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癌 초기에 잡자]<3>간암

  • 입력 2006년 5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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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염 방치 땐 간경변→간암 이행 가능성

3일 오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4층 영상의학과 초음파검사실. 이곳엔 하루에도 100여 명의 환자들이 간 이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검사를 받는 곳이다.

이곳을 찾은 약사 김모(48) 씨. 그는 최근 갑자기 생긴 다리의 피부질환 때문에 동네 병원에서 혈액검사를 받다가 간수치가 유난히 높다는 말을 들었다. 김 씨는 지난해 종합건강검진에서도 간수치가 높아서 초음파검사 등 정밀검사를 받아야 된다고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의료인으로서 평소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거의 입에 대지 않는 등 건강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권고를 무시했다. 김 씨는 황달이나 복수 등의 간 질환이 의심되는 징후가 보이지 않았고 겉보기에도 건강해 보였다.

김 씨는 이번 기회에 간수치는 왜 높은지, 또 최근 왜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는지를 알기 위해 세브란스병원 간암클리닉 한광협 교수를 만났다. 한 교수는 간암과 B, C형 간염 치료 소화기내과 전문의로 2001년 동아일보 베스트 중견의사 간질환 부문 최고 명의로 선정된 바 있다.

“혈액검사에서 B형 간염 보균자로 나왔네요. 그런데 B형 간염이 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전혀 몰랐다는 거죠.”

한 교수는 김 씨에게 초음파검사를 하면서 그의 간이 간염 바이러스로 인해 오랫동안 손상돼 흉터가 많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초음파 모니터에 김 씨의 간이 보였다. 정상인에 비해 간이 고르지 못하고 울퉁불퉁 거칠다는 것이 한 교수의 설명이다. 더구나 초음파에서 2cm 크기의 암세포로 의심되는 딱딱한 혹도 보였다.

간의 굳기 정도(탄력성)를 알기 위해 파이브로 스캔 검사도 받았다. 수치는 47. 권장기준치 7.5를 훌쩍 넘어 상당히 높게 나왔다. 그만큼 간경변으로 진행이 됐다는 의미다.

김 씨는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간암 표지자(AFP) 검사에서도 간암으로 의심되는 수치 400을 훌쩍 넘은 992로 나왔다.

○ 간수치 높게 나올 땐 CT 등 정밀검사를

김 씨는 지난해 건강검진에서 재검사를 받으라는 통보를 왜 무시했는지, 또 간암선고를 받으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후회와 걱정이 교차했다.

한 교수는 김 씨의 경우 간암이라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아주 초기일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간암이라면 고칠 수 있는 건가요.”(김 씨)

“간암을 불치의 병으로 생각하고 치료를 포기하거나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치료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현재는 수술기술이 좋아져 수술하지 않고도 치료할 수 있고 수술하더라도 수혈 없이 간 절제를 할 수 있어요.”(한 교수)

한 교수는 자동차도 1년에 두 번 정도 오일교환이나 브레이크 라이닝 교체 등 정비를 꾸준히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체도 정기적인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등 정밀검사를 추가로 받을 예정이다. CT는 보험이 되는 데다가 검사결과를 빨리 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MRI를 통해서는 암 종양의 크기와 위치를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한 교수는 “요즘은 검사 장비의 발달로 바늘을 찔러 하는 조직검사를 하지 않고서도 간암 진단이 가능하다”며 “간암 표지자 검사에서도 간암 수치가 높고 영상 장비에서도 혹 소견이 나오면 대개 간암으로 진단한다”고 말했다.

심각한 상황임을 깨달은 김 씨는 약국 일을 정리한 뒤 다음 날 바로 입원했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전문가 진단

흔히 간암을 소리 없는 침입자라고 부른다. 초기엔 증상이 없다가 70% 정도 손상되면 그때 황달 복수 등의 증세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증세로 병원을 찾게 되면 대부분 간암 말기로 진행돼 1년을 넘기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국내 간암의 5년 생존율은 10% 미만으로 다른 암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이다.

하지만 정기적인 검진만 받는다면 대부분 1, 2기에 간암을 발견하기 때문에 5년 생존율이 50%를 넘는다.

김 씨는 이미 본인도 모르게 오랫동안 B형 간염으로 간에 손상을 받고 있었다. 혈액검사상 간 수치가 10배 이상 높았고 B형 간염 바이러스가 활동하고 있었다.

김 씨의 CT 사진에서는 간에 하얗게 빛나는 혹이 관찰됐다. 확실한 진단을 위해 MRI를 촬영한 결과 간암으로 진단됐다.

수술로 제거하기엔 간수치가 매우 높고 위험 부담이 컸다. 또 종양은 하나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암세포를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래서 추가진단 겸 치료를 위해 환자에게 4일 간동맥 색전술을 시행했다

간동맥 색전술은 환자의 다리 동맥에 가느다란 관을 삽입해 이 관을 통해 암이 영양분을 공급받는 혈관을 약물로 막고 항암제를 같이 사용해 암을 ‘아사(餓死)’시키는 방법이다.

흔히 간암의 주원인을 술로 생각하는데 85∼90%는 B형, C형 간염이 원인이다. 이 두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만성간염으로 진행되기 쉽다. 만성간염을 오래 앓으면 간이 점점 단단해지는 간경변으로 진행되며 간경변으로 진행되면 간암의 발생 위험이 높다.

김 씨는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40세 이상이고 △부친이 간암으로 사망한 가족력이 있으며 △남성이며 △만성 B형 간염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고위험군에 속한다.

이 경우엔 6개월에 한 번씩 초음파와 혈액검사를 정기적으로 받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히 김 씨는 피부질환 때문에 간 검사를 받게 돼 우연히 간암을 조기 발견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상당히 늦게 발견했을 가능성이 높다.

간암을 예방하는 방법은 무엇보다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다. 또 개인위생 관리와 건전한 성생활, 적절한 음주습관, 문신과 마약 피하기 등이 필요하다.

간염을 앓고 있는 경우엔 항바이러스 치료제를 복용해 병이 진행되지 않도록 한다. 흔히 간에 좋다고 돌미나리 신선초 상황버섯 홍삼 굼벵이 지렁이탕 개고기 등 먹을거리에 대해 자주 묻곤 하는데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한광협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간암클리닉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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