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전쟁에서 법률전쟁으로]<2>높아진 지적재산권 장벽

입력 2005-12-14 03:00수정 2009-10-08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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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DVD 부품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A 씨는 지난해 독일 하노버에서 개최된 정보통신 박람회 세빗(CeBIT)에 다녀왔다. A 씨는 귀국 한 달 후 미국 기업으로부터 특허를 침해당했다며 로열티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경우 특허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우편물을 받았다. 박람회에서 제품 소개를 하면서 제조기술을 말했는데, 그것을 근거로 ‘소송’ 협박을 해온 것.

A 씨는 “경쟁이 심한 국내를 떠나 해외시장 진출로 눈을 돌렸지만 해외에서 소송을 하겠다는 협박을 받고 보니 다시 해외 박람회에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겁나는 ‘러브레터(Love Letter)’=A 씨의 경우처럼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해외 박람회에 다녀온 국내 중소기업들이 해외 기업으로부터 ‘러브레터’로 불리는 특허 침해 경고장을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경고장을 ‘러브레터’로 부르는 것은 대부분 특허권자의 이익을 위해 기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허권자들에게는 ‘러브레터’일지 모르지만 상대방에게는 ‘헤이트 레터(Hate Letter)’인 셈.

3, 4년 전 삼성 LG 등 국내 대기업에 집중된 특허침해 소송은 이제 중소기업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몰라서 당하는 한국 기업=최근 국제특허분쟁은 기업의 생존에 영향을 줄 만큼 위협적이라는 것이 한국 기업인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하지만 해외에서 밀려들어오는 파상 공세에 한국 기업들은 속수무책이다.

지난해 국내 MP3플레이어 제조업체 B사는 특허를 침해했다는 경고장을 받고도 8개월 넘게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다가 나중에 실제 발생한 손해액의 3, 4배에 이르는 배상금을 지불하기도 했다. TV 브라운관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드는 C사는 해외 기업이 C사의 연간 매출액을 훌쩍 뛰어넘는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바람에 놀라서 울며 겨자 먹기로 제품 판매단가의 15%를 로열티로 제공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철우(李哲雨·변리사) 변호사는 “해외 특허권자로부터 경고장을 받은 중소기업 의뢰인 대부분이 소송에 대응하지 못한다”며 “자신에게 권리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막대한 소송비용이 없어 포기하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말했다.

해외 기업들은 한국 기업의 특허 침해 사실을 알고도 발견 초기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 한국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커질 때까지 기다리면 더 많은 배상액이나 로열티 비용을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로펌 관계자는 “특허소송의 상당수가 로열티 계약을 체결하기 위한 위협용”이라며 “초기 단계에서 전문가에게 자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암담한 국제특허분쟁 환경=최근 국제특허분쟁 동향은 한국에 적색경보를 보내고 있다. 고도화된 기술에 대한 대가로 지불하는 로열티가 커지면서 특허 침해 배상액도 고액화되고 있다.

특허권자들은 또 소송부터 걸어놓고 협상을 시작하는 ‘선(先) 소송 후(後) 협상’ 전략을 택하고 있다. 국제분쟁에 미숙한 한국 기업으로서는 전투복을 다 챙겨 입지 못하고 전장(戰場)에 나설 수밖에 없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주요 특허 선진국들은 국가 차원에서 제3국과의 특허분쟁에 개입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일본과 EU는 특허침해가 의심되는 제품의 경우 세관 통관을 보류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제3국의 특허 침해를 감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윤선희(尹宣熙) 한양대 법대 교수는 “국내 중소기업 대부분이 지적재산 분쟁에 휘말렸을 때 즉흥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기술개발부터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지적재산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장기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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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한국을 견제하라” 日정부-기업 ‘공습’

‘지적재산 법률전쟁’에서 한국은 미국 등 서구 국가들 못지않게 신경 써야 할 상대가 있다.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전자기술 분야에서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고 일부 분야에서는 추월하기 시작하자 한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적재산 법률전쟁’을 선포했다. 최근 일본의 유명 전자업체들은 한국의 주요 기업들을 상대로 대대적으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5월 후지쓰는 삼성SDI를 상대로 PDP TV에 관한 특허소송을 제기했다. 같은 달 도시바는 삼성전자와 LG전자, 기륭전자, 현대오토넷을 상대로 위성 DMB 특허료의 2%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도시바와 후지쓰가 하이닉스를 상대로 ‘낸드 플래시 메모리’ 특허 침해와 관련한 소송을 냈다. 도시바는 판매금지와 손해배상까지 청구했다.

일본 기업들은 지적재산 전쟁에서 효과적인 공격과 방어를 위해 치밀한 대비를 해오고 있다. 소니는 50명의 지적재산 담당자와 20명의 변리사가 있으며 특허료로 연간 471억 엔(약 4239억 원)의 수입을 올린다. 후지쓰 법무·지적재산본부 인력은 500명에 가깝다. 한국의 대형 로펌 수준이다.

이 전쟁에는 일본 기업 외에 정부와 법원까지 가세하고 있다. 일본 법원은 최근 특허 관련 재판의 심리 기간을 예전의 8년에서 6개월로 대폭 줄였다. 한국 기업 등을 상대로 소송을 내면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해 승패를 가려 준다는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 덕분에 ‘속전속결’로 상대 기업들을 제압할 수 있게 됐다.

일본 정부는 일본 기업들을 전방위로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특허청이 지난해 초 대학연구소와 기술연구소, 기업관계자들을 불러 한국기업에 대한 공격 시나리오를 짰다는 소문도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미쓰비시가 삼성을, 파이오니아가 LG를 맡아서 공격하겠다는 역할분담까지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일본 기업의 지적재산권 전략
기업지적재산 담당자 수 지적재산 관리
소니지적재산 담당자 약 50명,변리사 20명보유 특허: 해외 2만4987건, 일본 국내 1만3392건※특허료 수입 연간 471억 엔
일본전산지적재산 및 법무팀 14명,변호사·변리사 각 2명경쟁사에 특허 침해 경고, 소송 제기 활성화
캐논지적재산법무 본부 약 400명,변호사 변리사 각 12명국내외 보유 특허 약 8만 건
코니카 미놀타지적재산센터 약 130명보유 특허: 미국 약 5300건, 일본 약 6600건
파이오니아지적재산부 약 80명,변리사 3명국내외 보유 특허 5165건
히타치 제작소지적재산본부 약 300명,변리사 54명, 미국변호사 5명 보유 특허: 미국 약 1만4000건, 일본 약 1만8000건, 매년 지적재산보고서 발표
후지 사진필름R&D총괄본부·지적재산본부 약 100명, 변리사 1명국내외 보유 특허 1만 건 이상
후지쓰 법무·지적재산본부 약 460명보유 특허: 미국 1만8000건, 일본 1만3000건, 연보에 지적재산 정보 공개
NEC지적재산사업본부·특허기술정보센터 약 400명국내외 보유 특허 약 5만 건
NEC전자 (미확인)보유 특허: 미국 4501건, 일본 7268건 각 사업부문에 지적재산활동 총괄 CPO 두고 체제정비, 특허 맵 구축
자료:Worldwide intellectual Property Search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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