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꺼! 반칙운전]‘학원車반칙운전 참변’ 부모들의 분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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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5개월전 같은 아픔… 뉴스 보다가 몸서리쳤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소식을 들어야 하는 겁니까?”

조영일 씨(38)는 경남 창원에서 7세 어린이가 태권도학원 통학차량에 옷이 끼여 끌려가다 숨졌다는 뉴스를 듣는 순간 수저를 들고 있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숨진 강준기(가명·7) 군 가족과는 일면식도 없지만 가슴에 또 한번 큰 구멍이 나는 듯했다.

다섯 달 전의 기억이 온몸을 휘감았다. “여보! 애가 학교버스에 치였어! 병원인데 숨을 안 쉬어!” 지난해 9월 3일. 전화기 속의 아내는 울부짖고 있었다. 전화기를 내팽개치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응급실 침대 위에 아들이 누워 있었다.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아들은 초등학교 운동장을 걸어가다 스쿨버스에 치였다. 인솔 교사도 없었다.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인데…. 멍하게 천장만 바라볼 때 의사와 간호사가 들어왔다. 아들 얼굴 위로 하얀 시트를 덮었다. 그렇게 조 씨 삶의 전부였던 외동아들은 떠나갔다.

“자식을 통학버스에 잃은 부모의 심정은 상상조차 못할 겁니다. 아내는 더이상 차를 타지 못하고, 외출도 거의 안 합니다. 노란색 차를 볼 자신이 없다고 합니다. 손자를 잃은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해 계시고요.”

강 군의 죽음이 이 땅 모든 부모의 가슴을 때리고 있다. 유치원생 자녀를 둔 주부 서모 씨(37)는 “내 자식을 잃은 듯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고 했다. 세 자녀를 둔 주부 신모 씨(48)도 “얼마 전에는 성폭행이 난리치더니 이제는 통학차량이냐”며 “학부모들은 이럴 때마다 불안에 떨면서 아이들에게 차 조심 하란 소리밖에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 공간도 들끓고 있다.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 자녀들이 사고를 당해야 법을 바꿀 텐가”, “제발 학원차에 사고 당하는 아이들 소식은 더이상 듣고 싶지 않다” 등 분노와 슬픔을 담은 댓글과 트윗들이 28일 온종일 올라왔다.
▼ 똑같은 사고 계속 되풀이되는데… 똑같은 대책만 재탕 삼탕 ▼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어린이 통학 교통사고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감지한 듯 정부와 교육당국도 서둘러 대책을 내놓고 있다. 경남도교육청은 사고 다음 날 “60여 명으로 특별점검반을 꾸려 3월 한 달간 집중 점검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경남지방경찰청은 “통학차량 운전사 교육을 강화하고 특별단속을 실시하겠다”고 28일 발표했다.

그러나 마치 오래전 신문의 스크랩을 다시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04년 4월 경남 산청군에서 6세 한모 양이 통학차량에서 내렸다. 인솔교사는 없었다. 혼자 내린 한 양은 차 앞으로 걸어갔고 운전사는 이를 모른 채 가속페달을 밟아 한 양을 치어 숨지게 했다.

그때도 경남도교육청은 “인솔교사를 반드시 차량에 탑승시키도록 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우리 사회는 늘 그랬다. 사고가 터지면 관련 기관이 급조된 대책을 발표했다가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됐다.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잊혀져 갔다. 그리고 또 비슷한 사고가 터지고, 다시 비슷한 내용의 사고 대책을 발표하곤 했다.

“어린이 승하차 때 운전사가 안전을 확인하도록 하겠다”는 대책은 행정안전부가 2001년 발표한 뒤 매년 나왔다. “인솔교사 탑승을 의무화하겠다”는 대책도 건설교통부가 2001년 발표했고 경남도교육청, 보건복지부 등이 돌아가면서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재탕했다.

