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내셔널 어젠다委 제안 11]지방분권

  • 입력 2003년 1월 16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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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살다 보면 의료 교육 취업 정보 문화 등 삶의 전반적 수준이 떨어진다고 느끼게 된다. 이러니 사람이 떠날 수밖에 없다. 사람이 떠나는 곳에 경제가 살아 있을 리 없다.

무너지는 지방경제의 모습을 ‘표1’에서 볼 수 있다. 지방 사이에도 경제적 차이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게 지방은 차츰차츰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로 자원이 집중되고 지방간에도 경제적 격차가 생긴 근인(近因)은 중앙정부의 개입에서 찾을 수 있다. 1936년부터 확장을 시작한 서울은 1963년 당시 서울 총면적 268.35㎢보다 넓은 328.15㎢를 편입시켜 거대 영역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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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반까지도 우리나라에는 지방간 경제적 격차가 거의 없었다. 비록 모두가 못 사는 평등이었다 하더라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경제 수준에 있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모범적일 정도였다.

지방간 경제적 평등이 깨진 것은 군사정부에 의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고부터다. 특정 지역을 먼저 개발한 후 그 효과를 다른 지역으로 파급시킨다는 취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지방간 경제적 격차를 확대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지방이 죽어 가게 된 원인(遠因)은 지방간의 경쟁을 없앴다는 데 있다.

지방 정부는 자원을 유치하기 위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그러나 중앙정부에 의해 자원이 배분되는 풍토에서는 경쟁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중앙정부가 특정 지방을 경쟁에 유리하도록 배려한다면 불공정 경쟁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방을 살리려면 첫째, 공정한 경쟁체제를 구축해 지방간의 경쟁을 강화해야 한다. 이는 중앙정부의 권한을 약화시킬 때 가능해진다.

둘째, 후발 주자의 경쟁력을 보완해 줘야 한다. 이를 위해 후발 주자들의 장점과 현실적 필요성 등을 고려해 적절한 지원책이 강구돼야 한다. 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긴밀한 협조 하에 수행돼야 한다.

셋째, 지방이 경쟁할 수 있도록 충분한 권한을 주되 응분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궁핍한 재정에도 불구하고 전시행정 등으로 예산을 낭비하는 지방정부가 적지 않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경쟁적으로 ‘호화판’ 신청사를 짓고 있다.대전시 청사는 경실련에 의해 1999년 최악의 10대 예산낭비 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실과 국에 배정된 예산을 전용하면서까지 판공비를 펑펑 쓴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예산을 책임져 주기 때문이다. 중앙정부는 지방 재정을 도와 주되 낭비를 일삼는 지방자치단체는 파산토록 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경쟁을 강화시켜 지방을 살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방간 경쟁체제는 중앙의 권력 집중을 해소하는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는 동시에 경제적 효율을 신장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지자체간에 공정한 경쟁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현재의 지방행정구조 하에서는 지방간 공정 경쟁이 불가능하다. 지자체간의 입장이 공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광역시 그리고 도는 법적 지위가 다르다. 서울시는 광역단체 중 유일하게 시장이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조직 예산 인사에 있어 특별한 지위를 인정받는다. 따라서 다른 광역단체들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없다. 서울은 중앙의 개입에 의해 넓어진 영역을 최소한으로 축소해 수도로서의 기능만 남기도록 해야 한다.

도와 광역시는 폐지해야 한다. 도는 중앙집권시대 지방에서 중앙정부의 시책 집행을 대리하는 기구로 기능했다. 과거의 교통과 통신 수준에서는 도라는 대리인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정보통신 수준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유통 비용은 파격적으로 낮아졌다.

광역시는 더욱 기형적인 자치단체다. 광역시는 인접 도와 영역을 공유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는데도 행정구조상으로는 같은 수준의 지방정부로 돼 있다. 결국 국민은 지방정부를 운영하는 비용을 이중으로 부담하게 된다는 얘기다.

