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고난의 행군때 무차별 벌목… 사람 헐벗으니 산도 헐벗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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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 그루, 푸른 한반도]
탈북자들이 말하는 고향의 민둥산

탈북자 송예숙(가명) 씨가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동아일보사 앞에 설치된 ‘나무 한 그루, 푸른 한반도’ 캠페인 조형물을 향해 두 손 모아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다. 그는 “북한의 헐벗은 숲에 나무가 울창해야 녹색 통일도 앞당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탈북자 송예숙(가명) 씨가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동아일보사 앞에 설치된 ‘나무 한 그루, 푸른 한반도’ 캠페인 조형물을 향해 두 손 모아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다. 그는 “북한의 헐벗은 숲에 나무가 울창해야 녹색 통일도 앞당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사람이 헐벗으니 산도 헐벗더라고요….”
탈북자 송예숙(가명·51·여) 씨는 고향인 함경북도 무산에 살았을 당시 민둥산을 보면 ‘나라가 망해가고 있다’는 슬픔에 빠지곤 했다. 송 씨가 2004년 한국에 오기 전까지 살았던 이곳은 두만강을 따라 백리 길이 온통 산이지만 마을 20리(약 7.8km) 반경에선 나무를 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부터 산에 마구잡이로 옥수수와 콩밭을 일구고 나무를 죄다 땔감으로 가져다 쓰면서 마을 인근 산부터 황폐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

○ 산(山)은 유일한 밥줄


송 씨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숲이 하루가 다르게 맨살을 드러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슬픔은 사치였다. 배급이 끊긴 상황에서 산은 유일한 ‘밥줄’이었다. 주민들은 수풀이 무성한 곳에 불을 지르곤 옥수수와 콩을 심었다. 너도나도 나물을 캐고 나무껍데기 벗겼다. 벌목도 당연시됐다. 송 씨는 “북한에는 ‘가난이 들면 열두 가난이 든다’는 속담이 있다. 가난해지기 시작하면 부족한 게 점점 더 많아진다는 뜻이다. 당시 이웃들끼리 ‘이젠 열두 가난을 넘어 땔감 가난까지 들었다’며 한탄하곤 했다”고 전했다.

북한에도 산을 지키는 ‘산림보호원’이 있긴 하다. 송 씨는 1970년대 후반 산불을 끄다가 타죽어 당시 김일성 주석에게 영웅 칭호를 수여받았던 한 산림보호원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 이후의 산림보호원들은 숲에 불을 지르고 화전을 일궈도 옥수수나 콩 등 작물을 뇌물로 가져다주면 웬만하면 눈감아줬다. 송 씨는 “굶어죽는데 훈장이 무슨 소용인가. (훈장을) 시장에서 팔기도 하는데 아무도 안 사간다”며 “이젠 산불이 나도 끌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 무용지물인 ‘식수절’

북한에는 우리나라 ‘식목일(4월 5일)’처럼 나무를 심는 ‘식수절(3월 2일)’이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올해 식수절에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나무 심는 사진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북한 주민들은 이날 각 도마다 설치된 양묘장에서 묘목을 가져와 곳곳에 나무를 심었다. 이에 대해 탈북자들은 “의미 없는 행사”라고 입을 모았다. 평안남도 평성 출신 유윤혜(가명·42·여) 씨는 “묘목을 심을 때 땅을 적절히 파서 깊이를 맞추고 물도 잘 줘야 하는데 사람들이 강제로 동원돼 대충 심어 금방 죽는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은 북한의 숲이 황폐해지면서 환경도 점점 악화되고 있다고 증언한다. 유 씨는 “2000년대 초 황해도에 갔는데 나무가 워낙 없어 목이 칼칼할 정도로 공기가 탁했다”며 “함경북도 나진 일대 마을에선 나무뿌리까지 죄다 캐먹어 더이상 동네에 나무가 자라지 않았다”고 했다.

북한에도 종종 조경용 가로수가 있지만 ‘1호 행사’(최고지도자가 등장하는 행사)에 방해가 된다며 그나마도 잘라내곤 했다고 한다. 탈북자 정나련(가명·43·여) 씨의 고향 함경북도 청진은 온천이 유명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부자를 위한 전용별장이 있는데 ‘1980년대 1호 행사 호위에 방해가 된다’며 길가의 가로수를 모두 잘라냈다.

○ ‘나무 심기’는 옷을 다시 입히는 과정

1020세대 탈북청소년 20여 명은 올해 식목일에 경기 하남시 천현동 야산에 벚꽃나무와 감나무 각 20그루 등을 심었다. 서울 강남경찰서 보안과가 탈북 청소년에게 ‘대한민국에 뿌리를 굳게 내려 통일시대의 주역이 돼 달라’는 의미로 마련한 행사였다.

탈북청소년들은 동아일보 취재팀에 “통일시대에 대비해 북한에 많은 나무를 심어 달라”고 당부했다. 남준민(가명·25) 씨는 “고향인 함경북도 은성에선 ‘산과 도시는 나라의 얼굴’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고향 산이 너무 벌거벗어 부끄러웠다”며 “북한에 나무가 많아지면 고향 사람들도 벗겨진 옷을 다시 입은 기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천지상(가명·21) 씨는 “한국에 오기 전에 만났던 중국 사람들이 ‘북한에 산은 많은데 나무가 하나도 없다’고 말할 때마다 너무 속상했다”며 “통일이 되면 북한도 남한처럼 자동차와 공장이 많아질 텐데 환경오염에 대비해 북녘 산하를 푸르게 가꿔달라”고 부탁했다.

○ ‘나무 한 그루, 푸른 한반도’ 캠페인에 참여하려면?

ARS 060-707-1700으로 전화(통화당 3000원 기부)하거나 계좌 이체(우리은행 1005-202-451214·예금주 기후변화센터 아시아녹화기구)를 하면 된다. 문의 아시아녹화기구 홈페이지(아시아녹화기구.org)

조동주 djc@donga.com·임현석·홍정수 기자
#북한#민둥산#탈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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