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짧은 소설]<18>분만실 앞에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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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이기호 소설가
이기호 소설가
아내가 분만실로 들어간 후, 그는 대기실 장의자에 차마 앉지 못한 채 계속 문 앞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장의자엔 대신 이제 막 두 돌이 지난 첫째 아이를 앉혔다. 첫째 아이는 ‘뽀로로’ 장난감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연신 ‘엄마, 엄마’를 외쳐댔다. 두 눈은 계속 분만실 쪽을 향해 있었다. 분만실에서는 간간이 아내의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분만실에 들어가기 전, 이마에 여드름이 많이 난 간호사 한 명이 그에게 물어왔다.

“혹시, 가족분만 하실 건가요? 요즈음은 다들 그렇게 하시는데?”

그가 우물쭈물 대답하지 못하는 사이, 침대에 누워 있던 아내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요. 더 방해만 돼요.”

그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그래도 함께 있는 게 더 낫지 않겠어?”라고 물었지만 아내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아내는 짧게 그를 흘겨보기도 했다. 간호사는 그들 부부를 번갈아가며 바라보다가 차트에 무언가를 적은 후 입원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는 죄 지은 사람처럼 가만히 고개만 숙이고 앉아 있었다.

이 년 전 가을, 그러니까 그들 부부의 첫째 아이가 태어나기 직전, 그는 불광동에 있는 한 산부인과 전문병원에서 난생 처음 ‘가족분만’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었다.

“남편 분이 분만의 전 과정을 함께하는 거예요. 그러면 산모의 고통도 훨씬 덜하거든요.”

안경을 쓴 젊은 산부인과 여의사는 볼펜 끝으로 톡톡, 책상을 쳐대면서 말했다. 그는 옆에 앉은 아내를 보면서 “아하하하, 그렇게 좋은 분만도 있었군요. 그럼 당연히 그걸로…”라고 말했지만, 정확히 그것이 어떤 분만법인지 도무지 짐작할 순 없었다. 그냥 뭐 아내 손만 꽉 잡아주면 되는 거겠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첫째 아이가 태어나던 그날, 그는 간호사에 의해 가족분만실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아내보다 그가 더 큰 소리로, 그것도 아주 꾸준하고 일정하게 계속 비명을 질러댔기 때문이었다. 아내에게 힘을 내라며, 이제 거의 다 됐다고 응원해주던 여의사는 자주 한숨을 내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아내가 비명을 지를 때마다 한 옥타브쯤 더 높은 음정으로 계속 비명을 질러댔다. 그건 그도 모르게 나오는 비명이었다. 키가 껑충하고 마른 그는, 제 몸 자체가 마치 커다란 울림통이 된 듯싶었다. 그리고 그 소리에 여의사의 응원 목소리와 아내의 비명소리는 모두 묻히고 말았다.

“이해하세요. 이 사람이 원래 공포영화도 혼자 못 보는 사람이라서….”

아내는 그 와중에도 어금니를 앙다문 채, 그의 변명을 대신 해주었다. 그의 아내는 그가 대기실로 쫓겨나간 지 채 오 분도 지나지 않아 건강한 첫째 아이를 순산했다.

삼십 분이 지나도록 분만실에선 아무런 기별이 오지 않았다. 대신 아내의 비명소리만 점점 더 높아져 갔다. 그럴수록 장의자 끝과 끝 사이를 오가는 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첫째 아이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다가 아무것도 모른 채 분만실에서 들려오는 제 엄마의 목소리에 맞춰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아아아아.”

첫째 아이는 제 엄마의 비명소리보다 반 박자 늦게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 그렇게 무표정한 얼굴로 소리를 따라하다가 결국은 찔끔찔끔 진짜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아이 옆에 앉았다. 그러곤 가만히 아이와 눈을 맞추고 있다가 분만실에서 아내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올 때 함께 비명을 질러주었다. 아아아아. 그는 애써 웃는 표정을 한 채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우느라 볼까지 빨개진 아이는, 그의 얼굴 표정을 보곤 이내 울음을 멈추었다. 아아아아. 아이는 그제야 분만실에서 들려오는 제 엄마의 목소리가 그냥 장난 같은 거였구나,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그는 웃으면서 계속 비명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아아아아. 우리는 너나없이 고통 속에서 태어난 존재들이란다. 아아아아. 그는 비명을 지르며 아이에게 속엣말을 했다. 고통 다음에야 비로소 가족의 이름을 부여받는 거야. 아아아아. 그래서 가족이란 단어는 들으면 눈물부터 나오는 거란다. 그는 계속 소리를 지르면서 되새겼다. 아아아아. 그는 정말이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래도 꾹 참고, 아이를 바라보면서 오랫동안 소리를 내질렀다. 아아아아.

이기호 소설가
#아내#분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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