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자재의 탄소 저장 능력 주목
이상기후로 천연 저장소 ‘빨간불’… 바다-육지 등 탄소포집 기능 저하
탄소 흡수하는 건축 자재 개발로… 전 세계 배출량의 절반 저장 가능
생산 규모 커 잠재력 뛰어나고… 인프라 마련할 필요 없어 경제적
콘크리트와 같은 건축 자재는 탄소 저장소로서 높은 잠재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성형 인공지능(AI)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로 생성한 이미지.
콘크리트와 같은 건축 자재가 지구온난화 주범인 이산화탄소의 유의미한 저장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됐다. 건축 자재가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창고 역할을 하면 전 세계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절반을 제거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는 분석이다. 연간 약 15Gt(기가톤)의 이산화탄소를 건축 자재 내에 저장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엘리자베스 반 로이엔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UC데이비스) 토목·환경공학과 박사후연구원 연구팀은 건축 자재의 이산화탄소 저장 잠재력을 탐색하고 저장 가능한 추산 결과를 10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 지구온난화로 ‘천연 탄소 저장소’ 기능 퇴색
전 세계 각국은 기후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탄소 순배출량 ‘0’이라는 공동 목표를 세웠다. 과학자들은 화석연료 의존도를 단번에 줄일 수 없다는 점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모아 격리시키는 ‘이산화탄소 포집·저장(CCS)’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탄소 포집을 위해 분자 단위에서 탄소 특성의 이해를 높이거나 포집 장치의 성능을 향상하기 위한 연구 등이 진행 중이다.
CCS 기술 개발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현재 지구 내 ‘천연 탄소 저장소’들이 제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극지연구소가 2023년 국제학술지 ‘해양오염회보’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천연 탄소 저장소로 여겨졌던 남극 바다가 이산화탄소를 오히려 배출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다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절반을 흡수한다. 이 중 약 40%를 담당하는 남극해의 기능에 이상이 생긴 셈이다. 지구의 기온이 오르고 빙하가 바다에 녹아들면서 식물플랑크톤 성장이 방해를 받은 것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식물플랑크톤의 광합성 효과가 탄소를 흡수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육상 탄소 저장소에도 문제가 생겼다. 시베리아 등 고위도 한대 지역의 영구 동토인 툰드라는 전 세계 토양 탄소의 절반을 보관하는 탄소 저장소다. 극지연구소의 2024년 보고에 따르면 툰드라는 지구온난화 탓에 탄소 저장소로서의 기능이 약화되고 있다. 천연 저장소를 대신할 인공 탄소 저장소 마련이 시급해진 것이다.
● 건축 자재, 인간 활동 배출 탄소 절반 포집
연구팀에 따르면 건축 자재는 탄소를 저장하는 유망한 수단이다. 현재 운영 중인 CCS 시설은 이산화탄소를 육지나 바다 지하 깊이 묻기 위해 파이프라인을 설치하는 등 별도 인프라를 갖춰야 하는 경제적 부담이 크다. 건축 자재를 이산화탄소 흡수원으로 활용하면 따로 시설을 마련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은 건축 자재가 탄소 저장소로서 적합한 이유로 우선 1900∼2015년 생산된 건축 자재 누적 질량이 같은 기간 인간의 식량과 동물 사료, 에너지 자원을 합친 질량과 비슷하다는 점을 꼽았다. 규모 측면에서 매우 큰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건축 자재는 수명이 일반적으로 수십 년 이상 유지된다는 점도 이산화탄소 저장소로서 적합하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건축 자재 구성이나 제조 방법을 변경해 탄소를 흡수하도록 만드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연구팀은 콘크리트, 벽돌, 아스팔트, 플라스틱, 목재의 이산화탄소 저장 잠재력을 계산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목재의 연간 수요량은 1.24Gt으로 추산된다. 콘크리트를 만드는 데 쓰는 골재 수요량은 21.7Gt, 건축 용도의 플라스틱은 66t 수준이다. 벽돌은 매년 약 1조2000억 개가 생산되는데 이를 무게로 환산하면 약 2.4Gt이다. 아스팔트 포장에 쓰이는 골재 생산량은 약 2.1Gt이다.
연구팀은 “바이오 기반 플라스틱은 kg당 탄소 저장 잠재력이 가장 뛰어나지만 연간 생산량이 적어 탄소 저장 잠재력은 가장 낮을 것으로 보인다”며 “반면 콘크리트 골재는 저장 능력은 떨어지지만 생산 규모가 크다는 점에서 탄소 저장소로서 가장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건축 자재가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도구로 쓰이게 된다면 한 해 저장 가능한 이산화탄소의 양은 13.2∼19.4Gt에 이를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2021년 기준 인간 활동에 의해 배출된 이산화탄소의 약 50%에 달하는 양이다.
연구팀은 “이산화탄소 저장 잠재력은 건축 자재의 단위 질량당 탄소 저장량보다 자재 생산 규모가 더욱 중요한 요인으로 보인다”며 “건축 자재를 이용한 CCS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육지나 해양 속 깊이 탄소를 저장해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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