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우선주의’로 회귀한 인텔, 57년 역사상 가장 빠른 반전 거둔 배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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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은 인텔 설립 55년 차가 되는 해였고, 설립 이래 가장 어두운 시기였다. 인텔은 1986년 메모리 사업부를 철수하며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CPU 시장에 전념하는 계기가 됐다. 1986년이 시장의 과도한 치킨게임으로 벌어진 문제였다면, 2024년은 전략적 실책이 위기가 됐다. 당시 AI 반도체 경쟁에 따른 데이터 센터 시장 점유율이 하락했고,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부문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수익으로 이어내지 못하고 수율 안정화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2024년에만 190억 달러(당시 약 26조 원)의 손실을 기록했으며 배당을 중단하고 대규모 투자도 모두 취소해야 했다.

립부 탄 CEO가 2026년 TIME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인텔은 반세기에 걸쳐 미국의 기술 우선주의를 상징하는 기업이었지만 2024년에는 주가가 60% 폭락하며 존폐의 기로에 섰다. 그런 상황에서 립부 탄 CEO가 1년 만에 상황을 완전히 타개했다 / 출처=인텔
립부 탄 CEO가 2026년 TIME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인텔은 반세기에 걸쳐 미국의 기술 우선주의를 상징하는 기업이었지만 2024년에는 주가가 60% 폭락하며 존폐의 기로에 섰다. 그런 상황에서 립부 탄 CEO가 1년 만에 상황을 완전히 타개했다 / 출처=인텔

하지만 2025년 3월, 케이던스 디자인 시스템즈를 이끈 립부 탄 최고경영자가 인텔 최고경영자로 부임하며 상황이 반전됐다. 립부 탄 CEO는 인텔 파운드리를 즉시 분사하고 비핵심 자산인 알테라 매각, 모빌아이 지분도 정리했다. 또한 엔비디아의 투자를 받아내며 서버 사업 안정성을 확보했고, 보조금 지급에 거부 의사를 밝힌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지분 10% 인수로 우회 지원을 받아내며 정치적 불확실성도 해소했다. 업계에서는 인텔이 제자리를 찾는데 수 년이 걸릴 것으로 봤지만 1년 만에 리더십을 회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상승 흐름 잡은 인텔, ‘엔지니어링 퍼스트’ 통했다

2024년부터 2025년 새 두 번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었지만, 매출 총이익률은 2024년 32.7% 대비 2.1% 상승한 34.8%로 올랐다. 전체 매출액도 529억 달러로 알테라 분사 영향을 제외하면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관료주의 문화 대신 엔지니어링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립부 탄 CEO의 정책이 2026년 들어 빛을 발하고 있다.

인텔 18A는 리본펫과 파워비아 적용으로 인텔 3 공정 대비 동일 성능에서 전력 효율은 최대 25% 향상 칩 밀도는 30% 늘었다 / 출처=인텔
인텔 18A는 리본펫과 파워비아 적용으로 인텔 3 공정 대비 동일 성능에서 전력 효율은 최대 25% 향상 칩 밀도는 30% 늘었다 / 출처=인텔

인텔은 올해 1월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에서 18A(1.8나노미터 상당) 공정의 ‘인텔 코어 울트라 시리즈 3’를 출시하며 최초의 1나노 대 반도체 출시에 성공했다. 18A 공정을 놓고 TSMC 대비 밀도 측면이 부족하다거나, 일부 고객사에서 테스트를 중단했다는 소식도 있었지만 현재는 제품 양산에 성공해 고객사를 찾고 있다.

번스타인 소시에테 제네랄 그룹은 인텔의 서버용 CPU 매출이 전년 대비 36% 성장할 것이며, 1분기 매출은 약 125억 달러, 총 매출 추정치는 530억 달러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았다. 이미 주가는 68.5달러로 올해 들어 85% 올라 2021년 4월 이후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6년의 인텔, 테슬라·구글·삼바노바 협력 등 호재 만발

인텔의 갑작스러운 주가 상승의 배경에는 전략의 변화도 영향을 미쳤지만, 립부 탄 CEO 본인의 네트워크와 협력 방안 마련이 성과를 올린 탓이다. 지난 4월 7일, 인텔은 공식 X 계정에 일론 머스크와 립부 탄이 함께 촬영한 사진을 올리며 스페이스X, xAI, 테슬라와 함께 테라팹 프로젝트에 참여해 반도체 제조 기술을 지원할 것이라고 깜짝 선언했다. 테라팹은 텍사스 주 오스틴의 ‘기가 텍사스’ 부지에 건설되는 1억 평방피트 규모의 초거대 반도체 복합 단지다.

