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시대,「아담」은 「이브」를 찾는다

  • 입력 1998년 3월 9일 19시 49분


“멕 라이언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운 스타일의 여성을 찾았습니다. 요즘 생각이 바뀌었어요. 지금은 ‘에이리언4’에서 외계인과 싸우는 여전사 시고니 위버나 남성보다 강한 여성해병대원을 그린 ‘G I 제인’의 데미 무어 같은 ‘투사형 여성’이 필요한 시대 아닐까요?”

S증권사 강동지점 윤정훈대리(31)의 얘기. 노총각 딱지를 떼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던 윤대리. 최근 감원폭풍을 겪고 난 뒤 배우자상을 바꿨다. “결혼한 선배들의 한결같은 말이 그겁니다. 요즘같이 삶이 ‘전투’일 때에는 생활력과 경제력을 고루 갖춘 ‘전우’같은 배우자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H그룹 기획실의 이한영과장(36)의 얘기.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면서 현모양처형의 아내가 때로 얄밉게까지 느껴집니다. 동료들끼리 ‘간 큰 아내’ 1위가 남편이 벌어오는 것만 갖고 집에 앉아 살림하는 여성이라는 농담도 흔히 해요. 회사 후배 중에도 일을 하든 술을 마시든 ‘전투적’ 모습을 보이는 여직원이 다소곳한 스타일보다 예뻐 보입니다.”

영양상태가 부실한 ‘미개사회’에서는 풍만한 여성이, 영양섭취가 과다한 ‘문명사회’에서는 날씬하고 호리호리한 여성이 매력적인 여성으로 꼽힌다는 것은 상식. 그렇다면 사회경제적 여건을 10년이상 후퇴시켰다는 IMF한파는 우리사회의 ‘이브’를 어떤 모습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걸까.

결혼미팅전문업체인 선우이벤트는 지난달말 20,30대 미혼남녀 5백53명을 대상으로 ‘IMF시대의 배우자 필수조건’ 설문조사를 벌였다.

조사결과 좋아하는 배우자형의 여성탤런트로 최진실(30%)이 1위를 차지했다. 최진실은 MBC드라마 ‘그대그리고 나’에서 전문직여성과 억척주부의 역할을 동시에 해내면서 ‘IMF시대의 여성상’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 최진실은 지난 2년간의 조사에서 섹시하고 건강한 이미지의 김혜수등에게 밀려 3,4위에 머물렀었다. 외국영화배우로는 ‘전투력’이 강한 이미지를 가진 시고니 위버(7%)와 데미 무어(7%)가 멕 라이언(9%)과 비슷한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또 ‘생활력’이 배우자의 중요덕목으로 떠올랐다. 이 조사에서 생활력(24%)과 내조(23%)를 배우자의 주요덕목으로 꼽은 남성이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성격(36%)이 여전히 1위이긴 했지만 생활력이 급부상했다. 남성배우자의 덕목에서도 그간 1순위를 지켜오던 성격(25%)이 경제력(42%)에 1위 자리를 넘겨줬다. 한가한 시대의 ‘성격 거품’이 걷히는 현상.

지난해 ‘광고속에 나타난 4가지 여성상’ 주제의 논문을 발표했던 방송연구원 한은경연구위원.

“90년대 들어 여성은 노골적인 성의 대상으로 상품화됐습니다. 지난 2,3년간 여기에 ‘강한 여성이 아름답다’는 커리어우먼 이미지가 덧붙여졌어요. IMF시대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면 가뜩이나 나빠진 취업여건 속에서 여성에게 경제적 위기를 함께 극복할 수 있는 ‘강한 전투력’까지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분위기가 광고나 드라마에서도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보다‘구조조정’을일찍겪은미국의경우근육질의여성이남성을 힘으로 제압하는 내용의 드라마 ‘지나(Xena)’가 96년말 이후 인기를 끌고 있다.

선우이벤트의 이웅진대표의 얘기.

“대학을 졸업한 미혼남성의 80∼90%가 직업이 없는 여성은 아예 만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데이트를 시작한 뒤에도 두세번 만나면서 씀씀이가 헤프거나 허울만 좋은 데이트를 요구하는 여성은 ‘배척대상’ 1순위로 꼽히는 분위기입니다.‘신데렐라’가 설 자리는 없어지는 거죠.”

〈박중현기자〉

◇ 시대별 여성상 변화 ◇

[서양의 여성상]

▼르네상스시대(12∼16세기)〓인간의 ‘육체’에서 아름다움을 발견. 그리스 조각과 흡사한 풍만한 젖가슴과 포동포동한 팔다리, 든든한 허벅지를 가진 관능미 넘치는 여성.

▼절대주의시대(18세기)〓육체노동이나 육아와는 거리가 먼 ‘무위도식형’의 소녀같은 여성상. 부드럽고 섬세하며 작고 아담한 손과 발, 날씬한 팔다리, 자그마한 가슴 등.

▼부르주아시대(18∼19세기)〓중산계급으로 떠오른 부르주아의 합리적 사고방식을 반영. 아이를 낳고 키우기에 적합한 튼실한 골반, 풍만한 유방과 함께 가계를 관리할 수 있는 적절한 지성도 요구됨.

[한국의 여성상]

▼ ∼1960년대〓순종적인 현모양처형 여성. 출산에 적당한 체격조건.

▼1970,80년대〓생활력이 강하며 지적인 면모를 갖춘 여성. 아담하고 건강해 보이는 외모.

▼1990년대〓성적인 매력을 갖춘 늘씬한 여성. 서구적 외모.

▼IMF시대〓매력적인 외모와 함께 생활력 경제력을 갖춘 독립적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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