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 OT 톡톡] 밤새워 술마신 기억뿐 vs 선배-동기 사귈 좋은 기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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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어라 마셔라” 밤새워 술마신 기억뿐… 놀자판 OT, 돈들여 이틀씩 해야 하나
낯선 학기초, 선배-동기 사귈 좋은 기회…학교생활-공부 정보 제공의 場 됐으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 지난달 17일 부산외국어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이 열리던 경북 경주시 마우나오션리조트가 붕괴되면서 꽃다운 젊은 목숨들이 졌습니다. 부상자들은 아직도 고통받고 있습니다. 신학기를 맞은 일부 대학에서는 신입생 OT를 보류하거나 취소했습니다. 매년 이맘때 열리는 신입생 OT에 대해 대학 적응을 위한 필수적인 행사라는 의견도 있지만 ‘술만 먹고 온다’는 비판적인 의견들도 있습니다. 대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남영희(서강대 영미어문학과 4학년), 목지선 인턴기자(성신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가 들어봤습니다. <오피니언팀 종합> 》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난다

―학교에서 미리 설명회 형식으로 OT를 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걸 예비 OT라고 한다고 했다. 이와 별도로 학생회가 주도적으로 1박 2일로 하는 OT를 갔다. 과별로 모임도 갖고, 놀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밤이 되자 술판으로 변했다. 결국 남는 것은 술밖에 없었다. (23)

―경기 모 대학에 다니는 친구는 선배들이 아예 작정하고 신입생들을 취하게 하려고 밥도 안 먹이고 술을 먹였다고 했다. 서울에서 손꼽히는 모 대학에 다니는 친구도 선배들의 전화번호를 알려면 그 선배가 정해준 만큼 술을 먹어야 한단다. (20·여)

―OT 때 술 먹으라고 대놓고 강요하는 선배들은 없다. 하지만 술 게임(‘왕’이 시키는 명령을 따라야 하는 ‘왕 게임’, 소주 뚜껑 치기 게임 등)을 하다 보면 마시게 된다. 게임에 지면 벌칙으로 술을 마셔야 하고, 안 마시면 눈치를 준다. (20·여)

―술 안 마셔도 된다던 단과대 학생회장 오빠가 ‘마셔라’ ‘마셔라’ 노래를 부르더라. 제한시간 내에 안 마시면 한 잔 더 준다. 찍히면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 억지로 술을 마신다. (20·여)

―OT 때 술 게임에 참여 안 하는 건 앞으로 혼자 놀겠다는 뜻이다. (20)

―‘동기주’라는 게 있다. 동기들끼리 다 마셔야 하는 술이다. 신입생들이 원을 그려서 쪼르르 앉는다. 라면 다섯 개 끓이고 남을 만한 크기의 냄비에, 맥주랑 소주를 붓는다. 그럼 한 3L 정도 되는데, 제일 마지막 타자인 신입생 과대표까지 포함해서 냄비에 있는 술을 전부 다 마셔야 한다. 우리 OT 때 과대표 신입생은 냄비의 3분의 2가 넘는 술을 안주 없이 다 마셔야 했다. (21)

―OT에서 선배들과 함께 15명이 막차 끊기는 시간까지 술을 마셨다. 소주 20병이랑 맥주 플라스틱 큰 통에 든 걸 마셨는데, 처음 술 마시는 거라 손을 부들부들 떠는 애들이 많았다. 그런데 못 마신다고 하는 애들이 없었다. 지성의 전당이란 대학의 강의실 뒤쪽에서, 책상을 밀어놓고 앉아 마셨는데, ‘내가 여기 왜 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여)

―2박 3일 OT를 위해 8만5000원 냈다. 싸구려 숙박시설에 묵게 될 우리가 8만5000원이나 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OT에서 하는 일은 술 마시는 것밖에 없으니, 결국 남은 돈은 다 술값에 쓰이는 거다. (20·여)

―선배들이 “술 못 마시는 사람 손들어” 하고는 “너네는 앞으로 우리가 미성년자 대하듯 해도 불만 없지?” 했다. 술 마시는 사람들에겐 맥주, 소주, 콜라를 한 통에 넣어 한 명씩 마시게 했다. 그동안 옆에선 신입생 동기들이 ‘동기사랑’을 외쳐준다. (22·여)

―술뿐 아니라 성적 희롱이나 모욕도 있다. ‘옷 이어달리기 게임’이라는 걸 했다. 옷을 최대한 많이 벗어서 길게 엮는 게임이다. 그런데 남자 선배들이 여자 속옷(브래지어)이 길고, 잇기가 편하니 속옷을 벗어서 옷을 이으라고 했다. 결국 그렇게 했다. (22·여)

―술을 통해 친해지는 문화 자체가 야만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 모든 곳에서 없어져야 할 인습이고, 대학에선 더더욱 그렇다. OT 때 술을 너무 마셔서 죽는 학생들은 그런 문화의 희생자다. (20)

―선후배 간 서열이 엄격한 한 학과에선, 선배들이 돌아다니면서 술 한 잔씩을 권한다. 선배 수가 20명이라고 치면 결국 소주 20잔을 마시게 된다. (22)

