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이 바뀐다]<中>학교 보충수업-자율학습 북적

입력 2004-04-26 18:45수정 2009-10-09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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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5시 서울 경복고. 교실마다 10∼20명의 학생들이 수준별 보충수업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 교사의 설명을 열심히 들으며 교재를 보거나 필기를 했다. 보충수업을 하지 않는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는 자율학습이 이뤄졌다.

같은 시간 이 학교 전산실에선 학생 20여명이 컴퓨터로 교육방송(EBS) 대학수학능력시험 강의를 듣고 있었다.

정부의 ‘2·17 사교육비 경감 대책’ 이후 학교 교육현장이 달라지고 있다. 학생들을 학원과 과외에 빼앗겼던 학교가 학생들로 북적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학교는 보충수업 및 자율학습 등을 둘러싸고 갈등과 부작용을 겪고 있다.

▽학생 참여율 높아=22일까지 교육인적자원부에 자료를 제출한 전국 10개 시도의 수준별 보충학습 및 자율학습 참여도는 80∼90%로 높은 편이었다. 많은 학교가 방과 후 자율학습 시간을 이용해 1∼2시간 학생들에게 EBS 수능 강의를 보여주고 있다.

▼연재기사▼
-<上>학원가 생종 위기

이 같은 경향은 서울 등 수도권보다는 지방에서 더 뚜렷하다. 지방 고교생들은 EBS를 통해 유명 강사의 강의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수도권 학생들과 비슷한 조건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부산 용인고 박만제 교사는 “학교에서 자율학습시간에 상급, 중급 강의를 틀어주는데 학생들의 참여도와 열기가 높다”며 “학원을 가는 학생이 한 반에 10여명 수준에서 지금은 3, 4명으로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충북 한국교원대부속고 임근수 교사는 “교사들이 연구할 교재가 많아져 다소 부담이 늘었다”면서 “교사들이 EBS 강사들과 수업 방식을 스스로 비교해 보기도 하기 때문에 EBS 수능 강의가 좋은 자극제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풍문여고 3학년생은 EBS 교재를 수학 등 일부 과목의 보충수업 교재로 쓰고 있으며 정규 수업 시간에도 활용하기도 한다.

▽“활용도를 높여라”=EBS 수능 강의 내용이 수능 출제에 반영될 예정이어서 학교마다 EBS 강의에 대한 효과적인 활용법을 마련하느라 고심하고 있다.

서울 풍문여고 3학년 교사들은 최근 중간 및 기말고사에 EBS 강의 내용을 출제할지를 놓고 세 차례 회의를 열었다. 3학년 김모 부장교사는 “학교 시험에 EBS 문제를 낼 경우 교육적으로 옳지 않다는 지적이 있어 일단 시험에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며 “하지만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6월 모의평가의 출제 경향을 살펴본 뒤 다시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부 고교는 EBS 강의 내용을 요약해 보충수업을 할 예정이다. 서울 경복고 전인길 교사는 “여름방학 기간 중 EBS 강의 내용을 요약 정리해 학생들이 수능을 준비하는 데 도움을 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은 EBS 강의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 아직까지 강의 활용법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탓이다.

서울 K여고 3학년생 최모양(18)은 “필요한 강의를 골라 들으면 된다고 하지만 너무 막연하다”면서 “어느 대목이 수능이 나올지 모르겠고 다 듣자니 강의가 너무 많아 갈피를 잡기 어렵다”고 말했다.

▽부작용도 만만찮아=일부 교사들은 “우리가 EBS 강의 진행요원이냐”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서울 K고의 한 교사는 “EBS 강의 진도를 매일 확인하고 자율학습시간에 방송을 듣다 조는 학생이 있으면 깨운다”며 “학교 교육이 EBS 강의를 중심으로 획일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은 오후 10시 이후에는 자율 및 보충학습을 금지하고 있지만 서울 강북지역을 중심으로 한 많은 고교가 학생들을 밤 12시까지 학교에 붙잡아 둬 불만을 사고 있다.

학교는 많은 학부모들이 원한다는 이유로 모든 학생을 학교에 붙잡아 두고 있으며 이에 반대하는 학생과 교사들은 강제적인 보충학습은 비교육적이라는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이 같은 갈등은 학부모 교사 지역인사 등으로 구성돼 학교 운영의 중요한 사항을 심의하도록 되어 있는 학교운영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학교 구성원들이 진정한 합의를 이루기 전에는 쉽게 해결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일부 학교는 EBS 강의 시청을 위해 찬조금을 걷기도 해 말썽이 되기도 했다. 학부모 이모씨(49)는 “학부모회가 EBS 강의를 듣기 위해 화질이 나쁜 TV를 교체할 비용을 모금한다고 해서 찬조금을 내야 했다”고 말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전지성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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