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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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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검색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인터넷 최다 이용자인 대학생들의 대화내용을 들어보자. 고려대 문과대 김소요(20·여·심리 3학년), 송은혜(20·여·중문 3학년), 원동윤(20·국문 3학년) 씨의 대화는 검색이 바꾼 신세대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원=생각해 보니 검색을 안 할 때가 없네. 밖에서도 뭐가 궁금해지면 친구한테 문자 보내서 검색해 달라고 부탁하니까.
▽김=아까 밖에서 고구려 사신도 중 청룡이 도무지 안 떠올라서 전화로 검색 부탁했어. 3명 정도만 전화하면 다 해결되잖아. 3명 중 누군가는 늘 인터넷에 접속 중이니까.
▽송=집에서도 인터넷을 늘 켜놓게 돼. 라디오에 초청 게스트로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나오면 별로 안 궁금해도 검색해 보고.
▽김=라디오에선 DJ들이 부추기잖니. 김원희가 방송에서 “자, ‘오후의 발견’ 이제부터 1위입니다” 하면 사람들이 마구 검색 창 두들겨서 정말로 실시간 검색어 1위 되잖아.
▽원=리포트 쓸 때 나는 도서본문 검색이 좋더라. 무슨 책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금방 찾을 수 있으니까.
▽김=그렇지. 일단 쳐 보는 거지. 매체 플래닝 리포트를 써야 하면 ‘매체 플래닝’ ‘미디어 플래닝’ 이렇게 계속 검색하다 보면 뭔가 걸려도 걸리잖아.
▽원=그런데 요즘 어린이들을 보면 난 어릴 때 책이라도 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초등학교 방학 끝날 때 보면 인기 검색어 1∼10위가 전부 날씨와 방학숙제가 차지하잖아.
○ 공동체 문화와 검색
왜 유독 한국에서만 검색이 실생활에 밀착됐을까. 인터넷 전문가들은 “근원적으로 한국인 특유의 정을 중시하는 ‘공동체 문화’가 검색과 검색 정보에 대한 개념을 바꿨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인터넷은 1990년대 중반 500만 명의 PC통신 사용자를 기반으로 육성됐고 PC통신은 주로 개인보다 공동체, 즉 커뮤니티 위주로 진화했다. 1990년대 말 인터넷 사용이 확산된 뒤에도 카페, 커뮤니티 등 개인보다는 집단 위주의 인터넷 문화가 주를 이뤘다.
네이버의 한 관계자는 “한국 누리꾼들은 자신이 가진 정보를 공개, 공유하려는 인터넷 문화를 스스로 강화시켰고 이는 검색 형태로까지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누군가 필요한 정보를 물으면 누리꾼 스스로 답을 만들어 알려 주는 ‘지식 검색’ 형태, 즉 UCC(User Created Contents) 정보의 생산과 유통, 소비의 대규모 흐름이 검색을 생활 밀착형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구글은 방대한 정보를 자랑하지만 우리나라의 검색처럼 ‘종로 근방의 맛있는 라면 집’은 찾아주지 못한다는 것.
이는 검색 공급자의 철학과도 궤를 같이한다. 구글은 검색 엔진 중심이다. 검색 엔진을 더 잘 만들어 다량, 양질의 정보를 정교하게 모으겠다는 것.
하지만 국내 포털은 ‘서비스 중심’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구글의 기계 시스템이 아니라 ‘휴먼 터치’, 즉 수작업을 더해 검색 결과를 누리꾼의 입맛에 맞는 정보로 재가공한다. 예를 들어 ‘이효리 동영상’이 유행한다고 치자. 국내 검색업체는 누리꾼들이 검색창에 ‘이효리’만 쳐도 ‘이효리 동영상’과 관련된 정보를 우선순위로 제공한다. 통합 검색 외에 동영상 검색, 스페셜 검색 등 검색 카테고리만 30개가 넘는다.
이는 치열하게 경쟁 중인 검색회사들의 ‘미래의 검색 서비스’ 콘셉트에서도 드러난다. 현재 주요 포털 사이트들이 추구하는 것은 ‘맞춤형 검색’이다. 특정 개인이 주로 찾는 검색 정보, 키워드 입력 형태 등의 패턴을 파악한 후 이에 맞는 최상의 결과를 줄 수 있도록 검색 시스템을 개인에게 최적화한다는 개념이다.
○ 검색 시대! 지식은 곧 ‘키워드’(Keyword)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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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머리에 담기보다 인터넷 네트워크에 접속해 정보의 흐름 속으로 필요한 지식 관련 키워드를 입력, 검색하면 그 지식은 나의 것이 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 같은 검색의 진화가 ‘지성의 퇴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웹 진화론’의 저자 우메다 모치오 씨는 “웹 검색은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필요한 정보를 누구나 쉽게 얻고 고속도로 종점까지 단번에 달려갈 수 있게 만들었다”고 그 효용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상당수 커뮤니케이션학자는 “고속도로가 몇 안 되는 데다 한 곳만 종착역으로 삼을 경우 정보와 지식이 획일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다음 커뮤니케이션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03년 분류별 주요 검색어 비율을 보면 숙제나 리포트용 검색이 전체의 13%를 차지했다. 이 같은 ‘학교용 검색’은 한창 창조적 사고의 폭을 확장해야 할 미래세대에게 ‘동일한 소스’만을 제공함으로써 이용자의 사고를 구획화한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미디어 전문가들은 “인터넷 검색의 발달로 지식의 세계에 고속도로는 개설됐지만 종점 부근의 톨게이트에는 엄청난 정체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인터넷으로 키워드 지식인을 대량생산했지만 그 이상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 결국 궁극적으로는 ‘창조적 지식’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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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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