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벤처들 '양다리 걸치기'

  • 입력 2000년 11월 13일 18시 45분


‘험한 세상이 오기 전에 건너갈 다리를 만들자.’

SK케미칼이 서울대 의대와 공동으로 세운 바이오벤처기업 인투젠의 김대기 사장은 요즘 2개의 명함을 갖고 다닌다.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면 인투젠 대표이사와 SK케미칼 생명과학연구소장을 겸임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올 상반기 게놈 프로젝트 초안이 발표되자 SK케미칼에서 완전히 분리 독립해 신약 후보물질을 탐색하는 벤처 기업을 운영하겠다는 당초의 계획을 유보한 것.

국내 최초로 위암 항암제인 ‘선플라’를 개발한 뒤 국내 판매를 허가받은 김사장은 “핵심 연구 인력을 벤처기업에 모셔왔지만 아직까지는 모기업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내년까지 신약 개발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낸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신생 벤처기업의 의욕만으로는 부족한 연구장비와 공동 연구 인력 등의 어려움을 헤쳐나가기 힘들다는 게 김사장의 생각.

산업 기반이 취약한데다 외부 환경마저 갈수록 나빠지자 유망 바이오벤처기업이 대기업이나 정부연구소에 ‘다리’를 걸쳐놓으며 생존 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 대기업에서 분사하려던 계획을 중단하거나 독자적으로 추진하던 사업을 공동 연구개발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생물정보학을 기반으로 신약 물질을 발굴하는 IDR는 종근당 등 제휴 제약사에 실험을 의뢰하고 연구 결과에 대해서는 제약사와 공동으로 특허를 출원하기로 했다.

종근당 의약연구소 연구원 출신인 IDR의 한철규 사장은 “최근 종근당의 출자 지분을 12%에서 9%로 낮추며 독립적인 기반을 갖추려했으나 매출 구조가 빈약해 제약사와의 공동 연구를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LG화학 출신 연구원 10명이 설립한 크리스탈지노믹스도 최근 정부출연연구소인 한국화학연구소와 제휴를 맺고 ‘조인트벤처형’ 공동 연구를 수행하며 연구 결과에 따른 수입은 나눠갖기로 했다.

현대기술투자의 정태흠 생명공학팀장은 “바이오에도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면서 독자적인 사업을 추진하던 유망 벤처기업들이 조인트벤처형 생존 모델을 찾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정위용기자>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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