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러의 반성문

  • 입력 2008년 10월 7일 23시 04분


"수없이 반성하고 나를 자책했다."

대학생 A씨는 얼마 전 여가수 B씨를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봤다. 과도한 노출과 짙은 화장에 거부감을 느낀 A씨는 B씨의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방문해 악성 댓글(악플)을 남겼다. 우발적 행동이었지만 대부분의 누리꾼들도 '비호감'이라며 B씨에 대해 악플을 남겼기 때문에 A씨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글을 남긴 뒤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A씨는 우연히 TV 토크쇼에 출연한 B씨를 봤다. 그녀는 자신에 대한 악플로 인해 자살을 결심한 적이 있다고 눈물로 고백했다. 이 장면을 지켜본 A씨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 후 A씨는 대학 수업시간을 통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참회하는 반성문을 제출했다.

같은 수업을 듣는 대학생 C씨는 친구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오빠 나 임신했어, 왜 연락이 안돼?'라는 글을 남겼다. 장난삼아 한 일이었지만 그 친구는 자신의 여자 친구와 크게 다퉜고 두 사람은 멀어졌다. C씨도 반성문을 통해 "아무리 친구 사이의 장난이었지만 다른 사람의 이름을 도용해 허위 사실을 남겨 친구를 괴롭힌 건 잘못된 행동이었다"고 반성했다.

이들이 수강한 수업은 3년 전 개설된 고려대 컴퓨터정보학과 정창덕 교수의 '컴퓨터와 인터넷윤리' 수업.

이 수업은 학생들이 악플 가해 경험을 제출한 뒤 이것에 대해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범죄'에 대해 고백하길 꺼려했다. 이에 정 교수는 악플 피해 경험도 함께 제출받았다. 자신의 주변인들도 똑같이 악플의 피해자임을 깨닫게 되면서 학생들은 자신의 악플 가해 경험도 공개하기 시작했다. 2년 전 한 학생은 수업시간에 자신이 쓴 악플에 대해 반성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정 교수는 이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사이버공간'이란 말 대신 '인터넷 현실공간'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한다. 시험 답안지에도 사이버라는 단어를 쓰면 무조건 감점이다. 사이버가 가상공간이 아니라 실제 현실과 같다는 생각을 지녀야 인터넷상의 상대방에게도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것을 체화할 수 있다는 뜻에서였다.

정 교수는 "최근 최진실 씨의 자살 사건을 보면서 교육자로서 죄책감을 느꼈다"며 "초중고 시절부터 인터넷 윤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형준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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