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컬렉터]<2>앤티크 의자 수집가 주현리씨

  • 입력 2004년 5월 21일 19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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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수집가 주현리씨가 자신이 수집해 온 로코코풍의 앤티크 의자들이 가득한 거실에 앉았다. 주씨는 “의자의 우아한 자태와 섬세한 장식, 유연한 다리 곡선이 주는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거기에 앉았던 사람들의 삶의 흔적까지 생각하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고 말했다.-김미옥기자
의자 수집가 주현리씨가 자신이 수집해 온 로코코풍의 앤티크 의자들이 가득한 거실에 앉았다. 주씨는 “의자의 우아한 자태와 섬세한 장식, 유연한 다리 곡선이 주는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거기에 앉았던 사람들의 삶의 흔적까지 생각하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고 말했다.-김미옥기자
의자 수집가 주현리씨(52)가 살고 있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 아파트에 들어섰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입구에서부터 거실, 안방, 건넌방까지 의자가 가득 있었기 때문이다. 목욕탕과 침실을 빼고는 부엌까지 집안 구석구석 빼곡히 들어찬 의자 때문에 돌아다니려면 요리조리 피해 다녀야 했다. 주씨는 “얼마 전 ‘의자’를 주제로 그림을 그린 화가와 함께 수집품을 전시하느라 꺼내 놓는 바람에 발 디딜 틈이 없다”고 말했다. 모두 80여점이라지만, 아무리 작더라도 제법 공간을 차지하기 마련인 의자를 이렇게 모아놓을 수 있다니, 새삼 컬렉터 특유의 광기(狂氣)가 느껴졌다.

그녀의 컬렉션 경력은 17년. 자세히 보니 화려하면서도 절제되어 있는 로코코 디자인풍의 앤티크 의자들에 집중되어 있다.

“유럽 여행길에 우연히 앤티크숍에 들렀다가 아름다운 의자 하나를 발견해 그걸 구입하면서부터 시작됐어요. 천에 자수를 새긴 것이었는데 갖다 놓고 보니까 새록새록 정이 들더라고요.”

우아한 곡선미가 특징인 이 의자들은 부드러운 벨벳 같은 소재에 파스텔 톤의 은은한 색깔이 특징. 시기적으로는 20세기 초 유럽인들이 사용한 것이 많다. 중세 귀부인의 초상화에나 나올 법한 화려하고 긴 의자부터 단순한 디자인의 어린이용 의자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팔걸이와 등받이가 있는 가장 보편적인 암체어, 간호사들이 병원에서 환자를 돌볼 때 앉았던 너스체어, 부부나 연인이 함께 앉는 러브체어 등 용도도 다양하다.

프랑스나 영국의 고가구점을 1년에 2, 3차례 돌아다닌다는 주씨는 “내 눈에 좋으면 남의 눈에도 좋기 때문에 팔지 않겠다는 주인을 설득하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휴업 중인 한 가게 쇼윈도에서 보고 반한 의자 때문에 주인의 휴가가 끝나는 날까지 귀국날짜를 연기해 가며 기다려 겨우 그 의자를 손에 넣은 일도 있다.

주씨는 맘에 드는 의자를 사지 못하면 잠이 안 오고 밥도 못 먹을 정도로 의자에 매료돼 집까지 팔았을 정도다. 요즘엔 ‘의자 수집가’라고 입소문이 나면서 영화 세트를 만드는 사람이나 사진관, 카페 같은 곳에서 대여 문의가 온다.

미혼인 그는 “남편이나 애가 있었다면 이런 일이 가능했겠느냐”며 깔깔 웃었다. “의자는 침대 빼고 사람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가구입니다. 더구나 오래된 의자에는 삶의 체취가 그대로 묻어 있어요.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우아한 자태와 섬세한 장식, 유연한 다리 곡선이 주는 아름다움에 세월과 인간이 남긴 흔적까지 생각하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몰라요.”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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