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과거’에 매달린 광복절 경축사

  • 입력 2004년 8월 15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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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가 ‘미래’보다 ‘과거’에 초점이 맞춰진 것은 유감이다. 노 대통령은 “반(反)민족 친일행위만이 아니라 과거 국가권력이 저지른 인권침해와 불법행위도 대상이 돼야 한다”며 과거사 진상규명의 당위성을 얘기하는 데 연설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국회 안에 과거사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진상규명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물론 과거사 정리는 필요하다. 밝힐 것은 밝혀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명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가 대통령이 진두지휘하듯 하며 나서야 할 국정의 선(先)순위라고 보기는 어렵다. 과거사 정리는 관련 학계에 맡기고 대통령과 정치권은 보다 시급한 국가적 현안에 매달려야 옳다.

지금 대한민국호(號)는 총체적 위기상황이다. 국정 전반에 걸쳐 어느 것 하나 믿음을 주는 분야가 없고, 특히 경제의 경우 이대로 가다간 바닥으로 주저앉고 말 것이라는 국내외 전문가들의 비관적인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국민 상당수가 희망을 잃고 살아가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대통령은 위기의 원인을 짚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를 경축사에 담아야 했다. 그런데도 민생, 경제 살리기에 대해선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과거와의 싸움’만 강조해서야 국민의 실망감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실제로 이날 경제회생과 관련해 뭔가 희망적인 언급이 나오기를 기대했던 재계는 경축사가 과거사 규명에 집중되자 크게 실망하고 있다고 한다.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면서 미래로 달려가야 할 집권측이 과거로 회귀해 국력을 소모하는, 그래서 국론분열과 갈등을 심화시키는 대책 없는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노 대통령은 “분열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자”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이 말은 국민이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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