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뉴스인물]<5>김정태 前국민은행장

  • 입력 2004년 12월 24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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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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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金正泰·58·사진) 전 국민은행장은 퇴임 50일 만에 몰라보게 달라졌다.

21일 서울 시내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의 얼굴에는 윤기가 흘렀다. 행장 시절보다 표정이 훨씬 밝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체중도 3kg이나 늘었다. 오전 8시까지 충분히 자고 집 부근 한강변을 자주 산책한 덕분이란다.

퇴임 후 집안에 경사가 겹쳐서인지 웃음도 많아졌다.

보름 전 손녀딸을 얻었고 딸 운영 씨는 지난달 산업은행과 삼성전자 공채에 모두 합격했다. 무엇보다 “10년 동안 사장 그만하라, 행장 그만하라고 말리던 집사람이 ‘뒤늦게 신혼을 맞은 것 같다’며 무척 좋아한다”고 싱글벙글이다.

“퇴임하면 농사꾼으로 돌아가겠다”던 그의 말은 의례적인 귀거래사(歸去來辭)가 아니었다.

경제활동으로 치면 퇴임 후 가장 많은 시간을 쏟은 게 농사일이다. 이달 초까지 경기 화성시에 있는 농장에 주말마다 내려가 가을걷이를 했다.

“3일 동안 김장을 했어요. 배추 900포기를 다듬고 자르고 절이고 묻다 보니 녹초가 됐어요. 10여 집이 내려와 함께 했는데 절반은 나눠 갖고 나머지는 땅에 묻었어요. 최근 날씨가 따뜻해 벌써 다 익었어요.”

35년 금융 인생의 추수(秋收)는 막 시작됐다.

“인생 참 신기합디다. 원칙을 고수하다 보니 매번 잃고 손해보고 진 것 같은데 전체로는 성공한 인생 같아요. 왜 그렇게 됐는지 연구 좀 해볼 작정입니다.”

은행장이 된 것은 사실은 우연이라고 말했다. “지인(知人)들 몇몇이 추천하고 강력히 민 덕분에 운 좋게 됐다”는 것.

퇴임 직전 금융감독 당국과의 ‘밀고 당기기’를 떠올리며 잃고 손해 본 것 가운데 가장 아쉬운 것은 무엇인지 물었더니 슬쩍 피했다.

“꿈처럼 아득한 옛일이 됐어요. 은행장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아요.”

하지만 인터뷰 이틀 뒤인 23일 서강대에서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는 자리에서 그는 “시장 참여자는 정치권의 무리한 시장 개입에 ‘노(No)’라고 말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때가 되면 지금 흠뻑 빠져 있는 ‘백수(白手)’의 즐거운 일상에서 또다시 벗어나게 될지도 모른다.

“사모펀드(PEF)를 맡아 달라, 대안학교를 같이 해 보자는 등 제의가 많아요. 부(富)를 존경하고, 존경받을 수 있는 부를 쌓는 풍토를 정착시키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금융권 후배들을 위해 할 일이 있을 것도 같아요. 천천히 고민해 보렵니다. 사회에서 많이 받았으니 그만큼 돌려 드려야지요.”

김 전 행장은 21일 운전사를 통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5000만 원을 기탁했다. 그는 기부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으려 했으나 모금회 측이 “이웃사랑의 모범이 되도록 공개하게 해달라”고 부탁해 마지못해 승낙했다. 모금회는 그를 올해의 ‘행복지킴이’ 25호로 선정했다. 2002년에는 국민은행 주식 스톡옵션 행사로 얻은 수익 100억 원의 절반을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했다.

이철용 기자 lcy@donga.com

김승진 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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