할당하기 보다는 훈련의 실효성을 철저히 따져본 다음 취업 연관 효과가 없는 훈련은 과감히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팀장 이재호(정치부차장)

이병기(사회부)

공종식(정치부)

부형권(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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