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테리아 6분의 1 염기쌍 가진 ‘최소 인공생명체’ 탄생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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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크레이그벤터연구소, 합성 성공

미국 크레이그벤터연구소(JCVI)가 2010년 합성한 최초의 인공생명체 ‘JCVI-syn1.0’(왼쪽). 최근에는 여기서 게놈(유전체) 양을 더 줄여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유전자만 남긴 ‘JCVI-syn3.0’을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름에서 ‘syn’은 인공적으로 ‘합성(synthesis)’했다는 뜻이다. 사이언스 제공
미국 크레이그벤터연구소(JCVI)가 2010년 합성한 최초의 인공생명체 ‘JCVI-syn1.0’(왼쪽). 최근에는 여기서 게놈(유전체) 양을 더 줄여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유전자만 남긴 ‘JCVI-syn3.0’을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름에서 ‘syn’은 인공적으로 ‘합성(synthesis)’했다는 뜻이다. 사이언스 제공
“1984년, 생명체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세포인 ‘마이코플라스마(mycoplasma)’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 25일자에는 이렇게 시작하는 한 쪽짜리 짧은 논문이 실렸다. 논문 제목은 ‘최소량의 (유전자를 가진) 박테리아 게놈(유전체)의 설계와 합성’. 2000년 인간 게놈 지도를 해독하며 스타덤에 오른 미국 크레이그벤터연구소(JCVI)의 크레이그 벤터 박사팀은 이 논문을 통해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최소한의 유전자로만 구성된 인공생명체 ‘JCVI-syn3.0’을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 473개 유전자 가진 인공 세포 탄생

인공생명체는 게놈을 인공적으로 합성한 생명체를 의미한다. 연구진은 A(아데닌) G(구아닌) T(티민) C(시토신) 등 4종류의 염기를 합성해 만든 DNA들을 이어 붙여 여러 개의 큰 조각을 만든 뒤 이를 박테리아에 넣어 합성하는 방법으로 유전자 473개, 염기쌍 53만1000개를 가진 인공생명체를 만들어냈다. 염기쌍을 300만∼400만 개 보유한 일반 박테리아와 비교하면 6분의 1 정도로 ‘슬림’해졌다.

논문 교신저자인 벤터 박사는 “최소한의 게놈을 가진 인공생명체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JCVI-syn3.0이 인공생명체의 종착지는 아니지만 현재로선 게놈이 가장 적다는 점에서 ‘라이트급 챔피언’”이라고 말했다.

벤터 박사의 인공생명체 합성 연구는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5년 크레이그벤터연구소의 전신인 게놈연구소는 당시 알려진 가장 작은 생명체인 마이코플라스마 제니탈리움(Mycoplasma genitalium)의 게놈 전체를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999년 제니탈리움이 전체 게놈의 75%만 보유하고 있어도 생존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벤터 박사는 이때부터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게놈의 최소량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최소량의 게놈을 가진 인공생명체를 만들어 생태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2003년에는 염기쌍 5386개를 가진 인공 바이러스를 최초로 합성하고 증식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박테리아와 달리 스스로 단백질을 합성하거나 에너지를 생산하지 못해 생명체와 비생명체의 경계에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첫 결실은 2010년에야 나왔다. 벤터 박사팀은 유전자 901개, 염기쌍 107만7947개를 가진 박테리아 ‘JCVI-syn1.0’을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 개발된 JCVI-syn3.0은 여기서 유전자 일부를 녹아웃시켜 그 수를 절반 정도로 줄였다.
유전자 473개로 구성된 ‘JCVI-syn3.0’. 현재까지 스스로 성장하고 증식도 가능한 인공생명체로는 유전자 수가 가장 적다. 사이언스 제공
유전자 473개로 구성된 ‘JCVI-syn3.0’. 현재까지 스스로 성장하고 증식도 가능한 인공생명체로는 유전자 수가 가장 적다. 사이언스 제공


○ 완벽한 인공생명체까지는 갈 길 멀어

인공생명체의 활용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전자회로를 설계해 반도체를 만들 듯 ‘유전자 회로’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 유지에 필요한 최소 기관만 가진 합성세포를 만들고 여기에 유전자만 추가해 환경에 따라 원하는 유전자만 발현시키는 ‘스마트 식물’도 나올 수 있다. 자신의 생명 유지에 최소한의 에너지만 사용하면서 오염물질은 먹고 에너지 자원을 생산하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생명체를 설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윤리적인 논란도 있다. 인공생명체가 자연으로 퍼져 나가면 생태계를 파괴하거나 다른 생명체와 결합해 치명적인 병균이 될 수도 있다. 테러리스트의 손에 넘어가 생물학 병기로 악용될 수도 있다. 벤터 박사도 JCVI-syn1.0 합성 당시 윤리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인공생명체 대신 ‘인공 세포’를 합성했다고 주장했다.

최인걸 고려대 생명공학과 교수는 “JCVI-syn3.0은 최소한의 기관과 게놈을 갖춘 ‘세포 공장’에 해당한다”며 “완벽한 인공생명체가 되기 위해서는 아미노산부터 세포막까지 모두 화학적으로 합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인공 세포를 만드는 합성생물학 연구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등 유전자 편집 기술을 결합하려는 시도도 있다. 방두희 연세대 화학과 교수는 “두 기술을 병행하면 게놈의 일부를 목적에 따라 합성하거나 편집할 수 있어 더 극적인 유형의 인공 세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예슬 동아사이언스 기자 yskwon@donga.com
#최소 인공생명체#크레이그벤터연구소#박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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