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위성-AI로 선박 움직임 분석
오징어잡이배 80%서 강제노동
한국-일본도 지속적인 불법 의심
전 세계에서 조업 중인 어선 중 일부에서는 장시간 노동, 폭력 등 강제노동 사례가 확인되기도 한다. 선박의 강제노동 여부를 위성으로 추적해 분석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글로벌어업감시 제공
전 세계 바다를 누비는 어선 4척 중 1척에서 선원을 학대하거나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선상 강제노동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인공위성을 동원한 국제 공동 추적 연구에서 처음 드러났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오징어잡이어선은 물론이고 한국과 일본, 대만 어선에서도 심각한 수준의 강제노동이 이뤄지고 있음을 제시하는 데이터들이 논문을 통해 공개됐다.
인공위성을 동원해 전 세계 어선의 불법 활동을 추적하는 비정부기구 ‘글로벌어업감시’와 개빈 맥도널드 미국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대 교수 연구팀은 2012∼2018년 전 세계에서 활동한 1만6000척의 선박을 분석한 결과 이 중 2300∼4200척(14∼26%)에서 강제노동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국제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22일 공개했다. 이들 선박에는 적게는 5만7000명에서 많게는 10만 명의 선원이 승선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연구팀은 선상 강제노동이 이뤄지는 선박과 합법적으로 조업하는 선박을 구분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강제노동 선박의 독특한 움직임에 주목했다. 하루 어로작업 시간이 길거나 항구에 정박하지 않고 먼 거리를 이동하는 특성을 자주 보이면 강제노동이 이뤄질 확률이 높다. 연구팀은 현장 실태에 밝은 인권단체 자문을 통해 강제노동과 관련한 운항 특성 27가지를 추렸다. 이 특성과 실제 강제노동 사례가 공개된 어선 22척의 정보를 인공지능(AI)에 학습시켰다. AI가 학습한 어선 22척 가운데에는 한국 선박도 7척이 포함됐다. 이렇게 학습한 AI는 실제 강제노동 선박으로 밝혀진 어선을 90% 정확도로 찾아냈다.
연승어선과 오징어잡이어선은 가장 심각한 선상 강제노동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승어선은 수많은 낚싯바늘이 달린 긴 낚싯줄을 내려 고기를 잡는다. 주로 참치잡이 배로 쓰인다. 별다른 설비가 필요 없고 낡은 선박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조업 환경이 열악하다. 분석 대상 연승어선 중 50∼75%에서 강제노동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됐다. 오징어잡이어선 중 70∼80%도 선상 강제노동이 이뤄지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국적별로는 대만과 중국 어선에서 가장 많은 강제노동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강제노동이 이뤄진 대만 연승어선은 최소 501척, 중국 오징어잡이어선은 최소 309척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연승어선 중 강제노동이 이뤄진 것으로 의심받은 선박은 2012년 96∼136척에서 2018년 53∼85척으로 규모는 줄었으나 지속적인 불법 노동 행위가 이뤄진다는 의심을 받았다.
연구에 참여한 인권단체 ‘리버티셰어드’의 발레리 파라비 연구책임자는 “인공위성의 능력은 인권단체와 집행기관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상 글로벌어업감시 컨설턴트는 “한국 정부가 가진 원양어선 데이터에 적용해 감시에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인공위성 기술은 베일에 가려져 있던 불법 어업 행위들을 속속 드러내고 있다. 글로벌어업감시는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등과 공동으로 중국 어선들이 동해상에서 2017년과 2018년 사이 세계 최대 규모의 불법 조업을 벌였다고 올해 7월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하기도 했다.
규제 주체가 없어 사각지대에 놓였던 공해에서의 조업 규모도 인공위성이 밝히고 있다. 글로벌어업감시와 미 뉴욕대 공동연구팀은 위성 데이터로 공해상에서 조업한 기업을 모두 분석해 18일 국제학술지 ‘원어스’에 발표했다. 2018년 공해에서 가장 오래 조업한 10대 기업 중 중국 기업이 6곳, 한국 2곳, 대만 1곳, 미국 1곳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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