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인 컬처]101명의 걸 등수 매기기… ‘뜨려면 써도 삼켜야’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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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넷 ‘프로듀스 101’… ‘국민 프로듀서’를 제거하라

101명의 여성. 엠넷 ‘프로듀스 101’(이하 101)의 출연자다. 46개 기획사에서 모인 101명의 걸그룹 연습생. ‘국민 프로듀서’라고 명명된 시청자들의 온라인 투표로 1위부터 101위까지 등수가 부여된다.

“양계장 같아요. 독감 예방주사 맞으면서 괴로워하는 소녀들, 계체량 거쳐 ‘몰카’ 앞에 서죠. 어쨌거나 재미는 보장. 전, ○○가 제일 좋아요.” 이렇게 말하던 박성종(가명·44) 씨는 문득 한 차례 몸서리쳤다. “근데 담에 우리 수진이(11·딸) 나간다고 하면… 어떡하지?”

101명의 출연료는 다 합쳐 0원. 출연자들은 방송 편집분에 대한 어떤 이의나 법적 청구도 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긴 계약서를 썼다. 매회가 끝날 때쯤 진행자 장근석은 전 출연진의 배꼽인사를 독려한다. “자, 우리 프로듀서님들께 인사!” “(일동 카메라를 보며) 국민 프로듀서님, 잘 부탁드립니다!!!”

에이전트 5(김윤종 기자), 에이전트 7(임희윤 기자)! 본부에서 지령이 내려왔다. ‘지구의 미래인 소녀들을 괴롭히는 인류 역사의 훼방꾼, 국민 프로듀서들의 실체를 밝혀낸 뒤, 제거하라. 작전명: ‘Kill Gungmin Producer(킬 국민 프로듀서)’.

○ 단서 1: 연습생 소속사의 말

살해라니. 번뇌가 일었다. ‘본노가르즈(번뇌걸스)’가 떠올랐다. 2005년 일본. 108명의 여성 멤버로 결성된 전설의 걸그룹. 팬 총선거로 핵심 멤버를 정하는 AKB48을 여기 섞은 게 101의 콘셉트다.

군소 기획사들은 그럼에도 회사 내 여성 연습생을 총동원해 101에 투입했다. ‘올인.’ A기획사 대표의 목소리에 번뇌가 묻어 있었다. “거기(101)만 다녀오면 아이(연습생)들이 풀 죽어 있어요. 몸보다 맘이 더 힘들대요. 순위 발표, 스토리 편집, 경쟁…. 명색이 대푠데 전 방송 잘 안 봐요. 애들한테 제가 무슨 짓을 한 건지….”

B기획사 이사는 101 아니라 1001에라도 연습생을 출전시키겠다고 했다. “다음 작품은 남자 버전이겠죠. 제작비는 대형 기획사의 20분의 1도 못 쓰는, 상장도 안 된 우리 회사 아이들한테 그나마 이 기회가 어디예요. × 같죠. 근데 로또 같죠. 쓴데 좋다면 삼켜야죠.”

듣다 보니 국민 프로듀서는 ‘엠넷의 편집 의도’가 아닐까 하는 심증이 들었다. 캐릭터, 실력, 인품까지 제작진의 편집 의도와 분량에 따라 결정…. 실력 없는 멤버를 돕는 천사, 예쁜 데다 노래와 춤 되고 집안까지 어려워 동정심마저 유발하는 출연자 김세정(현재 1위·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 소속)은 대중이 열광할 완벽 캐릭터…. 젤리피쉬는 엠넷이 속한 CJ E&M이 지분을 투자한 곳. 10위 안에 이 회사 연습생 3명이 포진….

○ 단서 2: 10대 101명의 시각, 성-연령대별 시청률

거리를 배회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우리는 조사업체(엠브레인)와 함께 101을 본 643명에게 물어봤다. 뜻밖에 이 프로에 대한 긍정적 시각(58%)이 많았다. 특히 이 프로를 부정적으로 보는 10대는 40% 미만이었다. 또래들의 피학을 즐긴단 말인가? 이것은… 외계문명?

CJ E&M을 찾아갔다. “자, 6회 성-연령대별 시청률을 볼까요. 10대 여성이 가장 높아요. 이어 20대 여성, 30대 여성…. 여자들이 보는 프로그램이라고요!”(CJ E&M 관계자)

제1 용의선상에 시커먼 삼촌 팬들을 뒀건만…. 모든 전제가 흔들렸다. 도대체 왜 여자들이…? “중년 남성이 대놓고 거실 ‘테레비’로 그걸 보겠어요? TV 시청률에 속지 말라고요.”(B일간지 C 기자)

○ 단서 3: 연옥서 내려다본 잠깐의 천국 혹은 지옥


“자꾸 101 갖고 사회의 축소판이라고들 하는데…. 그거 현실 아니에요. ‘헬조선’에서도 개개인의 삶이 편집돼 방영되거나 1등부터 4000만 등까지 매겨져 공시되진 않아요. 이건 연옥쯤 있는 사람이 지옥 내려다보며 만끽하는 잠깐의 천국.”(40대 회사원 정모 씨)

우리가 만난 643명의 국민 프로듀서는 20대, 30대로 올라갈수록 101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약해졌다. “면접 가서 ‘왜 날 뽑아야 하나’를 말하는 것과 춤과 노래로 ‘Pick Me’(101 주제곡)를 외치는 게 무슨 차이인가요? 동질감에 보는 겁니다. 국민 프로듀서를 죽이지 마세요.”(김헌식 문화평론가)

우린 연민을 느꼈고 거울을 향해 들었던 총구를 천천히 내렸다. 두 요원은 피폐해진 심신을 끌고 서울 강북의 부촌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다음 회에 계속)

임희윤 imi@donga.com·김윤종 기자
#프로듀스 101#프로듀서#엠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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