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억 이슬람과의 대화]개혁-개방에 이슬람風 사라져

  • 입력 2001년 7월 1일 18시 59분


카자흐스탄 최대의 도시 알마티. 도시를 에워싸고 있는 톈산(天山)산맥의 정상(頂上)을 하얗게 뒤덮은 만년설의 신비스러운 풍경 때문일까. 도시에는 개방과 개혁의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시내 중심가에서는 이슬람 사원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과감한 노출로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낸 젊은 여성과 도로를 가득 메운 고급 외제차, 방금 지어진 듯한 현대식 건물은 힘찬 활력과 역동성을 한눈에 보여주었다. 최근 중앙아시아의 이슬람국가에 거세게 불고 있는 이슬람 부흥의 열풍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공화국 광장’이나 시청 주변의 웅장한 스탈린식 건축물은 이곳이 중앙아시아가 아닌 러시아의 어느 대도시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게 했다.

도시 외곽의 한 이슬람 사원을 찾아보았다. 입구에 구걸하는 아이들만 분주할 뿐 사원 경내는 한산하기 짝이 없었다. 사원 안마당에는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 등이 한가롭게 거닐고 있어 마치 공원 같았다. 자리를 지키는 성직자는 아무도 없었다. 신학교로 쓰이는 부속 건물에서 이슬람 경전을 공부하는 여성 두 명의 이슬람 의상 차림이 오히려 낯설어 보일 정도였다.

“카자흐스탄의 이슬람은 그렇게 시끄럽지 않은 편입니다.”

한 개신교 단체가 이곳에 만든 사회사업기관에서 일하는 한국인 심모 목사의 설명이다. 가장 큰 원인은 카자흐스탄이 120여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 그만큼 종교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조금 넘는 카자흐인들은 대개 이슬람교도이지만 인구의 30%나 되는 러시아계는 슬라브 정교를 믿는다.

최근 정부가 종교법 등을 통해서 이슬람 외의 다른 종교의 활동을 제한하려 하는 등 약간의 변화는 있지만 다른 이슬람권 국가와는 달리 개신교 등의 선교도 활발히 이뤄지는 등 자유로운 분위기다.

이슬람교를 앞세운 민족주의나 탈(脫)러시아 움직임도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러시아계 정교도로 카자흐어도 서툴다는 나데즈다 고로베츠 문화위원회 대변인(여)은 “중등학교에서 종교 교육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카자흐어가 국어이지만 소수민족에게 강요하지 않으며 교육을 통해 점진적으로 사용을 늘려나가는 온건한 정책을 펴고 있다.

개방적인 경제개혁 정책과 함께 ‘오일 달러’도 이슬람 색깔을 엷게 만들었다. 카자흐스탄 주재 한국대사관 최승호 대사는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뿐만 아니라 독립국가연합(CIS)에서 개방의 선두주자로 꼽힌다”고 말했다. 삼성물산 차용규 상무는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경제기구와 서방국가의 조언을 충실히 이행한 시장개혁 모범국”이라고 평가했다.

게다가 서부 카스피해 유전 지역에서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석유 수출에 따른 ‘오일 달러’ 덕분에 카자흐스탄의 경제는 지난해 9.6%의 고도 성장을 기록했다.

이 같은 경제적인 풍요로움 때문에 이슬람 문화의 정신적 영향력이 퇴색한 것일까. 알마티에만 30여개나 되는 카지노, 초대형 야외 레스토랑과 나이트클럽 등 흥청대는 밤 풍경은 여느 이슬람국가의 경건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개방의 여파로 서구화도 급속히 진행되고 있었다. 중심가 푸르마노프 거리의 독일영사관 앞에는 비자를 받기 위해 아침부터 늘어선 줄이 저녁이 되어도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올해 고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법대에 진학할 예정인 후산 나자예프(17)는 “기회가 닿으면 국비장학금을 받아 영국이나 미국으로 유학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계 미국인 방찬영 박사가 총장으로 있는 카자흐스탄 경영경제대(KIMEP). 상경대 중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이 대학은 모든 강의를 영어로 한다. 영어와 국제화란 두 가지 키워드는 국가와 종교를 가리지 않고 세계의 모든 젊은이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빈부 격차가 커지는 등 성장과 서구화의 그늘도 넓어지고 있다. 알마티 등 대도시와 목축 농업이 주소득원인 지방의 소득과 문화 격차도 커지고 있다.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빈곤층 사이에 과격한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이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했다.

<알마티〓김기현기자>kimkihy@donga.com

▼투자진흥공사 바바예바 부사장▼

카자흐스탄은 여성의 활발한 사회진출과 젊은 전문가의 고속 승진이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에 비해 두드러진다. 은행장과 국영기업 임원, 고위관리는 대개 30, 40대며 여성 의회 의원과 장차관도 드물지 않다.

알마티 시내 증권위원회 건물에 있는 카자흐스탄투자진흥공사(Kazinvest). 외국인 투자를 돕기 위해 98년 세워진 국영기업이다. 이 회사 부사장은 28세의 여성인 바누 바바예바. 바바예바 부사장은 대학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후 민간은행에서 출발해 투자진흥공사가 세워지면서 옮겨와 2년여 만에 부사장에 올랐다. 보좌역인 사디크자노바 줄피라(여)와 다우렌 아벤 역시 모두 20대.

이들은 대개 알마티국립대나 카자흐국립대 등 명문대를 나와 모스크바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다. 최근에는 영국이나 미국 등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젊은 전문가들이 각계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경제 경영 분야 등 국가발전을 위해 필요한 분야의 젊은이들을 뽑아 국비로 서방에 유학 보내고 있다.

바바예바 부사장은 “투자진흥공사는 카자흐스탄에 관심을 갖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기본 정보 제공에서부터 상세한 투자 조언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 정부의 노력으로 94∼99년 67억8000만달러의 외자를 유치했다.

투자진흥공사는 최근 일처리가 더딘 관료주의를 없애 외국 투자를 적극 유치하기 위해 ‘원스톱 컨설팅 시스템’을 도입했다.

바바예바 부사장은 “카자흐스탄도 구 소련 국가에 만연된 부패상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상대적으로 가장 투명한 행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kimkihy@donga.com

▼개요▼

인구 1495만명

면적 271만㎢(한반도의 12배)

도시 행정수도 아스타나(인구 30만, 97년 알마티에서 옮김), 최대도시 알마티(인구 113만)

민족 카자흐인 53%, 러시아인 30%(고려인 13만명)

언어 카자흐어(국어) 러시아어(공용어)

종교 이슬람교 47%, 러시아정교 44%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1인당 GDP 1058달러(99년)

▼약사▼

1465년 카자흐 한(왕조) 성립

1731년 러시아 제국에 복속

1920년 소비에트연방 내 ‘키르기스 자치공화국’에 편입됨

1925년 카자흐스탄 자치공화국 설치

1936년 카자흐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 수립

1937년 극동 한인 강제 이주됨

1991년 소련 해체로 독립. 초대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1997년 수도를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 옮김

1999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재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