경찰의 ‘집중 단속’도 단골 대책이다. 올 1월 경남 통영에서 초등생이 통학차량 문에 옷이 끼인 채 10m 이상 끌려가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경남경찰청은 “2월 한 달 동안 통학차량 운전사의 안전의무 위반을 집중 단속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 집중 단속 기간에 인근인 창원에서 강 군이 숨졌다. 정부가 내놓은 또 하나의 대책은 ‘광각 후사경 장착 의무화’였다. 그러나 동아일보 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강 군을 숨지게 한 태권도 학원 차량에는 광각 후사경이 없었다. 광각 후사경이 없으면 내리던 아이들이 넘어지거나 옷이 끼여 있더라도 키가 작기 때문에 운전사가 운전석에서 알아차리기 어렵다.

초등생이 통학버스 문틈에 옷이 끼인 채 끌려가다 숨지는 사고는 연례행사처럼 일어난다. 지난해 11월 21일에도 충북 청주에서 아홉 살 곽모 양이 통학차량 문에 끼인 채 10m 넘게 끌려가다 숨졌다. 2010년 1월 11일 광주 북구 일곡동, 2007년 4월 3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도 같은 사고로 어린이들이 죽었다.

사고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저지르는 ‘반칙’도 판박이처럼 똑같다. ①인솔교사나 운전사가 차에서 내리지 않고 ②어린이가 혼자 차 문을 열고 내리다가 ③문을 닫을 때 코트 옷자락이나 태권도복 등이 문에 끼였고 ④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운전사가 차를 출발시키자 ⑤끌려가던 어린이가 통학차량 바퀴에 깔리거나 주위의 다른 차량에 부딪혔다.

전문가들은 통학차량 운전사와 학교 및 학원의 안전법규 위반 행위에 대해 특단의 의지를 갖고 엄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국 14만여 대의 통학차량을 일일이 따라다니며 감시할 수 없다면 ‘일벌백계’ 효과로 다스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천수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법 개정을 통해 사고 낸 통학차량 운전사와 관리자를 예외 없이 형사처벌하고 징역을 살게 해야 반복되는 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어린이가 숨져도 가해 운전사가 보험에 들었고 피해자 가족과 합의한다면 대부분 벌금형으로 끝나는 게 현실이다. 부주의한 운전으로 어린이가 숨졌는데 가해 운전사는 멀쩡히 돌아다니는 상황을 부모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 김영례 서울녹색어머니회 회장은 “애초 법을 위반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무서운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택·장선희 기자 nabi@donga.com
▼ 전직 학원車 운전사 참회록 ▼

40대 중반의 대리운전 기사 김모 씨가 28일자 동아일보의 ‘학원차 반칙운전’ 기사를 보고 다시는 자신 같은 학원 차량 운전사가 나오지 않길 바란다며 인터뷰를 자청했습니다. 이 ‘참회록’은 김 씨 인터뷰를 바탕으로 기자가 작성했습니다.

2005년 다니던 회사가 파산해 15인승 승합차를 사서 어린이집 통학차량 운전을 시작했습니다. 오전 8시부터 12시간 동안 아이들을 태우고 다녔지만 받은 돈은 한 달 160만 원. 기름값을 빼면 100만 원 남짓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결국 밤에 대리운전 기사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3, 4시까지 열심히 일했습니다. 항상 피곤했습니다. 틈만 나면 어린이집 차에서 눈 붙이기 바빴고 멍한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았죠. 아이들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습니다. 서둘러 일을 끝내려다보니 인솔 교사가 타지 않았는데 출발한 적도 있습니다. 다시 돌아왔을 때 황당한 듯 저를 쳐다보던 어린이집 선생님의 눈빛에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일을 하면서 ‘내 아이들도 어린이집 차를 타고 다닐 텐데…’란 생각에 더이상 무리하게 통학차량 운전을 할 수 없었습니다. 5개월 만에 그만뒀지만 그동안 큰 사고가 없었던 것이 다행이란 생각뿐입니다.

지금도 새벽 시간 신논현역에 가면 학원 이름이 붙은 승합차들이 쉴 새 없이 대리운전 기사들을 실어 나릅니다. 그 차 운전사들은 해가 뜨면 다시 어린 생명을 싣고 달릴 것입니다. 부모들이, 아이들이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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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칙운전#학교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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