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정치상식]「정당경선」

  • 입력 1998년 1월 12일 20시 22분


한국정치사에 등장하는 ‘경선(競選)’은 대통령이나 시도지사 같은 공직선거후보 또는 정당대표를 소속 정당의 대의원들이 직접 선거를 통해 뽑는 것을 뜻한다. 이는 그 정당이 얼마나 민주화되어 있느냐를 재는 척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선은 거의 야당의 ‘전유물’이었다. ‘40대 기수’를 내세웠던 김영삼(金泳三·YS), 김대중(金大中·DJ), 이철승(李哲承)씨의 70년 신민당 대통령후보경선과 유신말기인 79년 ‘선명야당’을 주창했던 YS를 다시 총재로 선출한 ‘5.30전당대회’가 대표적인 야당의 경선사례였다. 그러나 쿠데타로 창당한 공화당 민정당 등 권위주의 시절의 여당에서는 경선의 ‘경’자도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여당이 형식적이나마 경선을 치른 것은 3당합당 이후인 92년 제14대 대통령후보 선출 전당대회. 그나마 이종찬후보의 경선포기 및 탈당으로 ‘YS추대대회’처럼 변질됐다. 97년 7월의 신한국당 대통령후보 경선은 여당 사상 초유의 자유경선이었지만 이인제(李仁濟)후보의 경선불복으로 빛이 바랬다. 야당의 경우 87년 13대 대선 직전 YS가 DJ에게 후보단일화 경선을 제의했으나 DJ가 이를 거부함으로써 자유경선은 불발에 그쳤다. 94년 구 민주당 시절에는 원내총무까지 경선으로 선출하는 등 당내 경선분위기가 확산되는 듯했으나 대부분 세몰이 경선이어서 경선의 참뜻을 살리는데는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창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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