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만이 살길이다]<10>건강한 투자가 꽃피는 나라로

  • 입력 2004년 1월 14일 17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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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가 다시 뛰려면 투자를 살려야 한다.”

경제계의 원로급 인사들과 경제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훼손된 성장 잠재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설비투자 생산성투자 등 투자의욕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이 관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투자를 가로막는 결정적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다.

그러나 효율이 떨어지고 미래예측을 어렵게 하는 불안정한 사회시스템이 투자를 가로막는 요인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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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효율 사회시스템이 투자 막는다

박승(朴昇) 한국은행 총재는 투자가 제대로 안 되고 산업의 공동화가 진행되는 이유로 △비생산적인 정치 △투쟁적 노사관계 △비능률적 교육 △비싼 주택비 등 사회 전체의 ‘고비용 저효율 시스템’을 꼽았다.

박 총재는 “특히 집값 상승과 사교육 과열에 따른 높은 교육비, 교통난에 따른 높은 물류비 등이 고임금으로 이어져 설비투자 감소와 고용 없는 성장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태(金正泰) 국민은행장도 “저금리 상황이 이어지면서 자본비용은 많이 낮아졌으나 높은 인건비과 준조세 등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비용 대비 수익의 채산성이 낮다”면서 “특히 강성 노조 때문에 기업의 경영의사 결정이 어렵고 추진에도 많은 추가비용이 든다”고 설명했다.

김중수(金仲秀)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투자환경의 불안정성을 지적했다. 그는 “최근의 설비투자 침체는 제조업에서 정보기술(IT) 등으로 이전하는 산업구조 재편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면서 “경기회복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확신 부족과 함께 미래 경제환경의 불투명한 변화 가능성 등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불안정성도 투자가 안 되는 변수 중 하나로 꼽혔다.

○책임감과 의욕 겸비한 기업가 필요하다

위축된 기업가들의 ‘기(氣) 살리기’가 투자회복의 키포인트로 지적됐다.

박용성(朴容晟)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기업인을 존경해 달라고 하지 않겠다. 다만 잘못을 저지른 일부 기업인과 자기 역할을 하는 수많은 기업인을 같이 도매금으로 매도하는 것은 그만둬야 하며 기업인을 죽이면 나라도 같이 죽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대기업의 강성 노조와 비정규직 노동자로 양분된 한국 노동계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박세일(朴世逸·전 대통령정책기획수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 사회의 가정이나 학교 어디서도 기업가정신과 직업윤리 및 근로철학을 가르치지 않았다”면서 “기업가는 기업 활동을 통해 국가에 보답한다는 ‘기업보국(企業報國)’의 정신을, 근로자에게는 일을 통해 자기를 실현해 간다는 근로철학을 사회 전체가 심어주고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경쟁력이 투자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견해도 많았다.

손학규(孫鶴圭) 경기도지사는 “기업하는 사람이 곧 애국자라는 분위기가 확산돼야 한다”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기업인들의 요구사항을 먼저 찾아가서 해결하는 ‘서비스 기관’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한층 제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행장은 “국민은행이 현재 시행하고 있는 기업지배구조 우수기업과 윤리경영 우수기업에 대한 우대조치가 전 금융계로 확대되고 이들 기업에 대한 세제지원을 결합하는 ‘투명기업 격려하기’가 주효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행장은 또 공익펀드가 ‘경영 아카데미’(가칭)를 설치해 경영자와 경영자 후보, 기업의 회계 책임자 및 노사관계 책임자, 노조간부 등에 대해 투명기업을 위한 경영교육을 시킬 것을 제안했다.

○투자가 꽃피는 나라 만들려면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새로운 투자의 기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박 교수는 “투자를 살리려면 정부 관계자 등 책임 있는 사람들이 기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기업이 투자하고 싶어 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면서 “최근 대기업에 대한 정치자금 수사도 처벌보다는 ‘돈 안 드는 정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일정한 선을 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사관계의 개선도 투자를 꽃피우는 핵심요인으로 지적됐다. 박 회장은 “국경 없는 시대에 규제와 노사분규가 많은 곳에 투자하는 기업의 수명은 짧아질 수밖에 없으며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노동유연성을 확보해야 기업의 투자가 살아난다”면서 “노사정 모두가 한국 경제를 위해 생산적 노사관계 구축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지사는 “수도권은 교통이 편리하고 고급인재들이 몰려 있어 지식기반산업에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면서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인허가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고 우수인력을 유치할 수 있도록 주거환경 교통 교육여건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총재는 저임금 등으로 무장한 중국으로 빠져나가는 투자의 물길을 돌리는 돌파구로 ‘남북 경제협력’을 제시했다. 중국으로 빠져나가는 국내 투자를 언어와 전통이 같고 육로 운송이 가능하며 생산원가 면에서 절대적 이점을 지닌 북한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

박 총재는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북한의 노동력과 결합된다면 첨단산업뿐 아니라 노동집약적 산업에서도 경쟁력을 되찾을 수 있어 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의 양보다 질이 바뀌어야 할 때라는 지적도 나온다. 맥킨지 서울사무소의 최정규(崔晸圭) 디렉터는 “더 이상 위험 없이 수익을 낼 수 있는 ‘노다지 업종’은 없다”면서 “경영인들이 낮은 코스트로 이익을 내던 과거방식을 탈피해 생산성 향상을 위한 투자를 통해 경영혁신을 이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끝-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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