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원전 1호기는 우리나라의 원전 역사를 열었던 첫 상업용 원전으로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건설한 지 30년이던 2007년 설계수명이 만료됐으나 그해 12월에 10년 더 운전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3월 정전사고 은폐사건이 드러나면서 현재는 운행을 멈춘 채 안전설비를 증축하고 관련 장비를 개선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3일 오전 11시 부산 기장군 고리 원자력발전소 고리 1호기 주제어실에는 ‘우∼웅’ 하는 낮지만 지속적인 소음이 실내를 감싸고 있었다.
고리 1호기는 3월 12일 이후부터 멈춰 있다. 2월 9일 점검기간 중 발생한 정전사고를 한 달여 은폐했고, 이에 따른 조사를 받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원자로 내부에는 여전히 연료봉이 남아 있어 지속적으로 냉각을 시켜야 하기 때문에 냉각기는 원전이 멈춘 뒤에도 여전히 작동 중이다.
주제어실에 있는 한국수력원자력 직원들은 상황판을 보며 기계에서 나오는 수치를 기록하는 등 평소와 다름없이 업무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4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고리 1호기의 재가동 여부를 결정해 발표할 것이라는 소식 때문인지 긴장된 표정이었다.
○ 안전운전을 최우선으로
한경수 고리 원전 제1발전소장(오른쪽)과 강설희 고리1발전소 안전팀장이 이번에 수리한 비상디젤발전기의 계기판을 보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현장에서 만난 한경수 고리 원전 제1발전소장은 “비리사건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없다”며 입을 열었다. 지난달 고리 2발전소에 이어 고리 1발전소에서도 직원 한 명이 금품을 받고 입찰을 방해하는 등 납품비리로 구속됐던 일을 말하는 것이다.
발전소장으로 부임하기 전에 안전팀장을 맡았던 그는 “어느 때보다 국민의 신뢰를 쌓아가야 할 시기에 각종 사건이 터져 매우 송구스럽다”며 “무엇보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원전 운영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한수원은 발전 정지 명령이 떨어진 이후 비상디젤발전기를 수리하고 차량 장착 이동형 비상발전기를 원전본부별로 1대씩 설치하는 등 전력계통 설비를 우선적으로 개선하는 데 집중했다.
사실 기술적 개선 만큼 원전 ‘안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인 지난해 5월 말 한수원은 경영관리본부, 발전본부, 건설본부에 이어 안전기술본부를 신설했다. 안전기술본부 아래에 있는 안전처, 위기관리실, 기술기획처, 한수원중앙연구원은 모두 안전만을 위한 ‘시스템 타워’다. 또 원전 현장을 감독하는 안전감시역을 원전 호기별로 1명씩 파견해 현장을 파악하도록 했다.
한 소장은 “그동안 기업의 이익을 위해 ‘경영성과’와 상충되는 ‘안전’을 외면한 면이 없지 않다”며 “운영성과로 대표되던 ‘연속 무고장 운전’ 같은 지표 대신 안전과 비상상황 대처능력을 평가하는 새로운 지표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해안방벽 10m 높이로 키워
정전사고 이후 한수원은 문제가 됐던 비상디젤발전기의 공기공급밸브를 기술기준에 적합하게 신품으로 교체하고 밸브를 이중으로 달았다. 비상디젤발전기의 전력공급 라인도 개선해 전압을 24V에서 125V로 향상시켰다. 이번에 성능 개선을 하기는 했지만 내년 2, 3월 새것으로 교체한다는 계획이다. 또 수명연장 종료시점인 2017년까지 안전성이 확인된 원자로 압력용기도 뚜껑부분을 새것으로 교체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 밖에도 혹시 있을지 모르는 지진해일에 대비하기 위해 해안방벽을 10m 높이로 증축하고 비상디젤발전기 시설이 침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침수방지용 방수문을 설치하고 있다.
전기가 없어도 작동해 수소폭발을 예방하는 수소제거설비 장치와 지진자동정지 설비는 전체 원전 중에서도 고리 1호기에 제일 먼저 설치했다. 한 소장은 “고리 1호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원전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어서 모든 안전설비는 무조건 고리 1호기부터 설치한다”며 “5년간 약 1조1000만 원을 투입해 국내 원전 안전제도와 설비를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관리도 한층 더 강화됐다. 현장에서 기술적인 안전을 점검하는 KINS의 전문 인력은 4월부터 원전용지별 4명에서 6명으로 확대됐다. 또 3일에는 안전위의 현장 주재인력을 확대한다는 직제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안전위의 현장 주재인력은 조만간 1명에서 3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지난번과 같은 정전사고는 원전 가동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일반적인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만 발전소장을 비롯한 직원 몇몇이 이를 의도적으로 은폐함으로써 원전에 대한 국민의 의혹과 불신만 더 키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전위와 KINS는 원전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정지 기간에도 받아보기 위해 KINS에 설치된 원전상황자동통보시스템 ‘아톰케어(Atom CARE)’를 수정했다. 한수원 역시 24시간 상시 감시시스템을 구축해 올해 말부터 가동할 계획이다.
손명선 안전위 안전정책과 서기관은 “기존에는 운전 중에 일어나는 이상 상황만 문자로 전달받게 돼 있어 점검기간에 일어나는 외부 전원 차단 상황을 바로 알 수 없었다”며 “시스템을 변경해 4월부터는 정지기간에도 외부 전원이 차단되면 이 사실을 바로 안전위와 KINS에 알리게 했다”고 말했다.
한편, 안전위는 4일 고리 1호기에 대한 재가동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지식경제부는 앞으로 주민들과 충분한 소통을 거쳐 적절한 시점에 재가동할 예정이다.
기장=김윤미 동아사이언스 기자 ymkim@donga.com 기장=김규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youta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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