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 성수동, 옛 성수공업고등학교 부지에 지체장애 학생을 위한 공립 특수학교 ‘성진학교’가 들어선다. 2025년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2027년 착공, 2029년 3월 개교를 목표로 한다. 22학급, 정원 136명. 유치원부터 전공과까지 한 공간에서 운영되는 구조다.
필자는 공간을 기획하는 일을 한다. 도시가 어떻게 변하고, 땅이 어떻게 재구성되며, 건물이 어떤 메시지를 발신하는지를 다룬다. 동시에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동생의 형이기도 하다. 이 두 정체성이 겹칠 때, 성수동의 특수학교 설립은 단순한 공공건축이 아니라 ‘질문’이 된다.
서울은 어디를 바라보며 성장하고 있는가.
136명은 많아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136명은 모두 가족이 있다. 한 학교는 136개의 삶을 이동시킨다. 도시가 그 이동을 줄여주는 일은 단지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특수학교 서울성진학교 신설을 위한 서울시 공유재산관리계획안이 25년 09월 12일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 출처=서울교육청
왜 성수동인가, 재생의 역설
성수동은 서울에서 가장 상징적인 ‘도시 재생’의 무대다. 구두 공장과 철공소가 밀집했던 산업 지대는 브랜드 쇼룸과 복합문화공간으로 변모했고, 이 동네를 설명하는 말로 ‘힙하다’가 굳어졌다.
하지만 이 성공 서사는 한 가지 질문을 비껴간다. 이 변화 과정에서 도시의 인프라는 누구에게 맞춰졌는가. 자본과 트렌드에는 민감하게 반응한 도시가, 이동과 돌봄의 동선에는 얼마나 둔감했는가.
서울 동북권은 지체장애 학생을 위한 특수교육 인프라가 취약해, 학생과 가족이 장거리 통학을 감수해온 문제의식이 반복해서 제기돼 왔다. 왕복 2~3시간 통학이 일상이 되면, 수업은 교실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미 ‘체력’과 ‘리듬’이 소진된다.
성수공고 폐교 부지는 한동안 도시 한복판에 남겨진 13,800㎡의 공백이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 부지를 8,000㎡(성진학교)와 5,800㎡(지역사회와 연계하는 시설 등)로 분할 활용하는 계획을 제시해왔다. 무엇을 어디에 놓을지—이 배치 자체가 도시의 태도다.
특수학교 논쟁에서 늘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장애학생의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왜 이 동네에서 교육받아야 하는지 설명해야 하고, 지역 주민은 왜 반대하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교육권은 설득의 대상이 되고, 지역의 욕망은 전제가 된다. 이 비대칭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갈등을 ‘조정’한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권리가 매번 설명과 설득을 거쳐야 한다면, 그것은 아직 온전한 권리가 아니다. 도시의 중심에 놓인 권리는 조용히 작동하지만, 주변에 놓인 권리는 늘 소리를 내야 한다.
서진학교 이후, 특수학교가 드러낸 것
성진학교 논의를 이해하려면 2017년 강서구 서진학교 주민설명회에서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호소하던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특수학교 설립 갈등은 그때 이미 사회적 이슈였지만, 왜 부모가 그런 방식으로 호소해야 했는지에 대한 성찰은 충분히 이어지지 못했다.
특수학교는 오랫동안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의 대상이었다. 부동산 가치 하락의 공포, 지역 이미지에 대한 과민 반응, 그리고 무엇보다 장애를 ‘일상에서 멀리 두고 싶은 것’으로 밀어내는 문화적 습관이 뒤엉켜 갈등을 만들었다.
성수동의 성진학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근에서는 일반학교 동반 건립 요구나 부지 변경 요구 등이 거세졌고, 그 틈에서 특수학교는 교육권의 언어가 아니라 지역 전략의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서울 강서구에 개교한 특수학교 ‘서울서진학교’의 중정 / 출처=서울특별시
정치가 개입하는 방식 — 교육권이 ‘공약’으로 바뀌는 순간
도시에서 학교 하나를 짓는 일은 결국 정치가 된다. 문제는 정치가 개입하는 ‘방식’이다. 특수학교가 논쟁의 중심에 설 때, 교육권은 자주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바뀐다.
“우리 동네엔 더 좋은 학교가 필요하다”, “이곳은 다른 용도로 써야 한다”, “지역 발전과 맞지 않는다.”