기초단체인 시 군 구간의 불균형도 문제다. 이들의 경쟁은 상위 광역단체의 영향을 받기 쉽다. 특별시 및 광역시, 그리고 도 사이의 경제적 격차가 그대로 기초단체들에 전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기초단체의 경쟁 필요성이 약화돼 있다. 기초단체들끼리 전국적으로 경쟁하기보다는 상위 광역단체가 배분하는 자원을 두고 역내 기초단체들끼리의 제한 경쟁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표집필=정정목 교수 청주대 행정학

▼행정수도 이전 효과는…▼

그동안 정부는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해 왔다. 이들 정책의 요체는 지방으로의 전출 장려와 중앙으로의 전입 억제였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은 모두 실패였다. 정책에 따르는 것보다 서울에서 자원과 소득을 얻을 가능성이 더욱 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정책 결정권자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합리적(최소한 경제적 의미에서)이었던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론도 이런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행정수도를 충남의 어느 지역으로 이전한다면 서울 집중 현상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단기적 효과일 뿐, 더 큰 원치 않는 정책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중앙정부는 어느 지역이든 행정수도를 건설할 곳을 선정해야 한다.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고 공개절차를 거쳐 최대한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선정한다 하더라도 중앙정부에 의한 결정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지방간의 자율적인 경쟁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는 행정수도로 선정된 지역에 막대한 투자를 하게 될 것이다. 투자가 이뤄지면 사람들이 모이고 집 값이 오르며 자원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여기에 부응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누구라도 그 길을 가고자 할 것이다. 이미 충청 일부 지역 부동산 값이 치솟고 있다고 한다. 이 지역에 부동산을 사려는 사람을 투기꾼이라고 욕할 수만은 없다.

행정수도를 이전하여 수도권 집중을 막겠다는 것은 단기적이고, 중앙집권적이며, 경쟁을 배제하는 정책이기 때문에 서울 집중을 거듭해 온 지난 40여년의 과정을 장소를 옮겨 새롭게 시작하는 것에 불과하다.

서울 집중 현상이 중앙정부 개입과 이에 따른 지방의 경쟁력 약화 때문에 초래된 것이라는 사실에 근거해 대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중앙정부가 개입해 꾸준히 확대해 온 서울의 영역을 축소해 다른 자치단체와 공정하게 경쟁하게 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하는 것이 서울 집중을 막을 수 있는 보다 합리적인 대안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서울은 서울대로 살리는 동시에 지방도 함께 잘살 수 있도록 하는 체제를 갖추는 것만이 특정 지역으로의 집중현상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윤승모기자 ysmo@donga.com

▼역대정부 행정개편 시도▼

도(道) 등 광역지방정부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지방행정구조 개편론이 제기된 것은 최근의 일은 아니다. 이미 노태우(盧泰愚) 정부 시절, 민주화의 진전과 이에 따른 지방자치제 부활이 활발하게 거론되면서 지방행정구조 개편 주장이 간간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본격적인 행정구조개편 논의는 김영삼(金泳三) 정부에서 시작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인 1993년 초 이른바 ‘동숭동팀’이 서울특별시 및 광역시, 도-시군구-읍면동의 3단계로 돼 있는 행정구역을 한 단계로 축소하는 개편안을 제시했다.

서울의 경우는 동서남북의 4개 구로 분할하는 안과 서울의 사대문안을 중앙구로 하고 나머지 지역은 동서남북으로 나누는 안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 안은 김영삼 정부의 정책으로 채택되지 못했다.

행정구조개편 논의가 활기를 찾은 것은 1995년. 당시 여당인 민자당은 6월 지방자치선거 전에 행정구조개편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민자당은 3단계로 돼 있는 현행 지방행정구조는 중앙집권체제에 맞춘 것이기 때문에 지방자치의 취지를 살리고 행정효율을 이루기 위해 이를 2단계로 축소해야겠다고 나섰다.

그 방법론으로는 △특별시 광역시 도를 폐지하고 경제권 생활권에 맞춰 시군구를 확대 개편하는 안 △읍면동을 폐지하는 안 △백지상태에서 도를 재구획하는 안 등이 제시됐다.

그러나 이 같은 논의는 지방행정단계를 축소할 경우의 인원 감축 등을 우려한 공무원들의 반발과 지역이기주의 등에 밀려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또 관련 법 처리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정치권의 소극적 태도도 상당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정치인들로서는 행정구역이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선거구와 맞물리기 때문에 행정구역이 개편될 경우 자신들의 기득권을 침해당할 것으로 보고 이를 내켜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도 지방행정구조를 2단계로 축소하는 방안을 시도했지만, 역시 성공하지 못했다.

김 대통령은 1997년 15대 대선 후보시절에는 공약으로 읍면동을 없애고 출장소, 지역정보센터로 개편한다는 안을 제시했다. 이후 1998년 당선자 시절에는 읍면동 폐지방안과 함께 도를 폐지하는 대신 3∼5개의 기초자치단체를 통합해 광역화하는 방안 등을 검토했다.

1999년에는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광역시를 폐지해 도 산하 자치단체로 편입하고 25개 자치구를 8∼10개로 줄이는 행정구조 개편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기도 했으나 번번이 논의로만 끝났다.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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