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지나친 기대는 금물”
의학계, 수 년 전부터 문제 제기
칼슘-비타민D 병용 땐 뇌졸중 위험… 항산화 보충제 복용군 사망률 높아
골고루 먹고 건강하다면 무의미… 일부 환자-고령층은 도움될 수도
전문가들은 영양제의 효능에 대해 지나친 기대감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흔히 ‘영양제’로 불리는 건강기능식품(건기식)은 인체에 유용한 기능성을 가진 원료나 성분을 사용해 제조·가공한 식품이다. 평상시에도 부족한 영양소를 채우기 위해 주기적으로 먹는 이들이 많다. 설 명절을 앞두고 부모님이나 친지들 선물로도 인기가 많다. 그러나 정작 전문가들은 건기식에 대한 지나친 기대치를 낮추라고 조언한다. 실제 실험을 해보니 기대했던 것보다 결과가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건기식을 먹는 것보단 균형 잡힌 식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 엇갈리는 실험 결과… 부작용·위험성 높이기도
건기식의 효과에 대한 대규모 연구들이 수년 전 공개되면서 건기식에 대한 학계의 갑론을박은 지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연구가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연구팀이 2019년 학술지 ‘미국 내과학연보’에 밝힌 연구다. 99만2129명이 참여한 임상시험 227건을 통합 분석했다.
연구팀의 분석 결과 건기식의 심혈관질환 예방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오메가3 다중불포화지방산, 엽산 보충제 등 일부 영양제는 성인의 심혈관질환 위험을 줄일 수 있지만 상당수는 예방 효과가 없고 칼슘과 비타민D가 함께 든 복합제는 오히려 뇌졸중 발생 위험을 높인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명승권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 대학원장이 2017년 ‘대한당뇨병학회저널’에 발표한 논문이 대규모 임상시험을 메타분석했다는 점에서 신뢰도가 높다.
우선 칼슘 보충제를 분석한 결과 심근경색증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결론과 높이지 않는다는 결론을 담은 연구가 혼재했다는 점이 확인됐다. 칼슘 보충제의 안전성에 대한 근거 확립이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가 이뤄진 셈이다.
같은 논문에서 오메가3 지방산의 경우 14편의 임상시험을 메타분석한 결과 심혈관질환 예방 효과가 없었다. 비타민과 항산화 보충제를 대상으로 한 22개의 임상시험 메타분석 결과에서는 비타민과 항산화 보충제의 암 예방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으며 항산화 보충제는 오히려 방광암 위험을 유의미하게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타민과 항산화 보충제 효능에 대한 신뢰가 깨진 것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학협회저널’에 2007년 실린 메타분석 연구에서 47편의 임상시험을 분석한 결과 비타민과 항산화 보충제 복용군은 복용하지 않은 군보다 오히려 사망률이 유의미하게 높았다.
오승원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교수는 “건기식은 부작용이 없다고들 생각하는데 독성 간염이나 알레르기 증상 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며 “비타민이나 미네랄 제품은 실제 인체에 필요한 영양소가 들어 있어 특히 부작용이 없을 것 같지만 고함량 제품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일부 도움 되는 사례 있지만… 지나친 기대 말아야
전문가들은 특정 영양소만 추출해 정제하거나 천연성분과 동일한 화학구조로 합성한 건기식이 천연식품과 같은 효과를 내기는 어렵다고 설명한다. 천연식품은 영양제보다 훨씬 다양한 영양소가 들어 있다. 단일 성분에 초점을 둔 건기식과 달리 천연식품은 각 영양소 간 상호작용을 통해 건강에 다양한 이점을 준다.
영양은 환경의 영향도 받는다. 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오메가3 지방산 효과는 등푸른 생선을 많이 섭취하는 알래스카인들이 심혈관질환 발생이 적다는 사실에서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다”며 “추운 지방에 사는 사람이 생선에 든 불포화지방을 많이 섭취하면 피하지방, 체지방으로 비축돼 체온 조절에 유리해지고 혈관 건강에 이로운 영향을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좀 더 다양한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들에서는 심혈관질환 예방 효과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오메가3 지방산이 건강에 이로운 효과를 낸다는 근거가 사라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건기식에 대한 기대감을 낮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오 교수는 “의약품은 제품 출시를 위해 다수의 엄격한 임상시험으로 효과와 안전성을 증명한다”며 “건기식 기능성은 한두 건의 소규모 인체적용시험 결과만으로 인정될 수 있어 근거가 매우 엄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건강한 사람들은 건기식을 굳이 먹을 필요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 견해다. 오 교수는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면 추가적인 영양제는 불필요하다”며 “국민영양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비타민A, 칼슘, 엽산, 비타민C 등의 섭취량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식사할 때 조금만 더 신경 써 골고루 먹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건기식은 일부 영양분이 결핍된 환자나 고령층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유제품을 자주 먹지 않는 폐경기 이후 여성은 칼슘 및 비타민D 보충제가 도움이 될 수 있고, 근력이 약해지는 노년기에는 단백질 보충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박 교수는 “소화 흡수 능력이 떨어져 편식하는 고령자들도 비타민, 미네랄 등을 포함한 영양제 한 알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며 “특정 영양소가 결핍되는 환자나 특정 질병으로 약물을 사용할 때도 주치의가 필요한 영양제를 권하는 사례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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