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노블리안스]이병기/“협상가는 자기견해의 포로 되면 안돼”

  • 입력 2004년 5월 30일 17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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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년6개월 전 외부강좌에서 ‘협상학’에 관한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강의를 맡은 노(老)교수님은 촛불집회와 반미(反美) 감정에 관한 코멘트로 수업을 끝냈습니다.

그는 “협상가는 자기 견해의 포로가 되지 말고 현실을 냉철하게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며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반미를 외치는 촛불집회 한 번에 천문학적 세금이 필요하다는 현실도 알아야 협상가의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이 미국의 우산에서 벗어나려면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숨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며 △미국의 전쟁억지력 공백에 따른 한국의 국방비 증가 △미국이 지켜준 석유 수송로가 불안해질 때 생기는 에너지 안보비용 △컨트리 리스크(국가 위험도) 증대 등을 예로 들었습니다.

일주일 전 우연히 주한미군의 중요 업무를 다루는 예비역 미군 고위 간부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는 “미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부끄러워하면서도 최근 한국에 널리 퍼진 반미감정에 대해 크게 우려했습니다. 반미감정이 한국의 지식인과 파워엘리트 사이에도 퍼져 있다고 믿고 있었으며 국회에 진출한 정당이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또 한국에서 근무하는 많은 미국 군인이 미국은 물론 한국의 국익을 위해 주둔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데 반미감정이 이렇게 확산되면 한국에 남을 이유가 없어진다고 걱정하더군요.

그는 한국 언론과 인터넷에서 형성되는 여론에 대해서도 지적을 했습니다. 일부 젊은 미군이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 객관적 시각이나 미군의 입장은 들어보지 않고 너무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경향이 있다고 불평을 하더군요.

저는 이런 의견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또 전체 미군이나 미국의 입장을 대변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와 헤어지면서 ‘협상가의 자격’을 말씀하신 노교수의 강의노트를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병기 경제부기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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