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승기]메르세데스벤츠 CLK320

  • 입력 2003년 8월 11일 17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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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제게 메르세데스벤츠 한 대만 사주실래요? 다른 애들은 전부 포르셰를 몰거든요….”

60년대 후반 짧지만 강렬하게 한 시대를 노래한 여가수 제니스 조플린. 1971년 발매된 그녀의 앨범 ‘진주(Pearl)’에 실린 ‘메르세데스벤츠’의 첫 구절이다. 2분도 채 안 되는 짧은 곡이지만 넘치는 풍요 속에서 빈곤을 보았던 그녀의 정서가 잘 담겨있다.

벤츠를 시승하면서 이 곡을 꺼내든 건 ‘벤츠 안에서 벤츠를 들어볼까’ 하는 식의 장난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 자명종 대신 아침마다 일정한 시간에 오디오가 켜지도록 해놓았다. 당시 단골로 틀던 게 바로 이 곡이다. 무반주로 외치는 허스키한 목소리에 잠이 깨서는 ‘왜 하필 벤츠일까’라고 갸웃거리곤 했다.

지금 진짜 벤츠 안에서 같은 곡을 듣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벤츠는 단순한 고급 승용차가 아니다. 벤츠에는 ‘부(富)의 상징’이라는 사회적 기호가 숨어있고 벤츠를 모는 사람들은 이런 상징성을 즐긴다.

이번에 시승한 차는 메르세데스벤츠의 CLK 320 카브리올레. 세단형인 E클래스나 S클래스에 비해 문이 두 개뿐인 쿠페 스타일의 벤츠는 국내에 흔치 않다. 뚜껑이 열리는 카브리올레는 더욱 드물다.

예스러운 스타일의 계기판이 마음에 들었다. 시계 바늘이 달린 큼직한 아날로그시계, 속도계와 RPM 게이지의 은색 테두리가 그랬다. 변속기 손잡이도 수동 변속기를 연상시킬 정도로 작았다.

가속력과 코너링을 테스트하기 위해 북악 스카이웨이로 차를 몰았다. 3200cc 스포츠카는 지면에 딱 붙은 채 굽이굽이 오르막 산길을 잘도 오른다. 밟는 대로 튀어나가기 때문에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기가 부담스럽다. 뒤를 따르던 승용차 한 대가 언제 처졌는지 미러에서 사라졌다.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 스타일만으론 한 세기가 지나도록 정상을 유지할 수 없다. 성능도 최고여야 한다.

제니스 조플린의 곡에는 벤츠와 함께 컬러TV가 나온다. 60년대엔 컬러TV도 꽤나 비쌌겠지만 지금은 흔하다. 하지만 벤츠는 여전히 부의 상징이다. 이번에 시승한 모델은 9270만원이다.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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