지난 4월 7일, 인텔 공식 X에 립부 탄 CEO가 일론 머스크의 테라팹 건립에 협력한다는 발표가 올라왔다 / 출처=인텔
지난 4월 7일, 인텔 공식 X에 립부 탄 CEO가 일론 머스크의 테라팹 건립에 협력한다는 발표가 올라왔다 / 출처=인텔

기존의 반도체 공장은 반도체 설계나 생산, 메모리 통합, 첨단 패키징이 각 기업마다 나눠서 진행된다. 만약 반도체 가치사슬 중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반도체 생산 공정 전체가 중단된다. 과거에도 대만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TSMC 공장이 일시 중단되며 전 세계 반도체 생산이 마비된 바 있고, 최근에는 메모리 반도체 수급 불가로 생산이 지연되는 경우도 발생 중이다. 일론 머스크는 자율주행 차량용 AI 시리즈 칩,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 위성용 D3칩 등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칩 설계 및 생산은 물론 메모리, 첨단 패키징까지 모두 ‘테라팹’에서 단독으로 진행하는 구상을 수립했다.

테라팹은 일론 머스크가 운영 중인 기업의 반도체 생산을 전담하는 초거대 반도체 단지다 / 출처=테슬라
테라팹은 일론 머스크가 운영 중인 기업의 반도체 생산을 전담하는 초거대 반도체 단지다 / 출처=테슬라

일론 머스크가 구상 중인 테라팹의 목표 생상량은 연간 1테라와트의 AI 연산 처리 칩 생산으로, TSMC 전체 생산량의 70%에 달한다. 인텔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협력할지에 대해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18A 이하 초정밀 공정이나 반도체 설계 지원, 3D 패키징 기술, 저전력 반도체 기술 등에 협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텔 코리아 관계자는 “공식 발표는 현재 정리 중이며 몇 주 안에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운드리 측면에서는 애플 실리콘 프로세서를 수주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애플 소식에 정통한 궈밍치 대만 TF인터내셔널 증권 애널리스트는 애플의 차세대 M 시리즈 칩을 인텔이 생산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생산 일정에 문제가 없다면 인텔은 18A 공정을 기반으로 2027년부터 애플 실리콘을 제조하게 된다. 인텔은 최근 보급형 제품군인 인텔 코어 시리즈 3를 출시했는데 18A 반도체 생산 확대가 가능해진 것으로 보인다.

서버용 제품군, 단순 판매 넘어 생태계 확보와 협력까지


인텔 제온 6+(코드명 클리어워터 포레스트) 다이가 인쇄된 웨이퍼 / 출처=인텔
인텔 제온 6+(코드명 클리어워터 포레스트) 다이가 인쇄된 웨이퍼 / 출처=인텔

구글과의 협력은 구상 단계를 넘어 실행 단계에서 발표됐다. 인텔은 앞으로 구글과 이기종 컴퓨팅 분야에서 확장하며, 맞춤형 인프라 처리 장치(IPU)와 관련해 핵심적으로 협력한다. 현재 구글 클라우드는 인텔 제온 6 프로세서를 탑재한 C4, N4 인스턴스를 포함한 다양한 인텔 기반 인프라를 서비스 중이다. 여기서 인텔 제온 CPU와 인프라를 조율하는 IPU를 공동 개발하고, 구글 인프라가 대규모 AI 연산을 더 효율적으로 처리하도록 한다.

구글은 현재 7세대에 해당하는 TPUv7으로 구글 제미나이를 비롯한 AI 학습 연산을 처리 중이며, 이 칩은 최대 9200개의 칩이 연결돼 대규모로 데이터를 처리한다. 하지만 AI 가속기만으로는 데이터를 처리할 수 없으며, 학습을 조율하고 데이터를 전처리하기 위해서는 인텔 제온 같은 CPU 연산도 필수다.

