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상>]이중나선구조서 게놈지도까지

  • 입력 2002년 12월 31일 17시 02분



《DNA의 이중나선구조가 밝혀진 지 올해로 50년이 된다. 더욱이 올해는 인간이 가진 DNA의 30억쌍 염기 정보를 모두 밝히는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완료될 예정이어서 더 뜻깊은 해이다. DNA는 생명체의 설계도라 할 수 있는 정보를 간직한 세포 내 물질이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까닭은 바로 DNA를 물려받기 때문이다. 이중나선을 이루는 사슬을 부모에게서 절반씩 물려받는 것이다. 이중나선에 담긴 DNA의 유전정보는 RNA라는 통신병을 통해 단백질을 만들도록 명령을 내린다. 단백질은 생체를 구성하고, 모든 생명현상을 담당하는 실제 일꾼이다. 또한 DNA의 이중나선을 재단하면 의약품을 비롯한 유용한 물질을 생산하는 일이 가능하다. 따라서 DNA 이중나선구조의 규명은 생명공학 혁명의 출발점이 되었다. DNA의 구조가 처음 밝혀진 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생명과학의 발전 과정을 짚어본다.》

1865년 오스트리아의 그레고어 멘델은 유전현상을 처음 체계적으로 밝혀냈다. 1869년 독일의 과학자가 박테리아에서 DNA라는 물질을 발견했지만, 무엇인지는 전혀 몰랐다. 거의 1세기가 흐른 1952년 미국의 앨프리드 허시와 마샤 체이스가 비로소 DNA는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물질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 때부터 DNA의 구조와 메커니즘을 밝히기 위한 과학자들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됐고, 그 승자가 바로 왓슨과 크릭이었다.

■ DNA 이중나선구조 규명

1953년 미국의 제임스 왓슨과 영국의 프랜시스 크릭은 DNA 사슬 두 가닥이 나선처럼 꼬여 있는 이중나선구조라는 사실을 영국의 과학전문지 ‘네이처’ 4월 25일자에 발표했다. DNA X선 사진을 분석해 구조를 설명한 1쪽짜리 짧은 논문이었다. 그러나 이를 통해 AGCT라는 4종류 염기로 이뤄진 유전정보를 갖고 있는 DNA의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이들은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 DNA 엮는 중합효소 발견

1956년 미국의 아서 콘버그는 장에 흔한 세균인 대장균의 추출물에서 DNA를 합성하는 효소를 발견했다. 길다란 DNA 사슬을 엮는 일꾼 노릇을 하기 때문에 DNA 중합효소라 이름이 붙여졌다. 이를 통해 모든 생체에서 DNA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게 됐다.

■ 가위 역할하는 제한효소 사용

1960년 대장균에서 마치 가위처럼 DNA를 자르는 능력을 가진 특이한 효소가 발견됐다. 가위 역할을 하는 제한효소(制限酵素)였다. 이를 이용해 다른 DNA를 자를 수 있다는 구상은 1969년 미국의 네이선스에 의해 실현됐다. 제한효소의 발견 덕분에 일렬로 나열하면 1.5m에 이르는 인간 DNA 사슬에서 연구에 필요한 특정 부위만 작게 잘라내는 일이 가능해졌다.

■ 유전암호 해독법 등장

1966년에 이르러서야 인류는 AGCT가 수없이 나열된 DNA의 염기서열을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의 마셜 니런버그와 코빈드 코라나는 ‘AGC’처럼 3개의 DNA 염기가 모여서 아미노산을 만들어내고 모두 20종의 아미노산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 아미노산이 수백 수천개 연결돼 생명체의 ‘벽돌’인 단백질이 된다.

■ DNA 재조합 생명체 등장

1972년 미국의 폴 버그는 바이러스와 대장균의 DNA를 연결해 최초의 재조합 DNA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다음해 미국의 스탠리 코헨과 허버트 보이어는 특정 DNA를 삽입한 생명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보이어는 1977년 인간의 유전자를 대장균에 삽입하는 데 성공했다. 미생물이 인간의 단백질을 생산하게 된 것이었다. 인간이 자신의 의도에 따라 DNA를 마음대로 재단하는 재조합기술은 도입 초기에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975년 과학자 수백명이 연구의 일시 중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이 기술을 이용해 인슐린과 같은 유용한 의약품이 생산되는 등 인류의 복지를 위해 활용되면서 논란은 거의 사라진 상황이다.

■ DNA 서열 분석 방법 개발

1977년 미국의 앨런 맥삼과 웰터 길버트, 영국의 프레드릭 생거는 DNA 염기 배열을 손쉽게 알아내는 방법을 개발했다. 생명체의 전체 게놈을 밝혀내는 게놈프로젝트를 뒷받침하는 기술이 등장한 것이었다.

