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윤리법 내용과 의미]과학발전-생명윤리 애매한 절충

  • 입력 2002년 9월 23일 18시 17분


보건복지부가 입법예고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약칭 생명윤리법)은 그동안 논란이 된 체세포 핵이식(체세포 복제) 문제에 대해 ‘생명과학 발전’과 ‘생명윤리 존중’을 절충하는 방향으로 정리했다.

치료 목적을 포함해 모든 형태의 체세포 핵이식을 원칙적으로 금지했지만 국가생명윤리자문위원회를 통해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길을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안과의 차이〓종교계 여성계 보건의료 분야의 69개 단체가 참여한 ‘생명윤리법 캠페인단’은 그동안 △체세포 핵이식을 통한 인간 복제와 이종간 교잡 금지 △초기 생명체인 인간배아 보호 △우생학적 목적의 유전자 치료 금지를 요구해 왔다.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이런 주장을 법안에 대부분 반영했다.

그러나 국가생명윤리자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예외적으로 이종간 체세포 핵이식에 대한 연구가 가능해졌다는 점은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과학계는 국내외 연구 동향과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반영해 보다 폭넓은 연구 허용에 기대를 걸고 있고 ‘생명윤리법 캠페인단’은 곧 공식입장을 발표해 이 조항의 삭제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의미〓인간을 복제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론적으로는 특정인의 귀에서 떼어낸 체세포로 배아를 만들고 이것을 자궁에 착상시켜 출산하면 가능한 일이다.

생명윤리법은 이처럼 체세포 핵이식 기술이 발전해 복제 인간까지 만들어 내는 ‘미래의 일’을 예상하고 이를 ‘오늘의 법 테두리’에서 국가가 체계적으로 관리하려는 목적에서 추진됐다.

보건사회연구원 이의경(李儀卿) 보건자원팀장은 “인간복제 등 생명과학 분야의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상황에서 생명윤리 문제를 사회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생명공학이 질병 예방과 치료에 큰 기여를 해 온 현실을 감안하면 이 분야의 연구를 상당 부분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법안은 보존 기간이 지나 폐기될 냉동잔여 배아에 대해서만 연구가 가능하도록 했는데 냉동잔여 배아를 이용한 줄기세포 연구는 체세포 복제를 통한 줄기세포연구에 비해 의학적 유용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국내 처음으로 복제소를 만든 서울대 수의대 황우석(黃禹錫) 교수는 “배아복제와 이종간 핵이식을 예외적으로 허용했으나 이는 사실상 금지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현 단계에서는 인간개체 복제만 금지하고 나머지 분야는 연구를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명윤리 법안 쟁점사항
시민단체안입법예고안
인간복제, 다른 동물과의 교잡행위 금지반영
초기 생명인 인간 배아의 보호연구목적의 냉동 잔여배아 이용 허용
우생학적 목적의 유전자 치료 금지반영.유전성질환, 암,에이즈 치료시 허용
개인 유전정보의 오남용 방지 및 보호반영
실험 동물의 생명권 존중관련 규정 없음
비윤리적인 생명특허 금지관련 규정 없음
국가생명윤리위원회설치 운영반영

(시민단체안은 종교 여성 보건의료 분야 69개 단체가 참여한 생명윤리법 공동캠페인단에서 제시.)

송상근기자 songmoon@donga.com

▼국내외 연구 어디까지 왔나▼

생명윤리법은 인간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 이종(異種)간 체세포 이식 등 현대 과학의 최첨단 영역에 대해 윤리적 한계를 설정한 것이다.

이들 영역의 기술 수준에 대해서는 베일에 가려진 면이 많다. 많은 과학자가 윤리적 비난을 우려해 비밀리에 연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복제〓‘복제 인간’을 만드는 것에 찬성하는 국가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올 7월 초 미국의 인간복제 전문회사인 클로네이드사의 한국지사는 한국인 여성 1명이 복제된 배아를 임신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과학계에서는 이 회사의 기술력을 고려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현재 선진국에서는 배아줄기세포를 치료용으로 쓸 만큼 많이 키우고 특정 장기 속에서 원하는 대로 분화시키는 방법에 대해 경쟁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국내 연구수준도 세계 정상급.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는 2000년 냉동배아를 심장근육세포, 신경세포, 근육세포 등으로 분화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서울대 의대는 배아줄기세포의 체계적 연구를 위해 연구자들에게 배아줄기 세포주(株)를 공급해줄 은행을 설립 중이다.

그런데 올해 미국 미네소타대 연구팀이 사람의 몸 속에 있는 성체 줄기세포도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종교계에서는 이를 근거로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아예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종(異種)을 이용한 연구〓1999년 3월 이탈리아의 연구팀이 쥐의 고환에서 성숙시킨 인간 정자를 이용해 4명의 아기를 출생시켰다고 밝혀 ‘쥐인간’ 파문이 일어났다. 이종간 생식 연구의 국내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00년 서울대 황우석 교수는 소의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다음 인간의 체세포 핵을 넣어 자궁 착상 전 단계인 배반포까지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 올 3월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는 핵을 미리 제거한 소의 난자에 사람의 귀에서 떼어낸 체세포를 넣어 배반포까지 배양했으며 7월 을지병원에서는 사람의 냉동난소를 쥐에 이식해 정상적인 사람의 난자를 성숙시키는 실험에 성공했다.

이진한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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