엔비디아가 지난 3월 GTC 2026에서 공개한 엔비디아 DGX 루빈 NVL8 시스템에 인텔 제온 6776P 프로세서 두 개가 탑재된다 / 출처=엔비디아
엔비디아가 지난 3월 GTC 2026에서 공개한 엔비디아 DGX 루빈 NVL8 시스템에 인텔 제온 6776P 프로세서 두 개가 탑재된다 / 출처=엔비디아

서로 다른 종류의 반도체가 결합하므로 입력 지연이나 병목, 호환성 조율 등이 반드시 필요한데 IPU 공동 개발을 통해 적극적으로 인텔 제온과 구글 AI 가속기를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인텔이 구글의 CPU 수요를 고정적으로 가져가고, 자체 반도체를 다루는 메타, AWS, 마이크로소프트 등도 두 기업 협력을 바탕으로 인텔 CPU 도입을 고려할 것이다.

엔비디아는 이미 지난해 Arm 지분을 정리한 뒤 인텔에 보통주 50억 달러(약 7조 4000억 원)를 투자했고, NV링크 퓨전을 통한 x86 CPU 및 엔비디아 GPU 연결, DGX 루빈 NVL8에 인텔 CPU를 탑재하는 등 인텔 생태계 확대에 나서고 있다. 지난 2월에는 미국의 AI 가속기 기업 삼바노바 시스템즈와도 전략적 협력을 체결했다. 인텔은 데이터센터 인프라 구축에 삼바노바 제품을 통합 지원하며, 클라우드와 파트너 채널 전반에 걸쳐 시장을 공유한다. 립부 탄 CEO가 삼바노바 시스템즈의 초기 투자자이자 회장직을 역임한 점도 협력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AMD, Arm 등 주요 경쟁사도 성장세, 파운드리 사업이 관건

인텔이 이렇게 빠르게 재기할거 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다. 2023년까지 2088억 달러(약 308조)였던 시가총액은 2024년 858억 달러(약 126조 원)까지 폭락했고, 강력한 한방이 있어도 재기가 어려울 거란 전망이 팽배했다. 하지만 립부 탄 CEO 부임 1년 만에 시가총액은 4월 현재 3439억 달러(약 508조 원)로 과거의 영광을 거의 회복한 상황이다. 하지만 인텔이 잘한 점 보다도 AI 시장 성장에 따른 기대감이 선반영 된 것이 더 크다.

인텔은 지난 4월 16일(현지시각) 보급형 라인업에 해당하는 인텔 코어 시리즈 3를 출시했다 / 출처=인텔
인텔은 지난 4월 16일(현지시각) 보급형 라인업에 해당하는 인텔 코어 시리즈 3를 출시했다 / 출처=인텔

PC 시장조사기업 머큐리리서치가 집계한 2025년 4분기 CPU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AMD의 서버 시장 점유율은 약 41%, PC 시장 점유율도 36.4%로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다. 즉 인텔의 서버 점유율은 60% 아래로, PC 점유율도 63%대로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시장 전망에서는 Arm이 AGI를 앞세워 서버 시장에 진출해 AMD 이외에 Arm과도 경쟁해야 한다. 또 PC 시장도 올해 메모리 가격 상승 등으로 최소 5%에서 12%까지 출하량이 감소할 예정이어서 인텔의 매출도 그만큼 줄어들 예정이다.

인텔의 발목을 잡아온 파운드리 사업은 고객사 확보가 최우선 순위로 떠올랐다. 18A 공정 성숙에 따라 내부 수요 이외에 다른 외부 수요를 통한 매출 창출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인텔은 2024년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매각했던 아일랜드 레익슬립 소재의 팹34 지분을 다시 인수해 자신감 회복에 나섰다. 또 30년 간 삼성전자 파운드리에서 재직한 한승훈 영업총괄 부사장을 영입해 고객사 확보에 열을 올린다. 대외적으로 외풍이 강한 상황이지만 기반은 마련됐다. 인텔이 얼마나 순항할지는 이제 두고 볼 일이다.

IT동아 남시현 기자 (s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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