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석달’ 청소년 톡톡]안전교육 반짝하다 흐지부지 변한게 없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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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대책이 수학여행 폐지? 어이 없어
정부도 어른도 믿을 수 없다는게 슬퍼요… 국회, 세월호 방지법 꼭 만들어주세요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 세월호 국정조사가 지지부진합니다. 다음 주가 되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석 달째입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최근 “세월호 희생자 추모비를 세우고 추모공원을 조성하며 팽목항을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참사가 발생한 4월 16일을 추모일로 지정하고, ‘국민안전기념관’ 건립도 추진한다고 합니다. ‘국가개조’라는 말도 수없이 들었습니다. 뭔가 분주하게 변화하고 있는 느낌이 드나요? 청소년들은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세월호 사고에서 가장 큰 희생을 치렀고,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청소년들. 그들이 혹시나 어른들을 향해 마음의 빗장을 꽉 걸어 잠근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조심스레 청소년들의 마음을 엿보았습니다. 중고교생에게 ‘세월호 참사…그 후’를 물어봤습니다. 》

“온 나라가 그렇게 들썩거렸는데…”

―처음엔 슬프고 화가 났다. 그러나 이제 별로 슬프지 않다. 내가 화를 내고 슬퍼해봤자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뭘 바꿀 수 있겠느냐고 생각한다. 중학교 때 학생회장 선거 때마다 화장실 시설 개선 공약을 내세웠지만 바뀐 적이 없었다. 어차피 한순간만 또 확 떠들고 지나갈 것이다. (고1)

―세월호 사건 이후에 소방관들이 학교에 와서 심폐소생술 훈련을 한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꽤 집중해서 훈련에 참여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던 것 같다. 그 후 별다른 훈련을 한 적도 없고 민방위 화재 훈련도 했지만 선생님이나 애들이나 대충 참여했다. 안전교육도 한순간일 뿐이었다. (고1)

―공부하느라 바빠서 다들 많이 이야기하지 않는다. 야자(야간자율학습) 때문에 몸이 지쳐 있는데, 굳이 힘든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우리더러 세월호 세대라고 하던데, 세월호 세대고 뭐고 일단 빨리 대학에 붙어서 이 공부만 하는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 (고2·여)

―세월호는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그러나 애들하고 그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는다. 공부가 급해서 그런 기분에 휩쓸리고 싶지 않다. (고2·여)

―처음 세월호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애들하고 욕도 많이 하고 선생님도 추모를 하자고 이야기하는 등 우울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다들 월드컵이나 시험 때문에 바빠서 다 잊어버린 것 같다. ‘잊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선생님도 애들도 잊어버린 것 같아서 실망스럽다. (고2·여)

―2학년에 올라와 성적이 떨어져서 우울하다. 단원고 학생들이 다시 학교에 돌아가는 것을 보고 솔직히 ‘다시 야자랑 시험이랑 하루 종일 공부만 하는 생활로 돌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고2·여)
“위기에 처했을 때, 도와줄 어른이 있을까요?”

―언니 오빠들이나 다른 분들이 희생당했다는 것도 슬프지만 나라가 나를 배신한 느낌이 들어서 더 슬펐다. 선장이나 선원들도 가만히 있으라고 했고 해경도 구해주지 않았다. 앞으로 혹시나 사고가 나서 내가 그렇게 돼도 아무도 날 구해주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중1·여)

―고민 있으면 거의 친구들에게 말한다. 좋아하는 애 이야기를 어른이나 선생님들한테 할 수 없다. 말해봤자 제대로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들은 연애하는 애들 보면 공부나 하라고 핀잔을 준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도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이 쓴 미안하다는 댓글들을 보면 ‘착한 척하려고 저러는 거야’라는 생각이 든다. (고1·여)

―중학교 때 반에서 따돌림당하던 애가 있었다. 선생님이 눈치채고 보호해 주려고는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걔는 선생님한테 일렀다고 더 심하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 뒤로 선생님들이 별 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번 세월호 사건에서도 몇몇 젊은 선생님들은 애들을 구하고 돌아가셨지만 그건 정말 특수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고1·여)

―친구들하고 ‘세월호 상황이면 어떻게 했을까’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난 당연히 뛰쳐나올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평소에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 친구도 “선생님이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뛰어나갈 거다”라고 말해서 놀랐다. (중3·여)

―만약 그 배에 있었더라면 나도 가만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선장이나 선생님이 가만히 있으라고 말해도, 창문을 깨고 도망갈 것 같다. (중3)

―수업 준비도 잘 해오지 않으면서 애들을 편애하는 선생님이 있다. 세월호 사건 이후에 그 선생님을 보면서 저 선생님은 그런 상황에서 아마 혼자 도망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선생님이 더 싫어졌다. (중3·여)

