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인 컬처]대마맥주 마약치킨 히로뽕커피… 중독놀이에 빠진 청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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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권內 소심한 일탈… ‘약’팔고 ‘약’빠는 사회

《 22일 오후 서울 홍익대 앞. 에이전트 7(임희윤 기자), 에이전트 5(김윤종 기자)는 계속된 임무로 스트레스가 누적됐다는 자체 판단하에 조기 퇴근을 감행했다. 목부터 축일 겸 편의점에 들어선 순간, 지구 청년들의 환호가 들렸다.“이거 마셔 봐. 은근히 중독성 강해!” 대학생들이 손에 쥔 그것의 이름은 ‘부라더#소다’. 애들 먹는 탄산음료 같았다. 편의점 직원이 말했다. “이래 봬도 알코올 3%짜리 주류예요. 처음 봐요?” 지난해 9월 출시돼 현재까지 996만 병이나 팔릴 정도로 인기라고 했다. 》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 이파리, 이파리, 그 이파리


병에 상품명보다도 크게 새겨진 특이한 이파리 마크부터 눈에 들어왔다. 단풍잎 같았다. 계산대 옆 대학생 김승철 씨(27)가 거들었다. “딱 대마 잎이잖아요. 이거 약 빨고 만든 음료수라니까.”

이 음료를 출시한 보해양조 나종호 팀장은 손사래를 쳤다. “우리 회사에서 냈던 ‘잎새주’(소주)의 단풍 마크를 가져온 거예요. 중독성이 강하니까 젊은 사람들이 그리 인식하는 것 같아요.” 우리와 달리 지구(해외) 문화에 익숙한 친구들은 입을 모았다. “대마네요. 단풍잎 같지만, 대마예요. (제조사가) 노렸어요.”

편의점을 나서니 여기저기서 잎들이 펄럭였다. 커피숍의 간판과 에스프레소 잔, 양말, 모자에도 이파리, 이파리, 이파리…. “딱 봐도 대마 잎을 내세운 제품이 많아 첨엔 놀랐어요. 이젠 좀 무뎌지는….”(대학원생 송유라 씨)

‘약 빤’이란 표현도 흔해졌다. ‘약 빤 기사’ ‘약 빤 드라마’…. 향정신성 약물이 금지된 대한민국 국민이 정말 이렇게 약을 많이 흡입한단 말인가? 이 정도면 죄다 외계인…? ‘약 빨았다’는 표현은 ‘제정신으론 못 만들었을 듯한 콘텐츠’를 가리킨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놀란 가슴은 좀체 가라앉지 않았다. 맘을 달래려 맥줏집에 들어갔다. 메뉴판에 눈길을 끄는 게 있었다. ‘대마맥주’…!! 조심스러웠지만 마음속에서 격렬한 체험 욕망이 솟구쳤다.

55분 동안 세 병째. 우리는 얼큰하게 취기가 올랐다. 하지만 ‘이파리’의 효과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파리’ 흡연 경험이 있는 A 씨를 불렀다. 다음은 그의 소감이다. “한 모금 마시고 숨을 내쉬니 나긴 하네요, 스멜(냄새)∼. 그것뿐이에요. 근데 대마초 즐겨 했던 사람은 이 향기 맡고 문득 한 대 생각날 수는 있겠지. 하하.”

식품의약품안전처에 가니 김성진 마약정책과장이 서 있었다. “대마의 씨와 뿌리, 성숙한 줄기에는 환각 성분이 없어요. 씨로 만든 맥주가 유통 가능한 까닭이죠.”

○ 마약곱창, 히로뽕커피… 중독 권하는 세상

다음 날 오후. 우리는 숙취를 해소하기 위해 편의점을 찾았다 부라더#소다에 또 혹했다. 그걸 들고 나선 거리에 이번엔 ‘마약’이란 간판들이 아우성쳤다. ‘마약떡볶이’ ‘마약순두부’ ‘마약곱창’…. 한 카페에는 ‘히로뽕커피’도 있었다. 큰 잔은 이른바 ‘약쟁이용’, 작은 잔은 ‘일반인용’이란다.

쓱닷컴(신세계쇼핑몰)에 들어가 ‘마약’이라 치니까 5개 카테고리, 77개 상품이 검색됐다. 헉! ‘마약청바지’ ‘마약방석’ ‘마약 스페셜 2인 세트’….

“아재들, 촌스럽게! 붕어빵에 붕어, 히로뽕 커피에 히로뽕, 마약 치킨에 마약 든 걸로 믿는 건 아니겠죠?”(대학생 이정연 씨)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법무담당 K 씨는 걱정스러워 보였다. “마약류를 멀리하고 위험하게 보는 사회 인식이 약해지고 있어요.” 맞는 말일까. 경찰청에 따르면 국내 마약사범은 2011년 5477건에서 지난해 7302건으로 33.3% 증가했다.

이 통계가 ‘마약××’ 열풍과 실제 마약사범의 상관관계를 입증할 수는 없었다. 늘 그렇듯, 우리는 이론적 분석을 원했다. 현대 사회 일상 영역에서의 ‘상상력’을 주제로 한 프랑스 사회학자 미셸 마페졸리(72)의 포스트모던 이론도 들여다봤다. 중독, 즉 금기시된 것에 대한 일탈은 개인에게 마치 축제와 같은 몰입감과 해방감을 준다는 것이다. 국민대 사회학과 최항섭 교수를 만났다. “요즘 젊은이들을 보세요. 입시, 취업… 뭐 하나 원하는 대로 되는 일이 없어요. 중독 권하는 문화는 현실을 잊는 방법으로 생긴 거죠. 금기인 듯 금기 아닌 것을 제도권 안에서 즐기게 되는 겁니다.” ※결론: 한국의 마약××=진짜 아닌 외계문명.

스트레스를 풀러 왔는데…. 머리가 다시 무거워졌다. 2016년 대한민국이 문득 희망의 공기가 희박한 별나라처럼 느껴져서다. 딱 그때였다. 벽에 걸린 TV 화면에 수백 명의 예쁜 여성이 나타난 것이. 이것은. ‘약 빤 프로그램이다!’(다음 회에서 계속)

김윤종 zozo@donga.com·임희윤 기자
#대마맥주#중독#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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