이 언어는 ‘누가 틀렸는가’를 따지기보다, ‘무엇이 중심이었는가’를 묻는다. 장애 학생의 통학권과 교육권은 늘 설명해야 하고, 설득해야 하고, 종종 감정으로 증명해야 한다. 반면 지역의 욕망은 이미 상식처럼 작동한다. 그 비대칭이 갈등을 반복 생산한다.
성진학교의 본회의 의결 장면이 상징적이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의회 안에서는 표결이 진행됐고, 바깥에서는 부모들이 기다렸다.
“재석 73명 중 찬성 71명, 반대 1명, 기권 1명.”
숫자는 건조하지만, 그 숫자를 기다린 사람들의 삶은 결코 건조하지 않았다. 법은 앞서 있지만, 공간은 따라오지 못한다
대한민국은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을 갖고 있고, UN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했다. 법의 언어에서 특수교육은 ‘정책 옵션’이 아니라 권리다.
그러나 권리는 선언만으로 도착하지 않는다. 특수교사 부족, 배치의 지연, 장거리 통학은 ‘권리’가 현실에서 얼마나 쉽게 누락되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권리는 공간 위에 놓이지 않으면 추상에 머문다. 학교라는 물리적 공간은 권리를 현실로 번역하는 최소 단위다.
성진학교 설립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이 추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도시 한복판에서 조정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성수동이라는 상징적인 동네에 특수학교를 짓겠다는 선택은, “권리가 실제로 도달할 수 있는 위치”를 새로 그리는 일이다. 해외 사례가 던지는 질문 — 분리와 지원의 균형
미국은 장애 학생을 가능한 한 일반학급에서 교육하도록 하는 원칙을 두고, 이를 보조 인력·개별화교육계획·보조기술 등과 결합해 ‘패키지’로 운영한다. 핀란드는 학교를 줄이기보다 지원 체계를 촘촘히 엮어 지역의 허브로 만든다. 일본은 교사 양성 단계에서 장애 관련 실습을 제도화해 ‘알지 못하는 두려움’을 줄이려 한다.
각 나라의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장애를 분리의 대상이 아니라 ‘지원 구조의 문제’로 본다는 점이다. 동시에 지원 체계를 강화하려면 물리적·상징적 기준점이 되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분명하다. 성진학교는 서울 동북권 특수교육의 기준점이자, 지역 지원을 연결하는 허브가 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성진학교라는 공간은 어떻게 설계돼야 하는가.
성진학교는 성수공고 부지 8,000㎡에 연면적 16,178㎡,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로 계획됐다. 22학급·정원 136명. 유치원부터 전공과까지, 단계별 교육과정을 담아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숫자를 늘어놓는 일이 아니라, 그 숫자를 어떻게 공간 언어로 풀어내느냐이다.
(가칭)성진학교 신설사업 설계공모 당선작 조감도. / 출처=서울시교육청
복도의 폭은 휠체어 두 대가 안전하게 교차할 수 있는가. 전이 공간은 충분한가. 소음과 빛의 자극을 조절할 여지는 있는가. 재활·운동 공간이 ‘부속’이 아니라 교육과정의 일부로 조직되는가. 특수학교 건축은 ‘배려’라는 추상적 미덕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인 기능 요구 조건의 집합이다.
더 큰 과제는 학교가 지역과 어떤 방식으로 만나는가에 있다. 성수공고 부지 전체 13,800㎡ 중 남은 5,800㎡는 지역사회 연계시설로 활용하는 계획이 제시돼 왔고, 최근에는 진로·직업교육 기능(예: AI융합 진로직업교육원 조성)도 거론된다. 이 5,800㎡가 무엇이 되느냐는 곧 “이 학교가 울타리 안에만 존재할 것인가, 동네의 인프라가 될 것인가”를 결정한다.
최근 설계공모를 거치며 학교의 윤곽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설계공모를 거치며 ‘밑그림이 나왔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논쟁이 “지을 것인가”에서 “어떤 학교로 지을 것인가”로 넘어갈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갈등이 드러낸 것들
성진학교 설립 논쟁은 “어느 동네에 어떤 시설을 배치할 것인가”의 문제만이 아니다. 갈등의 언어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가 가진 불안과 집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부동산 가치 변동에 대한 두려움, 지역 이미지에 대한 과민한 반응, 장애를 ‘일상에서 마주치기 꺼려지는 타자’로 상정하는 시선이 그 배경에 놓여 있다.
