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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7월 30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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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시간여행을 갔다고 가정해보자. 거기서 나는 그래니(할머니)를 찾아간다. 그녀는 아주 젊었고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그녀는 할아버지를 몰랐으며, 물론 아버지도 낳지 않았다. 나는 젊은 그래니와 함께 알프스로 등반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실수로 그래니가 암벽에서 떨어져 죽는 비극적 사고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로 되돌아왔을 때, 나는 과연 존재할 것인가?
‘그래니―패러독스.’ 시간여행을 생각해온 과학자와 공상가들에게 가장 큰 논쟁거리가 돼 온 주제다. 시간여행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과거 역사에 대해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영국 왕립 천문학회 연구원을 역임했으며 수많은 과학 입문서를 저술한 저자가 공상과학소설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생각돼 온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추적한 책이다. 저자는 ‘시간’개념에 대한 서양 물리학의 이론을 탐구하며 시간여행이 결코 상상이 아니라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다.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는 전통적 시간개념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에서 깨진다. 즉, 모든 시간과 공간은 관찰자의 상대적 속도와 인식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 현대 우주론의 초석이 된 그의 이론은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우주선의 속도가 광속과 같을 수 있다면 시간은 정지될 것이고, 만약 광속보다 더 빠를 수 있다면 시간은 거꾸로 흐를 것이다.그러나 현재의기술로우리는 광속의 1%에도 도달할 수 없다.
스티븐 호킹 등 현대과학자들은 양자역학을 이용해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탐지한다. 태양이 간직한 에너지의 48배나 되는 엄청난 중력을 갖고 있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우주 팽창과정에서 마이너스 중력을 통해 생겨난 ‘파이프 스트링’(시공간 구조가 일그러진 균열)은 타임머신의 출입구이자 고속도로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시간여행은 여전히 물음을 던진다. 과연 원인보다 결과가 먼저 일어날 수 있는가?
저자는 ‘그래니―패러독스’에 대해 현대 양자물리학의 ‘여러 세계’이론으로 답한다. 즉, 우주의 시간 층위는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라는 것. 아주 다양한 장면을 지닌 무수한 세계가 처음부터 존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시간여행자들의 개입으로 인해 세계가 새롭게 창조되지는 않으며, 인과법칙은 손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리학적인 지식이 없으면 다소 읽기가 어렵다. 그러나 UFO 텔레파시 등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일반인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전승훈기자〉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