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식목일 산불]불탄 낙산사 현장… 강풍 탄 火魔 덮쳐 2시간만에 폐허로

입력 2005-04-05 18:56업데이트 2009-10-09 04:19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불길 휩싸인 동종 종각
5일 오후 강원 양양군 낙산사의 동종 종각이 불타고 있다. 이 동종은 조선 예종이 그의 아버지 세조를 위해 1469년 주조토록 한 것으로 보물 제479호이다. 사진 제공 강원일보
5일 오후 5시 산불이 옮겨 붙은 지 두 시간 만에 강원 양양군의 천년고찰 낙산사는 옛 모습은 간데없이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이날 오후 10시가 넘어서도 곳곳에 남은 잔불은 바람에 다시 살아났다 죽었다를 반복했다.

▽긴박했던 순간=소방 헬기들은 이날 오후 늦게까지 잔불을 끄기 위해 낙산사 주요 건물 위로 물을 뿌렸다.

그러나 사찰 내 원통보전(강원도유형문화재 제35호) 등 주요 건물들은 이미 불에 타 무너져 내린 뒤였다.

스님들과 직원들도 화마가 덮치지 않은 건물 앞에서 양동이로 물을 나르며 건물과 주변 마당을 적시느라 여념이 없었다.

스님들은 “여기요 여기” “왜 빨리 소방차가 이쪽으로 안 오는지 모르겠다”며 사찰 곳곳에서 긴박한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했다.


위성에서 본 산불연기
5일 오후 3시 2분 미국 기상위성 노아(NOAA)가 촬영한 한반도 위성사진. 검고 붉은 점들이 산불 발생 지점이다. 강원 양양과 고성을 비롯해 북한의 함경남도 안변, 강원 통천 등에서도 산불이 발생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곳곳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 사진 제공 과학기술부 한중대기과학연구센터


이날 출동한 소방차는 10t들이 물탱크차 2대와 살수차 9대 등 모두 11대. 50여 t의 물을 실어 날랐지만 불길을 채 잡기도 전에 동이 났다. 3∼5t들이 살수차는 오후 10시가 넘게까지 산 아래를 2, 3차례 왕복하며 물을 보충했다.

사찰 부주지 정혜(正慧·48) 스님은 “소방관들은 불도 다 끄지 않고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며 뿌린 물로 질퍽해진 사찰 진흙마당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도움을 구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시커멓게 탄 수풀 위로 빨간 불씨들이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에 날려 또 다른 초목에 계속 옮겨 붙었다.

산불이 낙산사를 덮친 것은 오후 3시경. 초속 15m가 넘는 강풍이 몰아치기 시작하며 오전에 진화됐다고 여겨졌던 인근의 산불이 다시 살아나 옮겨 왔다.

순식간에 번진 불은 홍예문을 시작으로 심검당, 원통보전 등을 태우며 사찰 내 건물의 3분의 2를 모두 태워 버렸다. 이 과정에서 속초소방서 소속 소방차도 전소됐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6시 50분경 불씨가 사찰 입구 일주문 쪽으로 날아와 불이 번지기 시작했다. 이 불은 새벽부터 대비하고 있던 스님 15명과 직원 30여 명, 소방대원들에 의해 1시간 만에 일단 진화됐다.

불길을 잡았다고 판단한 소방 헬기와 진화 인력은 이날 정오경 모두 철수했다.

▽보물 구하기 대작전=이날 오후 8시경 스님들은 사찰 내 지하창고에 임시보관 중이던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1362호)과 후불탱화, 신중탱화 등 가로 세로 3m 크기의 대형 탱화 2점을 사찰 밖 모 처로 옮겼다.

이미 오전 8시 원통보전에 있던 보살상 등을 사찰 내 몇 안 되는 콘크리트 건물인 의상교육관 지하로 옮겼지만 오후 늦게까지 잔불이 완전 진화되지 않자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옮긴 것.

특히 이 절에 있는 3가지 보물 중 하나인 높이 1.2m에 종이로 만들어 금박을 입힌 희귀 불상인 보살상을 옮기는 작업은 신속하고 긴밀하게 이뤄져 마치 공수작전을 방불케 했다.

이들은 보살상에 고깔 모양의 대형 가리개를 만들어 씌운 채 고무매트 등을 깐 화물차에 실어 날랐다.

절을 13년 동안 관리해 온 김득중(47) 씨는 “동종(보물 497호)과 7층석탑(보물 499호)을 이처럼 옮기지 못 한 게 평생 한으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양양=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낙산사는 어떤 사찰▼

5일 화마에 휩싸여 원통보전(圓通寶殿)을 비롯해 고향당 무설전 요사채 범종각 등이 불탄 낙산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로 671년 신라의 고승 의상(義湘·625∼702) 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현재의 절은 6·25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53년 다시 지은 것. 인천 강화군 보문사, 경남 남해군 보리암과 함께 관세음보살을 사찰의 주된 전각에 모신 3대 관음기도도량의 하나다.

국가지정문화재로는 조선 세조 때 세운 7층 석탑(보물 499호), 예종이 아버지 세조를 기려 낙산사에 보시한 동종(銅鐘·보물 479호), 원통보전 내부에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건칠관음보살좌상(乾漆觀音菩薩坐像·보물 1362호) 등이 있다. 또 낙산사 원통보전과 홍예문, 원장(垣墻), 사리탑, 홍련암 등이 모두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동종의 경우 종각(鐘閣)은 소실됐고 종 또한 불에 많이 그슬렸으나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문화재청은 전문가들을 긴급 투입해 상태 파악 및 보존처리 작업을 할 예정이다. 석조 전문가들을 파견해 7층 석탑 역시 조사하기로 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낙산사 피해 규모는 30억 원 정도로 추정되나 전액 국비 지원해 복구를 도울 계획”이라며 “설계도면 등이 남아 있어 사찰 복원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조계종은 5일 오후 낙산사 피해복구지원을 위한 긴급비상대책회의를 열고 피해 상황 확인을 위해 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 지현 스님 등을 낙산사로 급파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최신기사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