왜 이런 행사를 하는지 목적을 알 수 없다

―OT는 목적을 알 수 없는 모임이다. 친목도모라고 하지만 대학생활에 필요한 수강신청 방법 등을 알려주기만 하면 되는데 굳이 1박 2일로 할 이유가 있나. (21)

―굳이 1박 2일 OT가 아니더라도 학교에서 하는 대학생활 안내 교육도 실익이 없긴 마찬가지다. 오전 9시 반부터 낮 12시까지 학교생활에 대한 설명을 하는데 수강신청 방법을 알려줬고, 교양과목은 꼭 들으라는 얘기를 했다. 20분의 성교육이 포함돼 있었다. 설명은 엄청 많았는데, 쓸모가 없었다. 수강신청 방법도 학교 홈페이지에 올린 설명문을 읽어 보면 다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주변 애들은 다 잤다. (20·여)

―OT 참가비가 5만 얼마인데, 불참하면 8만 원을 내라고 한다. 좋은 내용물을 준비하면 이렇게 비용으로 강제할 필요가 없다. 신입생들에게 정말 필요한 내용으로 이뤄진 OT를 만들면, 다들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21·여)

―우리나라 대학생은 고등학교 때부터 누가 떠먹여 준 것만 먹어 왔다. 대학에서 뭘 해야 할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공부에 대한 열정도 없다. 그래서 대학에선 노는 데만 열중한다. 특히 OT는 대학생활의 첫날로서 가장 의미 있는 날이다. 그런데 첫날부터 밤잠 안 재우고 술 마시고 하는 것만 배우니, 대학생들은 이후로도 학교를 놀러 오는 곳으로만 보게 된다. (21)

―수동적인 대학 문화의 반영이 OT다. 요새 누가 대학에 배우러 가나. 대학 이름, 졸업장이 필요해서 간다. 그러다 보니 대학이 당연히 가야 하는 절차처럼 여겨지고, 대학 입학부터 수동적이고 비자발적이다. 왜 와야 하는지도 모르고 온 대학에서, 선배들 말에 따라 참가한 OT 역시 술로 시간을 낭비하는 자리가 될 수밖에 없다. (26·여)

―외국 대학의 OT는 한국과 많이 다르다. 개강 전에 4일간의 예비교육 주간(Orientation Week)이 있다. 이틀은 학과 수업에 대한 교육을, 나머지 이틀은 동아리 소개를 받는다. 아카데믹 에세이를 쓰는 법, 논문 찾는 법, 도서관 사용법도 알려준다. 전문 상담원이 상시 대기하면서, 교환 학생을 가기 위해 수강해야 할 과목이나 로스쿨에 입학하기 위한 조건 같은 구체적 정보를 알려준다. 술을 마시거나 노는 것은 없다. (19·여·호주 멜버른대 재학)

―이건 약간 다른 이야기이지만, 이번 마우나오션리조트 참사 다음 날, 인터넷 게시판에 ‘매몰된 사람 수만큼 부산외대 추가 합격이 되는 거냐’는 글이 올라와서 비판을 받았다. 한국 교육이 만든 비극적인 현실을 보여준다. 지나친 입시경쟁 때문에, 대한민국 수험생들은 사람 생명을 걱정하기보다 자신의 대학 합격을 더 중시하게 됐다. (22·여)

그래도 OT는 대학 문화 익힐 기회

―OT에 참석하지 않을 경우, 얻을 수 없는 정보가 많다. 수강신청 방법, 교수에 대한 정보 등이다. 또 거기서 알게 되는 선배가 있을 때, 새내기를 더 잘 챙겨준다. 참석하지 않은 후배를 고깝게 여기는 선배도 있다. (26·여)

―재수해서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겉돌다 보니 학과에서 친구를 만들지 못했다. 2학기에는 바로 휴학했고, 이어 군대에 들어갔다. 제대 후 2년 만에 학교에 돌아가니 아는 사람도 없고 어색했다. OT 등을 통해 선배나 동기들과 친해졌었더라면…. 학교 적응을 좀 더 쉽게 했을 것 같다. (26)

―미국 대학을 다니다가 늦깎이로 올해 한국 대학 신입생으로 들어왔다. 밤새워 술을 먹는 OT 문화는 이상하다. 그 점을 빼면 신입생 환영 행사 자체는 취지가 좋다고 본다. 인맥이 사회 활동에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선배, 동기들과 눈도장을 찍은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학교에 대한 자부심도 가질 수 있었다. (24)

―고등학교 내내 공부와 진학에 대한 압박이 컸다. 그래서 처음 맞는 대학생활에 많이 설레고 신입생 환영을 위한 행사가 많다는 것이 좋다. (20)

―OT 문화 자체는 좋다. 고등학생 때와 달리, 동기들과 모일 시간이 많지 않은 대학에서, 여럿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다. (22)

―OT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부모님이 되레 OT에 꼭 가라고 권하신다.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 자체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니 놓치지 말라고 하셨다. 물론 OT를 안 간다고 해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OT는 여러 선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21·여)

―체육대의 경우 OT와 관련해 사건이 많이 터지고, 언론에도 많이 보도됐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옛날처럼 군대식으로 기합을 주거나 하는 분위기는 더이상 없다. 오히려 술자리에서 문제를 안 만들기 위해 선배들이 주의한다.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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