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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4월 2일 19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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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일 문을 여는 서울 홍릉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리얼리티 스튜디오’.
L1 연구동 3층에 마련한 18평 규모의 스튜디오에 들어서면 석굴암의 고고한 자태가 그대로 펼쳐진다. 석굴암의 구석구석을 직접 걸어다니며 손에 잡힐 듯 실감나게 감상할 수 있다.
곧이어 무대 한 가운데 설치된 자전거를 타면 눈 앞에 KIST의 전경이 가득찬다. 언덕을 오를려면 자전거 패달을 돌리기가 힘들어진다. 반대로 내리막에서는 ‘야호’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올 만큼 발이 가볍다. 꽃밭을 지나칠 때면 꽃향기가 코 끝을 찌르며 완연한 봄을 만끽할 수 있다. 간혹 길 옆 둔턱에 자전거가 부딪히면 핸들이 틀어진다.
잠시후 화면이 바뀌자 이번엔 스튜디오 안의 사람이 ‘슈퍼맨’으로 변신한다. 영화처럼 손을 움직이거나 조이스틱을 사용하면 사이버스페이스(가상공간)의 ‘퍼포마타운’이란 마을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가상 미팅’은 더 놀랍다.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이 스튜디오 안에 나타난다. 마치 옆에 있는 사람처럼 눈동자를 맞추고 제스처를 써가며 서로 대화를 나눈다. 이번에 KIST가 선보이는 VR 스튜디오는 기존에 봐왔던 VR 3차원게임의 매끄럽지 못하고 거친 화질에서 벗어나 천연(天然)이라고 할 만큼 화려한 영상을 보여준다.
스튜디오의 화면은 해상도가 가로 3천8백픽셀(점·點), 세로가 1천24픽셀으로 인간의 시야를 가득 채우는 좌우 150°의 와이드스크린이다. 슈퍼컴퓨터가 이 수많은 영상 데이터와 3차원 음향을 제어하며 꿈같은 현실을 창조한다.
‘액정화면(LCD) 셔터링 글래스’라는 장비를 안경처럼 쓰면 영상은 아예 입체영상으로 꿈틀거리며 살아난다.
이 스튜디오는 KIST의 영상미디어연구센터 연구원 20여명이 G7연구의 하나로 1년여간 심혈을 기울여 만든 국내 가상현실 기술의 진수.
센터장 김형곤(金炯坤)박사는 “VR기술은 시각 청각은 물론 운동감 촉각 후각의 영역까지 도전할 만큼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고 말한다.
VR의 최신기술 개발은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이 한발더 앞서나가고 있다. 미국 60여곳, 유럽 20여곳 등 세계에는 1백여개의 연구소가 VR기술경쟁을 벌이고 있다.
연간 3천만달러의 연구비를 쓰고 있는 미국 MIT대. 이곳의 VR연구는 가상현실에 들어온 인간의 긴장상태 뇌파 등 생체신호까지 컴퓨터가 감지, 가장 자연스러운 환경을 순간적으로 만들어줄 만큼 진보돼 있다.
일본도 ATR 소프토피아재팬 VR테크노재팬 등이 VR연구의 메카. 이중 VR테크노재팬은 도요타자동차와 손잡고 차체 및 엔진설계 제조 드라이빙 충돌 실험 등 가상현실하에서 자동차신모델을 제작하는 연구를 진행중이다. 도요타는 VR을 통한 신모델 제조로 가격경쟁력을 대폭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대덕 한국전자통신연구원내 VR연구개발센터. 올 2월말 문을 연 이 곳도 KIST와 쌍벽을 이루는 VR연구의 본산지. 2백70평 규모의 이 센터에는 사람의 동작을 입력하는 8대의 모션 캡처 적외선카메라 등 최신 VR장비가 갖춰져있다. 센터장인 이의택(李宜宅)부장은 “VR에 쓰일 컨텐트(정보)를 만드는 저작소프트웨어를 개발중”이라며 “VR은 향후 교육훈련 산업제조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에 적극 활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KIST 김센터장도 “미래에는 소비자들이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주택 등을 VR전시장에서 직접 작동하거나 살펴본 뒤 구입할 수 있게 된다”며 “현재 슈퍼컴퓨터에서 가능한 VR기술도 곧 날로 성능이 높아지는 PC를 통해 누구나 실생활에서 활용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상현실기술은 가까운 미래에 스튜디오 안에서 백두산이나 히말라야를 오르고 고층빌딩 꼭대기에서 안전장비없이 뛰어내리거나 인간의 몸 속을 여행하며 사이버애인과 대화를 나누는 영화같은 일들을 창조하면서 인간의 ‘오감(五感)’를 정복하게 될 것이다.
〈김종래기자〉jongra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