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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5월 22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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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속 세상은 불가능이 없다. 은하계를 여행하는 우주철도, 먼 은하에서 온 괴상한 우주생물 등 가공할 상상력이 십분 발휘되는 세계다. 갈릴레이의 천체망원경 발명 400주년을 기념하는 ‘세계 천문의 해 2009’를 맞아 19∼21일 경북 영천시 보현산천문대에서 ‘만화작가, 천문학자를 만나다’ 행사가 열렸다. 이 만남에는 ‘비빔툰’ ‘녹색전사 에코’의 작가 홍승우 씨를 포함해 전세훈, 신성식, 조남준, 윤태호 씨 등 만화계의 젊은 중견 작가 11명과 한국천문연구원의 연구원들이 참여했다.
20일 열린 본격적인 대화 시간. 먼저 천문학자인 이명현 연세대 천문대 책임연구원, 문홍규 천문연 박사가 나서 외계 생명체 탐색 프로젝트 ‘세티(SETI)’와 지구근접 소행성의 연구 현황을 소개했다. 외계 생명체나 소행성 충돌 가능성은 공상과학소설(SF) 작품의 단골 소재. 지구와 충돌 가능성이 높은 소행성이 1000개나 우주를 맴돌고 있다는 설명에 작가들의 얼굴에 호기심이 맴돌았다. 문 박사는 “만화 작가들이 궁금해 할 만한 주제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소재를 골랐다”고 말했다.
이어 열린 자유 토론 시간. 이번 행사를 기획한 SF 전문가 박상준 오멜라스 대표가 던진 화두에 모두가 갸우뚱한 표정을 지었다. ‘만일 달 탐사 대원들이 달에서 우주복을 입은 5만 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호모사피엔스 시신을 발견했다면’이 화두다. ‘시사 SF’ ‘메모리즈’를 그린 조남준 작가가 외계 생명체일 가능성을 전제로 꽤 설득력 있어 보이는 시나리오를 내놨다. 외계에서 온 현생 인류와 똑같은 외계인이 일부는 달에, 또 다른 일부가 지구에 정착해 인류의 조상이 됐을 것이라는 것. 실제 과학계에서도 지구 생명의 기원을 외계 생명체로 보는 가설이 있다. 이 밖에 태양흑점 폭발, 웜홀 등에 대해서도 질의응답이 오갔다.
작가들은 천문학과 우주에 대한 기존 통념이 현실과 거리가 있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다고 털어놨다. 홍승우 작가는 “실제 천문학자가 보는 관측 자료가 휘황찬란한 은하와 성운 사진이 아니라 숫자와 그래프라는 사실에 놀랐다. 현실과 작가들 상상 사이엔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작가들은 이번 만남을 통해 천문학의 따뜻한 면모를 엿봤다고 입을 모았다. 정혜용 작가는 “외계인, 음모론 등 난감한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천문학자가 독자를 유혹할 만한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석재 천문연 원장은 “과학이 앞서 있는 미국과 유럽, 일본과 달리 한국에 버젓한 SF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없다는 것은 문화적으로 부끄러운 일”이라며 “작가들이 SF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영천=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