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벤처밸리 불꺼진 곳 많다…거품 조정국면 돌입

  • 입력 2000년 7월 20일 18시 43분


“좋은 장외주식도 매매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펀딩(투자유치)이 힘들어 직원 수를 줄인 벤처도 많아졌다. 이대로 가면 테헤란 밸리는 조만간 텅텅 빌 것이다.”(증권 전문가)

“장외에서 주가가 수십만원이나 하던 A기업은 지난달 직원 월급도 못주고 다른 회사의 출자를 받아 간신히 버티고 있다.”(한 벤처기업 대표)

벤처 열풍으로 불야성을 이루던 테헤란로 서울벤처밸리의 밤거리엔 불꺼진 창들이 하나둘 늘면서 스산한 분위기까지 감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금맥을 찾아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대던 벤처의 메카가 갑자기 ‘폐광촌’으로 변해 버린 느낌이다.

정보기술(IT) 벤처에 대한 투자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우리 신경제에 미래가 있는가’라는 의문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서울벤처밸리에는 ‘9월 대란설’ ‘10월 대란설’ 등이 떠돌면서 인터넷 벤처의 위기가 경제 전반을 강타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마저 보이고 있다.

4월 블랙먼데이 이후 급격히 줄기 시작한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는 이제 거의 중단된 상태. 투자자들이 외면하는 이유는 코스닥시장의 침체 때문이다. 여기에 내로라 하는 인터넷벤처 대표주자들이 번번이 코스닥 등록에 실패할 만큼 코스닥 등록이 어려운 점도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무선인터넷 전문회사 아이펜텍의 강명필 사장은 “‘옥석 가리기’ 차원을 넘어 우량 벤처기업까지 씨를 말리는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며 “국내 벤처기업의 뿌리가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고 위기감을 전했다.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창업투자사도 울상이다. 3월 16개로 절정을 이뤘던 신규 창투사 등록도 5월 10개에서 지난달 4개로 뚝 떨어진 상태.

‘조금만 더 기다리면 우량기업에 저렴하게 투자할 수 있다’던 얼마 전까지의 관망 분위기도 이제 사라졌다. 투자할 돈이 말라버려 문을 닫는 창투사마저 생길 정도다.

140여개 창투사 가운데 절반 가량은 투자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 98년 동아석유가 자본금 100억원으로 설립한 SAM캐피탈은 최근 중소기업청에 창투사 등록증을 반납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자본금 외에 추가로 투자자금을 조성할 수 없는데다 투자대상을 찾지 못해 폐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추산에 따르면 창투사 코스닥 등을 통해 벤처업계로 흘러들어간 돈은 모두 54조원 정도.

그러나 올 연말이면 상당수 후발 소형창투사들은 문을 닫거나 인수합병(M&A)될지도 모른다는 ‘창투사 대란설’이 퍼지고 있다.

실물경제의 ‘풍향계’ 역할을 하는 광고시장에도 찬바람이 돌기는 마찬가지. 5월 이후 광고시장은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증시침체와 벤처기업들의 거품 붕괴. 금융시장 불안으로 증권 은행권의 광고가 줄어든데다 벤처기업들도 자금난 때문에 광고부문 지출을 억제하고 있다.

<정영태기자>ebizwi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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