■ DNA 증폭 기술 개발

DNA를 연구할 때 반드시 필요한 도구가 1983년에 개발됐다. 미국의 케어리 멀리스가 발명한 중합효소연쇄반응기(PCR)는 DNA 한 가닥을 수십억 개의 가닥으로 복제할 수 있는 일종의 복사기였다. 생체에서 추출되는 DNA의 양이 아무리 적더라도 PCR를 이용하면 연구에 필요한 많은 양을 얻을 수 있게 됐다. PCR의 발명은 DNA 연구를 활성화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 DNA 지문분석법 발명

1984년 영국의 알렉 제프리는 DNA 지문분석법을 발명했다. DNA 염기서열은 손가락의 지문처럼 사람마다 다르다. 그 차이를 알아내는 방법이 등장한 것이었다. 그는 DNA 서열을 제한효소로 나눴을 때 크기가 다양한 부분을 이용했다. 현재 범죄 수사에서 신원확인이나 친자를 밝혀내는 일에 사용되고 있다.

■ 유전자치료 실시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1990년 유전질환을 갖고 있는 여자아이를 대상으로 유전자 치료를 시도했다. 병의 치료에 유용한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환자의 DNA에 삽입해 병을 치료하는 방법이었다. 유전자 치료는 현재 효과적 치료방법이 없는 유전병과 암, 에이즈를 정복할 유력한 방법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 최초의 유전자조작 식품 승인

1994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유전자조작(GM) 토마토가 시장에서 팔리는 것을 승인했다. 미 칼진사가 내놓은 토마토는 유전자를 조작해 오랫동안 운반돼도 잘 물러지지 않도록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후 생산성이 높거나 제초제·질병에 대한 저항성이 강한 유전자변형 식물이 대거 등장해 식량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재 15개 작물 68개 품종이 생산되고 있다.

■ 인간게놈지도 작성

1990년 인간이 가진 전체 DNA에 담긴 유전정보를 밝히는 인간게놈프로젝트가 6개국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의해 시작됐다. 게놈지도 작성은 생명체의 DNA에 담겨 있는 모든 유전정보를 간직한 도서관을 건립하는 일과 같다. 인간이 가진 엄청난 분량의 자료와 씨름하고 있는 동안 1995년 인플루엔자, 1996년 효모, 1998년 선충, 2000년 애기장대 등의 게놈 해독이 완료됐다. 국제 컨소시엄은 뒤늦게 인간게놈 해독에 뛰어든 미국의 셀레라사와 함께 2001년 99%를 밝힌 인간게놈지도가 공개됐다. 올해에는 정확한 게놈지도가 완성돼 대단원의 막이 내릴 예정이다.

김홍재 동아사이언스기자 ecos@donga.com

■이중나선구조 첫 발견 美 왓슨-英 크릭

"우리가 생명의 신비를 밝혀냈어.” 1953년 봄 영국 카벤디시 연구소 근처의 ‘이글’이란 식당에 한 영국 젊은이가 뛰어들며 이렇게 외쳤다. 그의 뒤에는 또 다른 젊은 미국인이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두 젊은이가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낸 제임스 왓슨(75!?미)과 프랜시스 크릭(87!?영)이다.

왓슨과 크릭이 DNA의 구조를 밝혀낸 과정은 과학사에서 가장 멋진 역전 드라마로 꼽힌다.

당시 과학계에서 가장 큰 관심은 생명의 유전정보가 담긴 DNA의 구조에 쏠려 있었다. 역사상 최고의 화학자 중 하나인 미국의 라이너스 폴링을 비롯해 런던 대학 킹스칼리지의 모리스 윌킨스와 로잘린드 프랭클린 등이 선두 그룹이었다.

22세에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왓슨은 이듬해인 1951년 봄 영국 카벤디시 연구소에 갔다가 물리학자였던 크릭을 만났다. DNA의 구조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갖고 있던 두 사람은 바로 한 팀이 됐다. 경쟁자에 비해 햇병아리 과학자였던 왓슨과 크릭은 처음에는 고전했다. 그러나 DNA의 염기 성분이 일정한 비율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과 프랭클린이 찍은 DNA X선 사진에서 결정적인 힌트를 얻었다. 마침내 두 사람은 두 가닥의 핵산이 대칭적으로 나선을 이룬 DNA의 구조를 밝혀냈다.

왓슨과 크릭은 DNA구조를 발견한 이후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왓슨은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와 하버드대 교수를 지낸 뒤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의 소장이 돼 지금도 그곳에 있다. 그는 DNA 구조 발견의 뒷이야기를 다룬 ‘이중나선’이라는 책을 쓰면서 크릭 등 다른 과학자들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이후 60대 후반에 인간의 생명 설계도를 밝히려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초대 책임자가 돼 1992년까지 게놈 연구를 주도했다.

크릭은 1976년까지 영국에 있다가 77년 미국 캘리포니아 솔크 연구소로 건너와 뇌 연구에 몰두했다. 연구 관리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던 왓슨에 비해 크릭은 연구 자체에 더 집중했다. 크릭은 물리학자였지만 DNA 구조를 발견한 뒤 생명과학자의 길을 걸었다. 크???한때 지구의 생명이 우주에서 날아온 포자에서 시작됐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담은 책 ‘생명의 출현’을 펴내기도 했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기자 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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