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사람이 우울증? 그럴리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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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9일 03시 00분


사회지도층 무기력증

《# 철판 위에 살아있는 양(羊) 한 마리를 올려놓는다. 온도를 슬슬 올리기 시작하면 양은 조금씩 우는 소리를 내며 발을 든다. 조금 더 뜨거워지면 펄쩍펄쩍 뛰기까지 한다. 이때 양이 옆에 있는 스위치를 우연히 건드렸다. 불은 꺼졌고 양은 편안해졌다. 몇 번 더 불을 붙인 뒤 똑같은 상황을 연출했지만 양은 여유롭다. 스위치를 끄는 학습을 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스위치를 건드려도 더는 불이 꺼지지 않도록 만들었다. 철판에 올라간 양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아무리 스위치를 건드려도 발밑은 계속 뜨겁기만 하다. 물론 실험을 할 때 양이 견딜 수 있는 정도로 온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양은 죽지 않는다. 기분이 불쾌할 정도일 뿐이다. 한참 이것저것 해보던 양은 그냥 배를 깔고 드러눕는다. 살아있지만 축 처진 채 무기력한 모습으로 주저앉는 것이다. 정신과 분석의들이 ‘무기력(helplessness) 우울증’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 실험내용이다.》

문제 해결 못할때 일반인보다 충격 커… “현실인정-가족간 유대 강화로 극복해야”

○ 무기력증을 견디지 못하는 리더들

이것저것 해보고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으면 보통 사람은 실험모델 속의 양처럼 체념하고 받아들인다. 정신학적으로 체념은 절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사회지도층 인사 중에는 체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남궁기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는 “CEO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좋은 학교를 나오고 많은 것을 가져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일반인보다 더 크게 좌절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이것저것 스위치를 눌러봐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게 마련이고 이것을 현실로 인정하는 것도 때로는 필요한데 사회지도층이나 경영자들 중에는 과거와 달라진 현재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해 울분이 쌓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 무기력증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병원에 상담 받으러 온 한 기업가는 사업이 실패하면서 수천억 원의 재산을 날렸다. 부자는 “망했다” “막다른 골목이다”라는 말을 되풀이했지만 사실 그에게 남은 재산은 일반인들이 평생 만지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남궁 교수는 “많은 것을 성취한 사람일수록 어려움이 닥쳤을 때 상대적 박탈감이 더 심하다”며 “약물치료로 우울증을 다스리면서 ‘당신은 객관적으로 가진 것이 더 많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계속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존경받다 갑자기 비판 받으면 충격

최근 자살로 생을 마감한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의 죽음에 대해 정신과 분석의들은 “산이 높을수록 골도 더 깊게 느껴졌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전덕인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과 교수는 “주요 결정을 많이 내리는 사회지도층 및 CEO 집단이 일반인보다 평균적으로 스트레스의 강도가 더 높다거나 자살률이 높다고는 얘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수많은 사람을 휘하에 두고 평생 존경받고 대접받는 데 익숙해 있다가 갑자기 비판을 받거나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느끼면 상실감에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사업에서 성과를 내지 못해도 가족 간 연대와 지지가 끈끈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겠지만 가족문제로 속을 썩이던 박 전 회장은 이마저도 어려웠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 권위 실추될까 봐 치료도 꺼려

지난해 말 세계경영연구원이 국내 CEO 1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3%가 “불황으로 스트레스가 이전에 비해 크게 또는 다소 늘었다”고 답변했다.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매출이나 실적이었다. 응답자의 45%는 ‘스트레스로 인해 수면시간이 줄었다’고 밝혔고 29%는 ‘직원에게 신경질을 내는 빈도가 잦아졌다’고 대답했다. 근무시간은 과거보다 늘어난 반면 주말 휴식시간은 줄어들었다고 답한 사람도 36%였다.

전 교수는 “힘이 들면 주변에 털어놓기라도 하면 되는데 CEO는 일반 사원처럼 갑자기 사표를 쓰고 어디로 도망갈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더 큰 문제”라며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비칠까 봐 대부분 치료시기를 놓친다”고 말했다.

경영컨설팅 전문가인 데브라 넬슨 씨는 최근 경영전문지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갖는 세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너무 바쁘고, 조직에 대한 걱정이 많고, 사회적으로는 스트레스를 해결할 방법이 따로 없거나 고립돼 있다는 것이다. 넬슨 씨는 하루에 한 시간은 스케줄을 잡지 말고 개인시간 갖기, 명상시간 갖기, 선배 CEO들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는지 참조하기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넬슨 씨는 한 가지를 더 추천했다. 바로 ‘어쩔 수 없이 돌아가는 일은 쩔쩔매지 말고 받아들이기’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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