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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3월 10일 17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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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개 농담에 관대하다. 좋은 농담은 건강의 묘약이고, 사회의 윤활유다. 15개의 얼굴 근육이 수축하면서 소리를 내는 무의식적인 이 반사작용은 자연 진통제 엔돌핀을 생성하고, 도파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억제한다. 자주 웃으면 혈압이 떨어지고, 20초 동안 웃는 게 3분 동안 격심한 조정경기를 하는 것만큼 심장에 좋다고 한다.
그러나 농담을 포함한 웃음은 그 생물학적 바탕에 공격성이 짙게 깔려 있다. 매사추세츠공대 스티븐 핑커 교수 등 진화심리학자들은 웃음이 집단적 공격과 조롱 행동으로부터 진화했다고 본다. 원숭이들은 공동의 적을 공격 또는 위협할 때 톱 써는 듯한 소리로 웃어대며 군중심리를 조장한다.
인간 사회에서도 농담은 평화로 위장하고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공격하는 최선의 수단인 경우가 많다. 내밀하고 교묘한 농담에 상대는 꼼짝없이 당한다. 더구나 웃음은 전염성이 강해 웃음거리가 되는 사람은 속으로 신음소리를 낸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 보다 함께 있을 때 30배나 더 많이 웃는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인간의 역사를 보면 괴성을 지르는 약탈자들의 웃음, 거리에서 사형장에 끌려가는 사람에게 조롱하는 군중이 자주 등장한다.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살았던 한 인류학자는 어느 날 오두막 입구의 문틀에 부딪쳐 이마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옆에서 배꼽을 잡고 웃어대는 원주민들을 보면서 이 학자는 공격성 강한 가학적 웃음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가학적 웃음은 요즘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단골메뉴이다. 연예인 등 유명인사에게 육체적 고통을 주고 괴로워하는 장면을 보면서 시청자를 웃겨 채널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프로그램이 국내에도 많이 등장했다.
대개 농담의 공격 목표는 정치인, 상사, 선생 등 권력자다. 절대권력을 행사했던 전두환, 이순자씨 부부는 한국 유머 사상 최고의 주인공이었다. 시민들은 절대권력자의 겉치레를 유머로 벗겨내면서 6월 항쟁의 연대의식을 다졌다.
인간의 DNA에는 신랄하고 야비하고 음탕한 농담을 통해 상대를 괴롭히려는 본능이 약간씩은 숨어있다. 이런 본능에다가 유머를 잘 해야 성공한다고 믿는 현대판 처세술, 방송의 상업적 웃음 팔기까지 가세해 농담이 ‘사회의 윤활유’라기보다 ‘인화물질’이 될 때가 많다. ‘투나잇쇼’의 제이 레노처럼 상대를 멸시 공격하는 조롱보다 자신을 낮추는 현명한 농담을 더 생각할 때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