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레인지 퇴출, 진짜 이유는?[씨즈더퓨쳐]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3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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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위험이다. 안전하지 않은 제품은 금지할 수도 있다”

지난 1월 9일, 리처드 트럼카 주니어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 위원이 블룸버그 통신과 인터뷰하며 말한 내용이다. 여기서 ‘위험’이라고 말하는 건 우리가 흔히 쓰는 ‘가스레인지’다.

영상 보러가기(클릭) : 가스레인지를 쓰면 유해 물질이 나오는지 실험해봤다. 실험 결과와 관련 인터뷰를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상 링크 : https://youtu.be/WUX1F3oS8gY)

“가스레인지, 우리 몸에 해로우니까”
해당 기사에선 가스레인지를 쓰면 유해 물질이 나온다고 설명한다. 이산화질소, 일산화탄소, 미세먼지가 많이 나오는데 이게 호흡기 질환, 심혈관계 질환, 심지어 암까지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거는 두 개의 논문이다. 하나는 지난해 1월 27일,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으로(DOI : 10.1021/acs.est.1c04707) 미국 가정에서 가스레인지를 쓸 때 메탄과 질소산화물이 배출된다는 내용이다. 논문에 따르면 도시가스의 주성분인 메탄이 새기도 하고, 연소 과정에서 이산화질소나 일산화질소, 일산화탄소 같은 물질이 생긴다. 심지어 가스레인지를 쓰지 않을 때도 시간당 평균 57.9㎎의 메탄이 샌다.

한편 또 다른 근거인 논문은 질환과 상관관계를 찾는다. 지난해 12월 21일, 국제환경연구 및 공중보건저널에 발표된 논문은 미국 내 어린이 천식의 12% 이상이 가스레인지 때문에 생겼다고 분석했다.(DOI : 10.3390/ijerph20010075)

씨즈더퓨쳐 제작진이 실험에 활용한 다이슨 공기 질 측정 배낭. 한국에 3대밖에 없다.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이산화탄소, 휘발성유기화합물, 이산화질소 농도를 측정할 수 있다.
씨즈더퓨쳐 제작진이 실험에 활용한 다이슨 공기 질 측정 배낭. 한국에 3대밖에 없다.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이산화탄소, 휘발성유기화합물, 이산화질소 농도를 측정할 수 있다.


그래서 직접 측정해봤다
30년 넘게 가스레인지를 써왔는데, 위험하다니. 공기 질을 측정할 수 있는 장비를 빌려 씨즈더퓨쳐 제작진도 실험해 보기로 했다. 제작진이 빌린 장비는 다이슨이 만든 공기 질 측정 배낭으로, 미세먼지(PM10)와 초미세먼지(PM2.5), 이산화탄소, 이산화질소, 휘발성유기화합물 농도를 측정할 수 있다. 가스 자체 누출은 제외하고, 가스레인지로 연소할 때 생기는 이산화질소만 따져 보기 위해 가스버너와 인덕션을 활용했다.

실험 대상은 고등어. 미세먼지, 즉 연기가 비슷하게 날 때 생긴 이산화질소의 농도를 비교해 볼 계획이었다. 똑같은 곳에서 산 고등어를 가스버너로 한 번, 인덕션으로 한 번 구웠다.

실험 결과는 인덕션이 아주 조금 나았다. 실험 하기 전 실내의 이산화질소 농도는 10ppb(10억분의 1을 나타내는 농도 단위), 가스버너로 고등어를 구웠을 땐 22ppb까지 올라갔고 인덕션으로 구웠을 땐 8ppb로 큰 변화가 없었다. 가장 보수적인 세계보건기구(WHO)의 실외 대기 이산화질소 권고치 13ppb로 따져보면, 가스를 썼을 때만 이 수치를 조금 넘는 셈이다.

가스레인지로 고등어를 구웠을 때(왼쪽)와 인덕션으로 고등어를 구웠을 때(오른쪽)
가스레인지로 고등어를 구웠을 때(왼쪽)와 인덕션으로 고등어를 구웠을 때(오른쪽)
임영욱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교수는 “가스를 쓰면 이산화질소는 당연히 동반된다고 봐야 한다“며 “연료 자체에 포함된 질소도 있고, 불완전연소 되며 공기에서 만들어지는 것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산화질소 아니라 메탄이 더 문제”
하지만 가스레인지를 퇴출하자는 이유가 이산화질소 때문만은 아니다. 올해 1월 11일, 싱가포르 난양 공과대학 스티브 훙-람 임 교수와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허연숙 교수 연구팀이 환경 과학 기술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서울시의 하루 평균(2019년 측정) 이산화질소 농도는 28.97ppb였다. 아침 출근 시간 피크 때는 31.57ppb에 달하기도 했다. 자동차 내연기관이 연소하면서 내는 이산화질소 때문인데, 가스레인지로 고등어를 구울 때보다 도로에서 이미 더 많은 이산화질소를 마시고 있던 셈이다. 이에 대해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이산화질소는 가스레인지뿐만 아니라 자동차 같은모든 연소 시설에 해당하는 문제”라며 “가스레인지가 아니라 가스레인지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더 유심히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미국이 가스레인지를 금지하려는 진짜 이유는 뭘까. 정 교수는 “메탄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메탄은 도시가스의 주성분으로, 가스레인지뿐만 아니라 도시가스 공급망 전체에서 배출된다. 그 양이 상당해 실제로 미국은 메탄 배출량 가운데 천연가스 및 석유 시스템에서 나오는 게 32%로 가장 많다. 이 중에서도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게 ‘탈루’, 즉 도시가스 공급망에서 새 나가는 메탄이다.

2020년 미국 메탄 배출 요인을 나타낸 그래프 (출처 : 미국 환경보호청(EPA))
2020년 미국 메탄 배출 요인을 나타낸 그래프 (출처 : 미국 환경보호청(EPA))
그런데 메탄 저감은 이산화탄소 저감보다 쉬운 편이다. 2021년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서 100개 정도의 국가가 메탄 배출량을 2020년 대비 30% 줄이기로 빨리 협의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국제메탄협약’이라고도 불리는 이 협약에 서명한 국가는 더 늘어나 지난해까지 150개가 넘는다. 정 교수는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선 온실가스를 ‘기후변화물질’로 규정하지만, 미국에서는 법적으로 더 강력하게 ‘오염물질’로 규정하고 있다”며 “오염물질로 규정했기 때문에 ‘가스레인지 퇴출’ 같은 이야기도 나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수빈 동아사이언스 기자 soobin@donga.com
임서연 PD olmtot@donga.com
이다솔 PD daso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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