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16회…명멸(明滅)(22)

  • 입력 2003년 5월 15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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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고리 소매에서 더러운 손수건을 꺼내 먼저 내 코를 풀고 작은딸의 코를 풀어주었다 힝 해라 더 힘껏 그래 자 이제 왼쪽이다 힝 몇 딸과 몇 아들의 코를 풀어주었던가 아이구 첫 아들은 강물에 흘려보내고 두 번째 딸은 땅에 묻었다 이 세상에 없는 가족이 더 많다니 아이고 이럴 수가!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밤새 낙숫물 소리를 들었다 긴긴 밤이었다 긴긴 아침이었다 비는 쉬지 않고 계속 내렸다 무덤으로 스며들어 어머니의 얼굴과 몸을 적시고 아이고 이럴 수가! 안방에서 나오자 된장국 냄새가 풍겼다 큰딸이 만들고 있는 것인가 열두 살짜리 딸이 칼질을 하고 밥을 짓다니 아이고 이럴 수가! 나는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달리 방법이 없다 이 집과 고무신 가게를 팔아넘기고 동생과 두 딸을 데리고 올림픽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 여자는 뭐라고 할까 동생 하나 정도면 기꺼이 받아줄 것이다 그러나 두 딸은?

내가 고개를 숙이면 틀림없이 결혼을 교환 조건으로 내세울 것이다 그 여자는 아내를 호적에서 파냈는데도 만족하지 않았다 와 내를 호적에 안 올리는 깁니까? 나는 당신의 아들을 둘이나 낳았습니다! 당신은 자기 아들이 학교에 들어갔는데 니 엄마가 결혼하는 거 본 적 있느냐고 놀림을 당해도 괜찮다는 말입니까?

큰딸은 고개 숙인 채 밥상에다 된장국과 도라지나물과 깍두기를 올려놓았다 나는 젓가락을 들고 도라지나물을 집었다 약간 짭짤했지만 맛이 없지는 않았다

아버지 맛이 어떻노?

맛있다

아아 다행이다

나는 잠자코 된장국을 떠먹고 있는 동생의 얼굴을 보았다

이 집하고 가게를 팔아야 할 것 같다

팔아서 우짜는데?

…집안에 여자가 있어야 안 되겠나

…나는 미촌리 삼촌 집에서 살란다

…그래

형 미옥이하고 신자를 잘……

내 딸이다 나쁘게는 안 한다

동생은 큰딸이 담근 깍두기를 소리 내어 씹었다 두 딸이 또 울기 시작했다 툇마루에 서서 마당을 바라보니 빗발이 가늘어져 있었다 나는 우산도 쓰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부슬부슬 부슬부슬 부슬부슬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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