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닷컴 신간소개]비탈진 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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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30일 17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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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 씨가 1973년 처음 발표한 중편소설 〈비탈진 음지〉를 장편소설로 개작해 다시 출간했다.

◇비탈진 음지 / 조정래 / 해냄 / 298쪽 / 12800원
◇비탈진 음지 / 조정래 / 해냄 / 298쪽 / 12800원
1970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해 40년이 넘는 작가생활 동안 한국 근현대사를 그린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32권의 대하소설을 집필한 작가 조정래. 그가 1970년대 국민소득 150달러였던 그 시대의 아픈 이야기를 작가로서 외면할 수 없었다며 국민소득 2만 달러인 이즈음에 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지난 5월에는 1974년에 발표했던 중편 〈황토〉 역시 장편으로 펴낸바 있다.

작가는 이전에 쓴 소설을 다시 새로 펴내는 이유에 대해 “당시 문예지 등에 중편들을 발표했는데, 30대인 나에게 지면을 많이 허락해주지 않았다. ‘이건 장편거리인데’ 하면서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지금에 와서라도 장편으로 낼 수 있어 한을 푼 것 같다.” 고 부득이하게 중편을 쓸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말했다.

200여 매에 이르는 원고를 새롭게 집필하고 문장을 하나하나 다듬은 작가는, 40여 전 우리 사회가 안고 있었던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을 새삼 느끼며 소설가로서 사회의 통증을 외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소설은 1970년대 급속도로 진행된 산업화와 뜻하지 않게 닥친 불행으로 인해 고향을 버리고 두 자녀와 데리고 서울로 야반도주해 칼갈이로 생계를 꾸리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웃 집 소를 주인 몰래 팔아 그 돈을 가지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 복천은 막노동판, 지게꾼, 땅콩장사 등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보지만 번번이 벽에 부딪힌다.

‘장마철 노래기 냄새’나 ‘삼복염천의 시궁창 냄새’처럼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인정머리라고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냉랭하기 그지없는 서울에서 하는 일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근근이 버텨보지만, 가난한 삶은 벗어날 수가 없다. 높은 담을 쌓아올린 부잣집들을 지날 때면 치오르는 알 수 없는 분노는 자신의 처량한 처지를 더욱 극명하게 알려줄 뿐이다.

작가는 복천 영감의 삶뿐 아니라 그가 서울에 올라와 처음 만난 떡장수 아줌마, 같은 고향의 식모 아가씨, 복권 파는 소녀 인숙이 그리고 그에게 시련을 안긴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갑작스럽게 닥친 사회변화로 인해 빈민으로 전락했지만 꿋꿋이 살아가는 40여 년 전 우리 부모 세대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상경해 처음으로 고향의 정을 느끼게 한 서울역 떡장수 아줌마는 연탄가스 중독으로 일가족이 몰사하고, 고향 처녀 식모 아가씨는 주인집 삼촌에게 몹쓸 일을 당한 채 쫓겨나 병든 몸으로 술집을 전전하고 있었다.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한 시대를 그려낸 작가는, 인정 없는 세상과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바쁜 부자에 대한 비판과 함께 가난한 사람들의 처절한 삶을 거친 사투리 속에 녹여내며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묻는다.

“죄는 진대로 가고, 덕은 딱은대로 가는 것잉께 인심 일고 살덜 말고, 척지고도 살지 말라고 안 혔읍디여. 근디 예나 이제나 부자덜언 워째서 그 쉬운 말도 못 알아듣는가 몰라. 허기사 더 말허먼 뭘혀. 바다는 메꿔도 사람 욕심은 못 메꾼다고 혔응께. 다 천년만년 살지 알고 그놈에 욕심 채우니라고 말싸심헌 것이 탈이제. 아이고, 그 징헌 놈에 욕심!”

“허기넌 사람 사는 한평생이 이러나저러나 빙신은 빙신인디. 그려도 배부른 빙신이 낫고 권세 있는 빙신이 난 법잉께. 고만 울어라, 고만. 이 애비넌 암시랑 안혀, 이러나저러나 다 빙신으로 한평생 살다 가는 것잉께로.”

소설은 분명히 1970년대 우리 사회의 한 면을 그리고 있지만, 결코 그렇게 읽히지 않는다. 작가가 서문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는 ‘무작정 상경 1세대’들의 모습은 2011년 현재 인사동 뒷골목에도, 압구정동 뒷골목에도, 구로동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현재 진행형이다.

◇비탈진 음지 / 조정래 / 해냄 / 298쪽 / 12800원

강미례 동아닷컴 기자 novemb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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