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32>卷三. 覇王의 길

  • 입력 2004년 4월 21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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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줄만 남은 法 ②

“패공. 왔습니다. 드디어 함양에서 밀사가 왔습니다.”

“함양에서 밀사가 왔다고?”

은근히 애 태우며 기다렸지만 막상 오고 나니 얼른 믿기지 않아 패공이 그렇게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진왕(秦王) 자영(子영)이 보낸 사자라고 합니다. 우리가 보낸 사람과 함께 왔습니다.”

대답하는 노관의 목소리는 적잖이 들떠 있었다. 노관도 패공이나 장량처럼 함양에서 오는 사자를 애타게 기다려 왔음에 틀림없었다. 그제야 패공이 재촉하듯 말했다.

“사자를 이리로 들게 하라!”

그 말에 노관이 군막을 나가 밖에서 기다리던 사자를 불러들였다.

“저는 진(秦)의 중대부령(中大夫令) 석창(石彰)으로, 대왕의 명을 받들어 장군을 뵈러 왔습니다.”

사자가 패공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자신을 밝혔으나 왕명(王命)을 받고 온 벼슬아치답지 않게 후줄근한 유민(流民)의 복색이었다. 그게 이상한지 패공이 물었다.

“그대가 진정으로 진왕이 보낸 사자라면 그 복색은 무엇이며, 굳이 이 야심한 밤을 기다려 나를 찾아온 까닭은 무엇인가?”

“이제 우리 진나라는 기운이 막히고 힘은 다해 더는 버티려야 버틸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장군께서 입관(入關)하신 지 한 달, 가는 곳마다 병사들을 엄히 단속해 함부로 백성들을 죽이거나 그 재물을 빼앗지 못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놀란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까지 하셨습니다. 패상(覇上)에 진인(眞人)이 이르렀다는 말이 실로 헛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우리 대왕께서는 장군께 항복하기로 마음을 정하시고 저를 사자로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우리 진나라가 망했다고 해도 사람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욕되게 항복하여 살기보다는 함양성을 의지해 끝까지 싸우다가 성벽을 베고 죽자는 열사(烈士) 또한 적지 않습니다. 드러내놓고 항복을 의논하다가는 어떤 일을 당할지 몰라 먼저 이렇게 떠도는 피난민처럼 꾸미고 오게 되었습니다.”

은근히 기다려오던 일이었지만 막상 진왕이 보낸 사자로부터 그런 말을 듣자 패공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패공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젊은 시절 역도(役徒)로 끌려와 듣고 보았던 그 함양이 남아 있었다. 천하를 하나로 아우른 제국의 도성, 만대를 이어갈 황제의 영광과 위엄이 찬연히 서려 있는 곳. 그런데 그 함양과 황제가 이렇다할 싸움 한 번 없이 스스로 항복해 오겠다는 것이 아닌가.

“대왕께서 그리 결심하셨다니 천하를 위해 실로 다행이오. 하지만 사자를 미리 보낸 것은 반드시 내게 먼저 얻고자 하는 것이 있어서였을 것이오. 그래 논의하러 온 것이 무엇이오?”

패공이 반가우면서도 못 미더운 마음에 그렇게 속을 드러내놓고 물었다. 그때 말없이 사자를 살피고 있던 장량이 끼어들었다.

“패공께 항복한다는 것은 죽이고 살리고 주고 뺏고[생사여탈]를 모두 패공께 맡긴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무얼 미리 논의한다는 말입니까?”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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