그러나 갈등의 경험이 언제나 후퇴만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서진학교 사례가 보여준 것처럼, 학교는 운영 방식과 지역과의 접점 설계에 따라 ‘혐오시설’에서 ‘지역 자원’으로 이동할 수 있다. 갈등은 결국 “손해를 최소화할 방법”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도시가 누구를 기준으로 설계될 수 있는가”를 합의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형으로서, 공간기획자로서 — 도시는 누구의 감각으로 설계되는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내 동생에게 도시는 오랫동안 예측 불가능한 자극의 연속이었다. 갑작스러운 소음, 알 수 없는 동선, 한꺼번에 몰리는 사람들. 누군가에게는 ‘활기’로 느껴지는 환경이, 동생에게는 위협에 가깝게 다가오는 순간이 많았다. 도시는 대체로 한 가지 전제를 깔고 움직인다. ‘보통의 시민’이라는 가정이다. 그 보통의 속도, 보통의 감각, 보통의 리듬. 그리고 그 전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사람은 도시의 기능에서 밀려난다.
이 경험은 내가 공간을 바라보는 기준을 조금 다르게 바꿔놓았다. 새로운 동네나 건물을 볼 때, “여기에 그 아이가 들어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출입구는 눈에 쉽게 들어오는가, 안내는 단순한가, 밝기와 소음은 조절 가능한가, 불안을 잠시 낮출 ‘중간 공간’이 있는가. 장애를 ‘시설의 문제’로만 보는 사회에서는 이런 질문이 늘 뒤로 밀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공간이 사람의 마음을 만든다. 사람이 어떤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어느 정도까지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지, 심지어 가족이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지까지도 공간이 좌우한다.
그래서 성진학교는 단지 “학교 한 채를 추가하는 일”이 아니다. 성진학교는 도시가 약자의 감각과 속도에 맞춰 설계될 수 있는지 시험하는 프로젝트다. 이 시험을 통과하는 기준은 감동적인 사진이나 상징적인 문장에 있지 않다. 얼마나 많은 학생이 집에서 학교까지 덜 지치고 도착하는지, 이동 과정에서 불필요한 위험과 불안을 얼마나 줄였는지, 수업과 재활, 자립 훈련이 얼마나 촘촘하게 연결되는지, 무엇보다 학교가 지역사회 안에서 고립되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 ‘동네의 인프라’가 되는지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지표들이 성패를 가른다.
성수동은 성장했다. 높은 빌딩, 촘촘히 들어선 브랜드, 활발한 투자와 소비가 그 증거다. 그러나 사회의 성숙도는 다른 잣대로 측정될 필요가 있다. 약자를 향한 도시의 태도, 특히 교육과 돌봄을 둘러싼 선택이 그 잣대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특수학교를 ‘우리 동네에서 멀리 두고 싶은 시설’로 볼 것인가, 아니면 도시를 구성하는 필수 기반시설로 인정할 것인가. 그 차이는 지역의 취향이 아니라 사회의 수준에서 나온다.
성진학교를 성수동 한복판에 짓는다는 결정은, “권리가 실제로 도달할 수 있는 위치”를 다시 그리는 행위다. 그리고 그 행위는 결국 성수동의 성장 서사를 새로 정의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도시의 성장에는 늘 가격과 속도가 따라오지만, 성숙에는 다른 능력이 필요하다. 불편을 감수하는 능력, 낯섦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 그리고 누군가의 권리가 내 삶의 질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내 도시를 더 안전하고 단단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능력.
필자는 형으로서, 그리고 공간기획자로서 바란다. 성진학교가 ‘갈등의 대상’으로만 남지 않기를. 이 학교가 학생과 가족에게는 삶을 덜 소모하게 하는 기반이 되고, 지역에는 공존의 감각을 훈련하는 장소가 되기를.
성진학교는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질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중심에 두고 성장해왔는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는가. 그 질문의 답은 완공 시점에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이 학교를 어떤 언어로 설명하고, 어떤 태도로 운영하며, 어떤 방식으로 이웃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정훈구 담장너머 대표 (plus82jh9@gmail.com)
담장너머의 공동대표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즈’와 ‘굿디자인 어워즈’에 선정된 바 있으며, 다양한 공간기획 프로젝트를 통해 창의적인 공간과 경험을 제안, 구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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