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넷]채팅族,잠 못이루는 「사이버 나이트」

  • 입력 1997년 7월 30일 08시 04분


아스팔트마저 녹일 것 같이 태양이 작열하는 한여름. 후끈거리는 무더위로 잠 못이루는 열대야(熱帶夜). 그래도 채팅족에겐 밤이 즐겁다.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유니텔 등 PC통신에 개설된 대화방에 모여든 채팅족들은 이런저런 사연으로 밤을 새우기 일쑤다. 천리안의 한 대화방에는 「더위를 피해 추운 세상에 모여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이 방에 들어서면 「꽁꽁이」 「아이추워」 「coolly」 「써얼렁」이란 대화명으로 추위를 그리워하는 괴짜들이 옹기종기 앉아있다. 사는 곳은 서울 부산 광주 강릉으로 제각각 다르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이들만의 사이버공간은 수다떠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마냥 즐겁다. 자정을 훨씬 넘은 오전 2시. 이들은 오싹오싹한 귀신 이야기와 썰렁한 유머시리즈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더위를 잊은지 오래다. 국내 PC통신의 온라인 대화방에는 밤 12시의 늦은 시간에도 매일 1만∼1만3천명에 달하는 네티즌이 밤을 새워가며 채팅을 즐기고 있다. 대화방에 들어가기전에 머무는 대기실에는 늘 수백명씩 우글거린다. 대화방은 방학을 맞은 20대와 10대 초중고교생으로 초만원이다. 「몸은 늙어도 마음만은 신세대」라고 주장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30, 40대 늦깎이 통신족 아저씨 아줌마들도 적지 않다.요즘엔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등지의 교포나 유학생까지 인터넷을 타고 대화방에 찾아온다. 대화방의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연인간에 사랑의 밀어를 주고받는 대화방부터 영퀴방(영화퀴즈를 내고 맞히는 방), 나이 불문하고 반말만 쓰는 야자방, 항상 열기가 넘치는 미팅방, 말잇기방, 잠수방, 연령별 연고별 동호회별 모임 등에는 항상 사람이 넘쳐난다. 오전 5시의 또다른 대화방. 「내일 밤 또 만나요. 서로에게 메일(전자편지)을 자주 보내는 것도 잊지 말고요」. 더위를 잊은 채 밤을 지새며 정든 사람들은 또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이렇게 동틀 무렵 잠자리에 드는 철야채팅파도 통신망마다 수백명씩이다. 채팅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번개」 모임을 빼놓을 수 없다. 대화중에 한 사람이 「번개」를 외치고 나머지 사람들이 동의하면 밤이건 새벽이건 가리지 않고 그즉시 밖에 나가 만나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요즘 여의도둔치 신촌과 홍익대부근 압구정동 등이 번개모임 장소로 유명하다.번개모임의 대상은 남녀노소 불문이다. 서로 얼굴을 확인한다는 설렘으로 만난 이들은 금세 절친한 친구가 된다. 술이나 음료수를 마시며 대화방에서 못다한 얘기를 다시 나누다보면 밤을 꼬박 새기 일쑤. 대화방마다 어슬렁거리며 장난치는 치한들도 적지 않다. 「바로섹스」라는 대화명같은 저속한 성적인 말이나 욕설 등을 달고 대화방을 오가며 상대방에게 마구 욕을 하거나 모욕을 주는 무뢰한이다.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를 나눈다는 점을 악용해 선량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이버 공간의 무법자다. 여름을 잊은 채팅족들. 바쁜 세상, 무더운 여름을 피해 이들은 지금 PC통신과 인터넷의 은밀한 세계에서 자기들만의 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김종내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