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해커 "컴퓨터 실력 과시위해 바이러스 만들어"

  • 입력 2000년 2월 17일 19시 40분


‘철없는 10대의 컴퓨터 과시욕.’

17일 경찰청에 불구속 입건된 중학교 2년생 서모군(15). 그는 이날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불려와서야 자신이 저지른 일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닫고 고개를 떨구었다.

충북의 한 소도시에 사는 서군은 공무원 아버지를 둔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소년. 전학년에서 2등을 할 정도로 머리가 영리한 서군이 컴퓨터에 본격적으로 빠져들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중학교 입학 무렵.

1년여 동네 컴퓨터학원에서 실력을 쌓아가던 서군은 새해 들어 엉뚱한 생각을 품었다. 자신의 컴퓨터 실력을 시험해보기 위해 지난해 3월 전세계 신문과 방송을 떠들썩하게 했던 멜리사 바이러스와 같은 컴퓨터 바이러스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

서군은 그 이후 20여일간 컴퓨터 잡지와 인터넷상의 컴퓨터 동아리 등을 통해 바이러스에 대한 전문지식을 하나씩 쌓아나갔다. 만족할 수준으로 준비작업을 끝냈다고 생각한 서군은 지난달 25일 집안에 칩거, 본격적인 바이러스 제작에 몰입했다.

닷새 동안 밤잠을 설치며 바이러스 제작에 몰두한 서군은 마침내 지난달 30일 웜바이러스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서군의 이같은 실력은 컴퓨터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를 수준이었다.

그러나 서군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다음날 곧바로 자신의 실력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인터넷에 문제의 바이러스를 올렸다.

그로부터 며칠 뒤 서군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세상의 반응을 확인하고 더욱 우쭐했다. 그는 대담하게도 3일 백신전문가인 안철수씨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모 컴퓨터잡지사의 홈페이지에 새로운 웜바이러스가 나타났다”며 자신이 만든 바이러스를 ‘자진신고’했다.

그러나 이같은 철없는 과시욕은 길게 가지 못했다. 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를 통해 서군이 만든 새로운 바이러스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곧바로 역추적 작업을 통해 서군을 검거하기에 이르렀기 때문.

서군은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친 경찰관들을 보고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네가 만든 바이러스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느냐’는 경찰관의 질문에 서군은 “만들면서 웜바이러스가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처럼 사회적으로 충격이 클 줄은 전혀 몰랐다”며 고개를 무릎에 파묻었다.

경찰에서 조사받는 동안 내내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던 서군은 장래희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컴퓨터 프로그래머”라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현두기자> 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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