―어머니는 많이 우울해하셨고 나랑 분향소에 가기도 했다. 그래도 세월호는 세월호고 내 공부는 내 공부였다.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많이 하신다. 어른들은 말로는 교육이 잘못됐다고 하지만 어른들의 말과 행동이 너무 다른 모습이 보기 싫었다. (고2)

―꿈이 경찰이었다. 옷도 멋있고 사람들을 구해준다는 점도 멋있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해경은 사람들도 제대로 구해주지 않았고, 또 여러 가지 의혹만 남겼다. 그래서 경찰의 실상이 이런 것인가 싶어서 충격을 받았다. 이제는 별로 경찰이 되고 싶지 않다. (중3)

―대자보에 글을 쓰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정부 비판하는 글을 쓰는 것도 소용이 없다. 정부는 유가족 이야기도 들어주지 않는데 우리 이야기는 더더욱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정부가 우리를 배신했다고 생각한다. (중1·여)
“해경 해체? 창의력 없는 어른들!”

―해경이 잘못했으니까 해경 해체, 수학여행 가다가 사고 났으니까 수학여행 폐지 그리고 단원고를 외고로 만들어주면 끝. 애들한테 창의력 교육을 시키는 게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부터 창의력 교육을 받아야 할 것 같다. (고2·여)

―오빠가 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관피아, 해경 해체 하면서 행정고시를 폐지하겠다고 한다. 우리 오빠 같은 고시생뿐만 아니라 해경시험을 준비하려던 사람들도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정부는 자신들 잘못이면서 애꿎은 고시생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 같다. (고2·여)

―대통령이 국가개조를 이야기하면서 우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짜고 치는 고스톱 같았다. 윗사람은 울면서 아랫사람을 탓하고 또 아랫사람은 자기보다 더 아랫사람을 탓하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결국 희생자들만 모든 슬픔을 떠맡게 될 것이다. (중1·여)

―대통령이 외국에서는 외국어로 다른 나라 대통령하고 이야기해서 멋지고 외교를 잘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라 문제에 대해서는 미흡한 것 같다. 해경 해체 말고는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지도 못했다. (중2)

―예전에는 중고교생들이 나가서 시위하는 뉴스를 보면 오버한다고 생각했다. ‘쟤들이 뭘 알겠느냐’는 어른들 말씀이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제 생각이 달라졌다. 어차피 선장도 정부도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못했고 애들을 구하지도 못했다. 어른들 말에 고분고분하기보다는 내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는 게 훨씬 더 나은 것 같다. (고2)

―나는 원래부터 정부에 불만이 많았다. 입시제도도 매번 바뀌어서 혼란만 주고 이상한 국사 교과서도 만들고, 정부는 학생들을 배려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는 다른 애들도 정부나 사회에 불만을 가지기 시작한 것 같다. 예전에는 애들끼리 사회 문제를 잘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나라나 정부 욕하는 애들도 꽤 많이 생겼다. 아마 제대로 애들도 구해주지 않았고 해결책이라고 수학여행이나 폐지하려고 해서 그러는 것 같다. (고2)

―9시 뉴스를 보면서 세월호 소식은 모두 챙겨보았고 또 정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제대로 알았다. 정부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더 이상 피해자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1·여)
“이제라도 싸우지 말고, 꼭 바꿔주세요!”

―우리나라가 못사는 나라도 아닌데 목숨 걱정하면서 수학여행을 다녀야 되는가 싶다. 나는 안전하게 살고 싶다. 그리고 더 이상 공부만 하라고 몰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부만 하다가 죽을 수도 있는데 너무 아깝다. 우리에게 여유를 주는 교육제도를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고2·여)

―안전 문제를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사람들이 이 배를 탄다는 생각으로 법이랑 규칙을 고쳤으면 좋겠다. 또 ‘팔랑귀’ 때문에 여기저기 흔들리지 말고 꼼꼼하게 고쳐주었으면 좋겠다. (중1·여)

―나라가 세워진 지 이제 60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계속 발전해 나갈 거라 생각한다. 물론 그래도 이런 사건이 또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어서 불안하다. 하지만 그래도 정부를 믿을 것이다. 정부 말고는 우리가 믿을 곳이 없다. (중2)

―국회에서 세월호 방지법을 만든다면 국회의원들이 무조건 반대해서 폐지하지 말고 함께 힘을 합쳤으면 좋겠다. 또 신속하게 법을 만들어서 우리도 이렇게 빨리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중2)

―4월 16일을 기념일로 만들기로 한 만큼 매년 진심으로 세월호 사건을 추모해 주었으면 좋겠다. 많이 잊혀졌다,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야 한다는 기사도 읽었다. 그러나 아직 안산에 분향소도 크게 있고 슬퍼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좀 더 추모를 했으면 좋겠다. (중2)

오피니언팀 종합·박승민 인턴기자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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