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31>卷三. 覇王의 길

  • 입력 2004년 4월 20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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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줄만 남은 法 ①

시월도 중순을 넘어서면서 패상(覇上)의 추위는 부쩍 매서워졌다. 위수(渭水)와 패수(覇水)가 합쳐지는 곳에서 멀지 않은 벌판의 밤하늘은 그새 10만으로 부풀어 오른 패공 유방의 군사들이 피운 화톳불로 벌겠다. 함양에서 보낸 정탐꾼들은 멀리 위수 가에서 그것만 보고도 겁을 먹고 돌아선다는 풍문이 돌 정도였다.

병사들이 피운 화톳불을 퍼 담아 온 청동화로로 훈훈해진 군막 안에서 패공 유방과 장량이 머리를 맞대고 수군대고 있었다. 매사에 느긋하고 서두는 법이 없는 패공이 그날따라 얼굴에 초조한 빛까지 띠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자방(子房), 아직도 함양에선 아무런 소식이 없소?”

무관과 요관을 깨뜨리고 괴산(H山)을 넘은 패공의 군사들이 다시 남전(藍田) 남북에서 두 번이나 격전을 치르고 패상에 이른 지 벌써 한 달이었다. 그동안 패공은 장량의 말을 따라 급하게 함양으로 쳐들어가는 대신 멀리서 에워싼 형국으로 함양을 압박하며 기다리는 쪽을 계책으로 삼았다. 패상 북쪽 벌판에 진을 치고 군사들을 쉬게 하는 한편 기마대와 발 빠른 보졸들을 흩어 대군이 에워싼 듯 함양 성밖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니게 했다.

그러자 관중의 백성들까지도 진나라가 곧 망할 것이라 여겨 패공의 진채로 몰려들어 남전에서 겨우 5만을 넘긴 군사는 그 사이 배로 불어났다. 또 함양 동쪽으로 신풍(新豊) 홍문(鴻門) 같은 고을뿐만 아니라 서쪽 백여리 되는 폐구(廢丘)에까지 초나라 깃발을 앞세운 군사를 보내자, 인근 진나라 군현(郡縣)을 맡고 있던 벼슬아치들까지도 패공에게 항복해 왔다. 하지만 함양의 진나라 조정으로부터는 아직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기다리다 못한 패공은 마침내 진왕(秦王) 자영(子영)에게 스스로 항복을 권하는 사자를 보내기로 했다. 패공 밑에서 일하는 진나라 출신 가운데 말 잘하는 사람을 골라 함양 성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게 사흘 전의 일이었는데, 패공은 지금 그 뒷 소식을 묻는 중이었다.

“예, 아직은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함양 조정은 그저 성문을 굳게 닫아 걸고 조용히 살피기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장량의 말투에는 은연 중에 자신이 배어 있었으나, 패공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한층 뚜렷하게 걱정을 드러내며 다시 물었다.

“혹시 우리가 공연히 시간을 끌어 저들에게 스스로를 추스를 틈만 준 것은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항우가 대군을 거느리고 관동에 버티고 있는 한 동쪽에서 구원을 올 군사는 없습니다. 또 장함을 보낼 때도 죄수와 역도(役徒)들을 보냈을 만큼 관중에도 군사로 뽑아 쓸 사람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벌써 한달 가까이나 우리 군사들이 사방에서 함양에 압박을 주고 있으니, 진왕 자영은 머지않아 스스로 항복해 올 것입니다.”

무엇을 믿는지 장량은 여전히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자 패공의 얼굴도 조금 펴졌다. 하지만 마음이 아주 놓이지는 않는지 장량을 가만히 바라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자방이 그렇게 말하니 믿지 않을 수 없지만 왠지 불길하구려. 이제쯤이면 불시에 군사를 내어 함양을 바로 들이쳐 보는 것도 한 방책이 되지 않겠소?”

그런데 장량이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갑자기 군막 밖이 수런거리더니 노관이 상기된 얼굴로 뛰어 들어왔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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