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설계도의 주인공, DNA서 RNA로 세대교체 중

  • Array
  • 입력 2012년 12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2013년은 DNA 발견 60돌… 한장짜리 논문 하나가 생명과학 혁명 불러와

1953년 4월 25일. 생명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일이 생긴 역사적인 날이다.

세계적인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미국과 영국의 젊은 과학자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의 구조가 이중나선 형태라는 사실을 밝힌 논문이 발표된 날이다.

단어 900개로 쓰인 한 쪽에 불과한 짧은 논문이었지만 생명과학은 이 논문 덕분에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동식물은 물론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까지 그저 관찰하는 학문에서, 분자 수준에서 생명 현상을 규명하는 정밀 과학으로 ‘환골탈태’한 것이다.

내년은 왓슨과 크릭이 DNA 논문을 발표한 지 60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DNA 관련 연구는 노벨상을 16번이나 받을 정도로 중요한 연구 소재가 됐다. DNA 구조의 발견은 생명과학을 넘어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성공 DNA’ ‘승리 DNA’ ‘진보와 보수 DNA’ 등 DNA는 ‘유전’을 뜻하는 용어로 받아들여져 쓰이고 있다.

○ RNA, DNA의 ‘독보적’ 위치 위협

두 가닥의 나선이 서로 딱 들어맞는 구조는 그 자체가 ‘DNA=유전물질’이란 중요한 증거다. 유전물질의 1원칙은 복제가 쉬워야 한다는 것. DNA는 한쪽 나선을 떼어내 그대로 복제함으로써 다음 세대에 본인의 유전정보를 물려주기 쉽게 돼 있다. 이전까지 단백질이 유전물질일 거라는 생각은 DNA의 구조가 밝혀지자 이내 사라졌다.

그러나 환갑을 맞은 DNA는 ‘독보적인 유전물질’이란 지위를 위협받고 있다. DNA가 중요한 유전물질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사람들 간의 차이를 DNA로만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DNA의 지위를 위협하는 선봉에는 RNA가 있다. 사실 이전까지 RNA는 DNA가 단백질을 만들 때 잠시 나타나는 중간물질로만 알려졌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RNA가 다양한 생명현상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과학자들은 RNA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김빛내리 교수가 연구하는 ‘마이크로RNA’가 대표적이다. 인간은 약 900종의 마이크로RNA를 가지고 있는데 각각 수백 종의 유전자를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근 주목받고 있는 배아줄기세포나 인류가 정복해야 할 질병인 암세포에도 마이크로RNA가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체에서 DNA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RNA가 변이하며 다음 세대로 이 변이를 물려준다는 증거도 나왔다. 지난해 서울대 의대 서정선 교수팀은 한국인 17명의 DNA와 RNA를 동시에 분석한 결과 RNA 서열에서도 다양한 변이를 발견했다. 이는 DNA에 존재하지 않는 변이가 RNA에서 생길 수 있고, DNA의 변이가 RNA로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DNA 서열만 분석했을 때 설명할 수 없었던 인종이나 민족의 고유한 특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후천적으로 DNA를 조절한다?

최근 생명과학계에서는 똑같은 DNA에서 서로 다른 유전자가 나오고 엉뚱한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이유에 관심을 갖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를 ‘후성유전’이라 부르는데 DNA의 활동이 후천적으로 조절되는 메커니즘을 뜻한다. 놀랍게도 이 메커니즘은 자녀 세대에까지 지속된다.

이 현상은 DNA에 ‘메틸기(―CH3)’라는 물질이 달라붙어서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거나, 기다란 DNA가 감겨 있을 때 실패 역할을 하는 ‘히스톤’ 단백질에 변형이 나타나 유전자 발현에 이상이 생길 때 발생한다. 이들은 특히 암세포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어 후성유전학은 암의 발생과 치료를 위해 중요한 분야가 되고 있다. 최근에는 사람에 따라, 심지어 각 조직에 따라 암을 일으키는 원인이 달라지는 현상도 발견돼 후성유전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지고 있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백성희 교수는 “RNA의 다양한 기능이 밝혀지고, 세포 속 여러 단백질이 생명현상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DNA만이 생명의 설계도라는 생각은 점점 바뀌어 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60년간 DNA와 관련된 연구 성과에 대한 심층 기사는 과학동아 내년 1월호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 DNA-RNA ::

DNA(디옥시리보핵산)는 생물의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세포 내의 물질로 이중나선 구조를 띠고 있으며 A(아데닌) G(구아닌) T(티민) C(시토신) 등 4종류의 염기로 구분된다. RNA(리보핵산)는 DNA가 단백질을 만들 때 나타나는 물질로 하나의 나선 구조며 A, G, U, C 등 4종류의 염기로 구분된다.

이재웅·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DNA#RNA#생명과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